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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승영의 책 속으로, 세상 속으로] 판타지의 코기토관리자2020-05-04




    판타지의 코기토


    글_노승영(번역가)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 배수아, 자음과모음, 2018

     

    멀리 있는 큰 물체와 가까이 있는 작은 물체를
    우리 눈은 구별할 수 있을까?

    멀리서 나는 큰 소리와 가까이서 나는 작은 소리를
    우리 귀는 구별할 수 있을까?

    오래된 또렷한 기억과 최근의 흐릿한 기억을
    우리 뇌는 구별할 수 있을까?

     

    며칠 전에 버스를 오래 탄 적이 있는데, 스마트폰을 보다가 눈이 피로해서 멀리서부터 가까이 다가오는 풍경에 초점을 맞추는 눈 운동을 했다. 우리는 원근법에 친숙하기에 어떤 물체의 대략적인 크기를 알면 그 물체가 내 눈에 얼마나 크게 보이는지에 따라 물체와 나와의 거리를 가늠할 수 있다. 그래서 원근법에 어긋나는 그림을 보면 착시 현상을 일으키기도 한다.

    소리도 마찬가지다. 똑같은 소리가 음량만 커지면 우리는 그 소리를 내는 물체가 우리에게 다가온다고 느낀다. 그렇다면 시각과 청각 같은 감각뿐 아니라 뇌의 기억도 이런 착각을 일으킬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번역한 책 중에 앤슨 맥도널드로버트 하인라인의 필명또 다른 나By His Bootstraps라는 SF 단편 소설이 있다. (판권을 미리 확인하지 못해 출간이 좌절된 비운의 책이다.) 타임슬립물의 시초로 손꼽히는 이 소설을 번역하면서 내가 붙인 별명은 복붙 소설이다. 이를테면 영어판 51쪽에 나오는 “I’m not sure. Have I ever seen you before?”라는 문장은 66쪽에도 똑같이 반복된다. 그래서 나도 잘 모르겠는데. 우리 만난 적 있나?”라는 번역문을 그대로 복사해서 붙여넣기 했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자세히 설명할 수 없지만, 문장이 반복되는 이유는 시간과 관계가 있다. 판권을 보유한 출판사에서 한국어판을 내면 꼭 읽어보시길.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똑같은 묘사가 인물을 바꿔가며 여러 차례 반복된다. ‘과연 저자도 내가 또 다른 나를 번역하면서 그랬듯 복사하여 붙여넣기를 했을까라는 불경한 궁금증이 들긴 했지만, 복붙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사건과 시점이 뒤죽박죽되어 시간적 일관성이 사라지면 우리는 더는 시간의 흐름을 지각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야미는 더 이상 자신의 기억력을 신뢰할 수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36)

    과거란 무엇일까? 고정된, 변하지 않는 과거라는 것이 존재할까? 모든 것은 우리 머릿속에 기억으로만 남아 있는 것 아닐까? 게다가 신뢰할 수도 없는. 이 소설은 일관성을 찾고 싶어 하는 욕구를 끊임없이 배반하며 독자를 일종의 학습된 무기력 상태에 빠뜨린다. ‘, 모르겠어. 그냥 빠져버릴래.’

    일관성을 찾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좌절되면 우리는 개연성의 세계를 떠나 판타지의 세계로 들어간다. 하지만 이 소설은 주인공이 명시적으로 판타지를 욕망한다는 점에서 여느 판타지와 다르다. 데카르트의 코기토 에르고숨에 빗대자면 나머지 모든 것이 판타지일지라도 판타지를 욕망하는 주인공만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 “나는 존재한다. 그러므로 나는 상상한다.” 그렇다면 반복되는 인물과 장면 중에서 진짜는 어느 것일까? “그러자 바람 한 점 없는 대기 속에서 여자의 치마가 낡은 행주처럼 펄럭였다. 힘줄이 불거진 앙상한 맨다리와 초라하게 작은 발, 새것으로 번쩍거리지만 이상하게 싸구려처럼 보이는 구두가 드러났다.”(22) 인물을 바꿔가며 반복되는 이 묘사의 실제 주인공은 누구란 말인가.

     

                             “…… 책을 쓸 때 나는 머릿속에 동시에 몇 가지의 시나리오를 만들어
                             놓고 그걸 모두 글로 표현하려고 시도를 해요. 그래서 하나의 이야기가
                             여러 가지 버전을 갖게 되지요. 그렇게 써놓은 모든 버전을 직접 읽어
                             보고 그중에서 한 가지로 선택을 해요.”(182~183)
    
    
    

    어쩌면 이 소설의 비슷한 듯 다른 장면들은 각각의 평행 세계일 수도 있다.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상자를 열면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수 있고 작가의 여러 가지 버전은 출간된 원고를 읽어보면 어느 것이 선택되었는지 알 수 있지만,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는 다 읽고 나서도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판타지인지 모르겠다. 그 밤과 하루는 영영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일 것이다.
     

    이 책은 최근에 데버러 스미스의 번역으로 영국에서 영어판이 출간되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책이 영어로 번역됨으로써 비로소 완성되었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독일 소설가 볼피가 한국을 방문하여 아야미와 나누는 대화는 한국어로 쓰여 있지만 볼피가 한국어를 할 수 있을 리 없고 아야미가 여니에게 독일어를 배웠으므로 영어 아니면 독일어로 이루어졌을 것이다. 부하가 발파라이소에서 만난 여인이 그에게 보낸 편지는 틀림없이 영어였을 것이다. 번역가 모모 씨의 일일(세종서적, 2018)에 이런 문장이 있다.

     

                             “번역은 복원이다.” 번역 강의를 할 때마다 빼놓지 않는 말이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영어문장이 실은 한국어 문장이라고 상상해보라는 것이
                             . 그러면 번역은 영어 원문을 바꾸는 작업이 아니라 원래의 한국어
                             원문을 복원하는 작업이 된다.(4)


     

    내게는 복원으로서의 번역이 언제나 상상 속의 작업이었지만, 이 책을 번역한 스미스에게는 현실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한국어로 번역된 볼피와 아야미의 대화를 원문으로 복원해야 했을 것이다. 나머지 부분은 한국어를 그대로 두되 둘의 대화만 영어로 바꾸면, 역설적으로 그런 책이야말로 이른바 원서라고 불릴 수 있지 않을까? 소식통에 따르면 독일의 출판사에서 이 책의 독일어판 출간을 타진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한국어와 영어와 독일어가 섞인 완벽한 책을 읽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논리적인 사람이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논리적인 사람이라면 결코 이런 문장을 쓰지 못했을 테니까. 아니, 판타지 속에서는 이것이 논리적인 것일까?

     

                             “이미 말했던가요, 내가 한때 버스 운전을 했다는 것을?”

                  “아니요, 당신이 한때 시인이었다는 말을 내게 하지 않았어요.”

                   “그러면 혹시 이미 말했던가요, 내가 한때 극단의 극작가일 뿐만 아니
                    라 배우이자 연출가이기도 했다는 것을? 또한 아주 오래된 옛날 나는
                    마을의 약사였다는 것을?”

                   “아니요, 당신이 바로 과일 행상을 하던 내 아버지라는 사실을 내게 말하지 않았어요.”(67~68)

     

                     그녀의 얼굴을 알고 싶지 않았다. 그녀를 알게되고 싶지 않았다.
                     녀가 검푸른 빛이 나는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가졌으며, 그녀가 섬세하
                     고 길면서 모양이 아름다운 팔다리를 가졌으며, 그녀가 마마 자국으로
                     심하게 얽은 얼굴을 가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싶지가 않았다.(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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