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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승영의 책 속으로, 세상 속으로] 낯선 언어와의 만남관리자2020-07-01




    낯선 언어와의 만남


    글_노승영(번역가)


    『언어 공부』, 롬브 커토, 바다출판사, 2017
     

      영어가 아닌 언어에서 영어로 번역된 책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중역重譯을 지금까지 다섯 번 해봤다. 마오쩌둥의 실천론·모순론(프레시안북, 2009)은 중국어, 트로츠키의 테러리즘과 공산주의(프레시안북, 2009)는 러시아어, 라르스 뮈팅, 노르웨이의 나무(열린책들, 2017)는 노르웨이어, 그리고 아직 출간되지 않은 안드리 마그나손, 시간과 물에 관하여(북하우스)는 아이슬란드어가 원어다. 마오쩌둥의 책을 번역할 때는 영어 알파벳으로 표기된 중국 지명이 어디를 가리키는지 알 도리가 없어 중국어 원고를 입수하여 참고하기도 했으며, 마그나손의 책을 번역할 때는 저자가 영어를 구사할 줄 알아서 메일을 주고받으며 알쏭달쏭한 문장을 해결할 수 있었다.
     

    이쯤 되나 나도 중역에 어느 정도 잔뼈가 굵었다 싶었기에, 헝가리 소설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벵크하임 남작의 귀환(알마)을 의뢰받았을 때에도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번역서 분량이 200자 원고지로 3000매가량 될 것으로 예상되었기에 편집자에게 9월 중에 탈고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메일을 보냈는데, “……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만 ……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아니나 다를까 영문 원고를 살펴보니 크러스너호르커이의 전작 사탄탱고(알마, 2018)저항의 멜랑콜리(알마, 2019)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만연체였다. 만연체 하면 데이비스 포스터 월리스의 끈 이론에세이 선집(미출간)을 번역하면서 이미 지긋지긋하게 겪은 바 있었지만, 크러스너호르커이의 만연체는 몇 페이지를 훌쩍 넘기는 지경이어서 한번 길을 잃으면 영영 엉뚱한 곳으로 가버릴 우려가 있다. 독자야 압도적으로 다가오는 문장의 파도에 몸을 내맡기고 물결 따라 흘러가면 그만이지만 번역자는 주부-술부 호응이며 대명사의 선행사며 안긴문장에 안긴 문장이 어디까지인지 분석해야 하므로 끝없이 이어지는 긴 문장은 여간 고역이 아니다.
     

    어니스트 베커, 죽음의 부정(한빛비즈, 2019)을 시작으로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를 거쳐 크러스너호르커이에서 정점을 이룬 만연체 번역의 실마리라도 좀 잡아볼까 싶어서 책을 몇 권 읽기 시작했다. 국내 소설가 중 만연체로 일가를 이룬 박상륭의 죽음의 한 연구(문학과지성사, 2001)를 읽으면서 한국어 만연체의 가능성을 탐구했는데, 그 이야기는 악스트31(20207·8)에 싣기로 하고, 여기서는 롬브 커토, 언어 공부를 소개하기로 한다.
     

    이 책은 자타 공인 대한민국 언어 천재 신견식 씨가 2017년에 번역 출간한 헝가리인 통역사 롬브 커토의 책으로, 16개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기까지의 과정과 비결을 알려준다. 원래는 헝가리어의 문법적·어휘적 특징에 대한 힌트가 담겨 있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펼친 건데, 그런 건 없었지만헝가리어가 유럽 언어들과 달리 접사를 쓰는 교착어이고 문법성(남성, 여성, 중성)이 없고 전치사 대신 후치사를 쓰기 때문에 헝가리어와 영어, 영어와 한국어보다는 헝가리어와 한국어가 더 가깝지 않을까, 말하자면 헝가리어를 영어로 번역한 문장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것보다는 헝가리어를 곧장 한국어로 번역하는 것이 더 수월하지 않을까 싶었으나, 헝가리어는 우랄어족 핀우그리아어파에 속하는 반면에 한국어는 예전에는 알타이어족에 속하는 줄 알았으나 요즘은 한국어족이라는 독자적 어족으로 분류되는 추세인 만큼 두 언어의 공통점은 그다지 많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헝가리어는 한국어와 달리 서술어가 문장 끝에 오지 않아서 절과 절을 연결 어미로 연결하지 않는다어쨌거나 흥미로워서 끝까지 읽고 말았다(물론 3년 전에도 통독했지만 이번에는 좀 더 느긋하게).
     

    헝가리어를 익혀서 영어판과 헝가리어판을 나란히 놓고 번역에 참고할 요량으로 헝가리어 교재도 사고 온라인 강좌도 등록했는데, 롬브 커토는 평균적인 언어 학습자는 일주일에 최소한 10~12시간의 학습이 필요하다. 만약 이만큼의 시간을 투자할 수 없거나 투자하기가 싫다면 언어 학습 계획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라며 찬물을 끼얹는다. 하루에 1시간 할애하기도 만만찮은데 1시간 30분에서 2시간이라니 이건 좀 무리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롬브는 병만 주는 게 아니라 약도 준다. “언어 학습을 일이나 여가와 연결시켜야 한다. 그리고 언어 학습이 일이나 여가를 희생시키는 게 아니라 보충하는 개념이어야 한다.” 그러니까 내 경우는 번역이라는 일과 언어 학습이 연결되어 있으므로 집중력과 흥미를 발휘하기에 훨씬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이 책에서는 단어를 찾는 효과적인 방법도 알려주는데사전에서 찾는 단어는 보통 어떤 식으로든 귓가에 아른거린다. , 헝가리어 szalag(리본)가 영어로 뭐더라? 헝가리어-영어 사전을 꺼내들고 단어를 찾는다. 짜증이 나서는 손바닥으로 이마를 때리면서 그래, ribbon이었지!’ 하면서 곧바로 잊어버리고 만다. / 하지만 기억의 옅은 안개 속에서 끄집어내는 희미한 조각들부터 시작해서(ri…… ribb……) 반대 방향의 사전, 즉 영어-헝가리어 사전에서 확인하는 수고를 감수한다면 그 말을 딱 찾아냈을 때 기쁨의 불꽃이 탁탁 튀어, 그 단어가 머릿속에서 나갈 일이 없을 것이다. 시간은 두 배로 들지만 효과는 열 배 좋다.”이 방법은 번역에도 요긴하다. 영어를 한국어로 번역할 때 영한사전만 참고하면 한국어 표현이 앙상해진다. 한국어 단어 중에서 영한사전에 실린, 즉 영어의 번역어로 선택된 것들은 전체 어휘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기 때문에, 번역문에서 풍성한 한국어 어휘를 구사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럴 땐 한영사전에서 해당 영어 단어를 풀이말로 거느린 표제어를 찾으면 도움이 된다.
     

    여러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의 글을 읽다 보면 영한 번역가인 나만 고충을 겪는 게 아님을 알게 된다. 독일어는 할 수 있다’(가능)해도 된다’(허락)‘können’ 하나로 나타낸다고 하는데, 다음의 일화는 독일어로는 번역할 수 없을 것이다. “영어는 허락에 따른 가능성을 표현하는 독립된 조동사가 있다. 바로 may이다. 실력이 별로 빼어나지 않은 어느 번역가가 조지 버나드 쇼에게 작품을 번역할 수 있겠는지 물었을 때 들었던 대답에서 잘 드러난다. ‘You may, but you can’t(할 수 있지만 할 수 없다=해도 되지만 못할걸.)’” 한국어로는 어떻게 해야 말맛을 살려 번역할 수 있을까?
     

    부다페스트 시 관광국장에 임명된 롬브가 처음 만난 외국인 관광객을 관광청으로 데리고 가려던 일화는 언어적 실수가 어떤 참사(?)를 낳는지 재미있게 보여준다. 롬브는 남자에게 저는 훌륭한 établissement(불어로 기관)의 책임자랍니다. 저희 쪽에 지금 꼭 와주세요라며 여직원들이 전부 프랑스어를 잘하고 흥미로운 사진들도 있다고 덧붙이는데, 문제는 ‘établissement’유곽이라는 뜻이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엔 이어진 문맥이 오해에 못을 박았을 테지만.
     

    이 책에서 가장 맘에 드는 건 언어 학습의 왕도로 책 읽기를 든다는 점이다. “책이 기존의 지식을 유지하고 새로운 지식을 얻기 위한 최고의 수단이라는 것은 나보다 앞서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이미 발견한 것이다. 이 잘 알려진 사실에 내가 덧붙이고 싶은 것은 오직 두 가지다. 첫째는 아주 초급 단계부터 학습 프로그램에 대담하게 읽기를 넣어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적극적으로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언어 현상을 자주 만나야 언어의 구불구불한 역경의 길을 지나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 5월 서평에서 소개한 배수아,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자음과모음, 2018)에서는 아야미가 여니에게 독일어를 배우는데, 그 방법 또한 책 읽기였다. 문학 작품을 읽으면 해당 언어를 가장 세련되게 구사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물론 구어와 문어는 다르지만, 책은 아무 때나 볼 수 있고 반복해서 질문할 수 있고 잘라서 볼 수 있기 때문에 언어 학습 도구로는 감히 필적할 대상이 없.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맨 앞에 나온다. 저자가 어린 시절 헝가리어와 독일어의 대응 법칙을 나름대로 발견하여 부모에게 자랑하는 장면인데, 헝가리어 lámpa(램프)가 독일어 Lampe이니까 szoba()Sobbe일 거라고 유추한 것이다. 하지만 을 뜻하는 독일어 단어는 Zimmer. 이것은 언어학 용어로 부정적 전이negative transfer(모어와 외국어에서 보이는 비슷한 사례를 잘못 일반화해서 생기는 오류)”라고 하는데, 어릴 적부터 언어 규칙에 관심을 가지고 언어들 사이에서 그 규칙을 적용하는 것은 웬만한 관심과 재능으로는 힘든 일이다. 그런데도 저자의 부모는 실망하여 아이가 외국어를 통달할 수 없을 거라 단정했다고 한다. 저자가 자타 공인 외국어 낙제생으로 낙인찍힌 데다 언어학이 아니라 화학을 전공한 데는 부모의 이런 무지(?)도 한몫했으리라. 나는 우리 아이가 계산이 느려서 수학을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만일 그게 아니라 뜻밖의 수학적 재능을 가지고 있는 거라면?
     

    그런데 언제까지 외국어 고수들이 쓴 책을 읽으면서 부러워만 하려는가. 이번에는 기필코 헝가리어 소설을 읽을 수 있을 만큼 언어 공부를 해야겠다. 크러스너호르커이의 만연체에 어떤 비밀과 비결이 숨어 있는지도 밝혀내고 말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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