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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노승영의 책 속으로, 세상 속으로] 차분하고 여유로워지려면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20-11-03



차분하고 여유로워지려면


글_노승영(번역가)




 

『지금 당장 당신의 SNS 계정을 삭제해야 할 10가지 이유』, 재런 러니어 저, 신동숙 역, 글항아리, 2019

 

에피소드 #1

동료 번역가 한 명은 마감이 닥치거나 일이 겹치면 페이스북을 비활성화한다. 아예 탈퇴하는 건 아니고 일시적으로 계정 사용을 중지했다가 일을 마무리하고 나면 복귀하는 식이다. 그때마다 페친’(페이스북 친구)들은 이산가족 상봉하듯 반갑게 맞아주며, 이 번역가는 예전처럼 즐거운 페이스북 생활을 이어간다. 나는 번역하다가 문장이 안 풀리면 페이스북과 트위터 같은 SNS를 들여다보며 한숨 돌리는 편이었는데, 잠깐 머리를 식히려다 한 시간이 훌쩍 가버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어서 작업실에서는 아예 SNS에 접속이 되지 않도록 공유기를 설정해뒀으나, 아예 공유기 설정을 다시 바꿔서 SNS에 접속했다가 다시 접속 차단으로 설정을 바꾸는 지경에 이르렀으나 동료 번역가의 방법을 써볼 생각은 지금껏 한 번도 하지 않았었다.

 

에피소드 #2

상당수의 페친과 트친(트위터 친구)소셜 딜레마라는 넷플릭스 다큐드라마를 보고 감명받았다는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음악인이자 작가인 페친은 소셜 딜레마가 하도 좋아서 비슷한 주제의 책인 재런 러니어의 지금 당장 당신의 SNS 계정을 삭제해야 할 10가지 이유도 읽고 싶은데 추천사를 쓴 사람 중에 지인 두 명이 페이스북을 누구보다 열심히 하는 사람이어서 망설여진다고 했다. 여러분도 짐작했겠지만 그 지인 중 하나가 나다. 내가 쓴 추천사가 오히려 책 홍보에 역효과를 내다니,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에피소드 #3

올해 작업한 책 중에서 가장 까다로운 것을 하나만 꼽으라면 헝가리 소설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이라는 장편 소설을 꼽고 싶다. 202061일에 번역을 시작하여 넉 달이 지나도록 마무리하지 못하고 있던 것은 분량도 분량이지만 몇 페이지를 넘겨도 마침표가 보이지 않는 지독한 만연체를 해독하고 풀어내기가 여간 고역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장면을 한꺼번에 총체적으로 묘사하는 크러스너호르커이의 기나긴 문장을 이해하려면 조바심을 버리고 글의 흐름에 몸을 내맡겨야 하는데, SNS의 단편적 자극에 익숙해진 나는 주의력을 오랫동안 유지할 수가 없었다.

 

에피소드 #4

소설가이자 번역가인 페친이 최근에 페이스북 탈퇴를 선언했다. 그녀가 평소에도 페이스북에서의 소통에 아쉬움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던 터라 놀랍지는 않았지만, 그 일을 계기로 나의 페이스북 생활을 돌아보게 되었다. 이런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았다. 나는 페이스북을 하면서 행복한가, 페이스북은 내게 유익한가,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주는가? 답은 모두 부정적이었다.

 

2020102일 페이스북과 트위터의 계정을 비활성화했다. 두 주 뒤인 1014벵크하임 남작의 귀향을 탈고했다.

계정 비활성화는 위의 에피소드 네 가지가 모두 작용하여 이루어진 다소 충동적인 결정이었다. (페친들에게는 마감을 위해 페이스북을 잠시 쉬겠다고 알려두었다.) 비활성화의 효과는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나는 훨씬 차분해졌고 여유로워졌다.

되찾은 저녁 시간에 가족과 함께 소셜 딜레마를 시청했다. SNS를 만들고 발전시킨 장본인인 실리콘 밸리의 IT 전문가들이 SNS의 해악에 대해 내부 고발을 하는 영화였는데, SNS가 이용자의 심리를 조종하여 중독시키고 극단적 성향으로 이끈다는 내용이었다. 새로울 것은 없었지만 SNS가 한 가족의 일상에 미치는 변화를 묘사한 픽션을 다큐멘터리와 섞는 기법은 영리하고 효과적이었다. 그런데 영화에 출연한 전문가 중 한 명이 바로 재런 러니어였다. 그의 얘기가 귀에 익은 것은 내가 추천사를 쓴 책에 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 책을 다시 집어 들었다. (실은 이번 서평은 이 책으로 하기로 결정하고서 이미 앞부분을 조금 읽은 뒤였고, 영화를 본 뒤에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한 것이지만.)

영화와 책 모두에서 가장 인상적인 지적은 SNS의 이용자인 우리가 그 회사들의 고객이 아니라 상품이라는 점이다. 진짜 고객은 그 회사에 광고를 의뢰하는 기업들이다. 페이스북 같은 회사는 우리의 정보를 모조리 수집하여 광고주에게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들을 위해 우리의 행동을 수정한다. 재런 러니어가 주목하는 지점이 바로 SNS가 우리의 행동을 수정 또는 조작한다는 것인데, 실은 나도 최근 들어 체감하고 있었다. 조국 전 장관과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관련하여 나도 모르게 어느 한쪽의 주장만을 검색하고 읽고 보고 있었던 것이다. 페이스북이 정치적으로 대립하는 두 진영으로 나뉘어 극단적으로 대립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이런 경향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SNS가 갈등을 조장하는 것은 분노가 가장 쉬운 감정이기 때문이다. 분노는 우리의 선택과 행동을 변화시키고 증폭한다.

나는 종종 아이들에게 스마트폰 좀 작작 하라며 잔소리를 한다. 식탁에서나 밤 9시 이후에는 쓰지 못하게 금지하기도 한다. 그런데 정작 이렇게 말하는 나 자신이 스마트폰을 눈에서 떼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건 …… 중독일까?

 

깊이 중독된 사람은 반복적으로 초조해하고, 강박적으로 뭔가를 쫓는다. 늘 결핍을 느끼면서 확인할 수 있는 무언가를 다급하게 찾는다. 이들은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으로 남들 눈에는 안 보이는 일에서 불길한 징조를 느끼고 집요하게 매달린다. 중독자들은 이기적이어서 자신의 일상에만 완전히 몰두한 나머지 다른 사람들의 기분이나 생각에는 관심을 기울일 여력이 거의 없다. 이들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오만과 과장하는 태도는 불안을 감추려는 의도임이 여러모로 분명하다. 중독자들은 자신만의 근거 없는 믿음에 사로잡힌다. 이들은 스스로를 대단하게 생각하며, 중독이 깊어질수록 현실감을 잃는다.(71)

 

위의 인용문은 그 당시 나의 상황을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다. 어쩌면 여러분도? 나는 도박이나 담배에 쉽게 중독되는 성격이 아니지만, SNS에는 그것들과 다른 중독 메커니즘이 있는 듯하다. 재런 러니어는 새로운 패턴을 찾고 싶어 하는 뇌의 특성이 SNS 알고리즘의 무작위성과 결합하여 중독을 일으킨다고 말한다. 내 경우는 고된 정신노동으로 지친 뇌가 손쉬운 자극을 탐하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눈으로 먹는 초콜릿이라고나 할까. 물론 지방은 뇌에 낄 테고.

나는 페이스북에서 완전히 탈퇴한 게 아니라 계정을 비활성화한 것에 불과하지만, 아마도 다시 돌아가지는 않을 것 같다. 에피소드 #4의 소설가이자 번역가인 전 페친은 (완전히 탈퇴하지 않고) 비활성화하면 언젠가 다시 활성화하게 된다고 경고했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지금 번역하는 책은 저 아래 서왕모라는 소설인데, 저자는 헝가리의 소설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이며 문체는 전작과 대동소이하다. 적어도 석 달간은 차분하고 여유로와야만 한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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