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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소설가 장마리의 독서지략] 감성의 계절, 누가 또 시인이 되려고 하는가?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7-10-10
조회수 264


 

감성의 계절, 누가 또 시인이 되려고 하는가?
 
꿈꾸는 시인』- 나태주

 


  가을이다!
 
 그렇지 않아도 창 넓은 찻집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휴대폰 메모장이나 작은 노트에 뭔가 끼적이기를 좋아했는데 감성의 계절 가을이 되니 가슴 한 곳이 뻥 뚫린 것 같은 공허감에 미칠 것 같단다.

  올해 몇이나 됐을까? 나는 늦깎이로 들어온 참여자를 무심하게 바라봤다. 염색은 했지만 가르마를 탄 곳과 귀 옆으로 흰머리가 삐져나와 있었다. 하지만 안경 속에 비친 눈빛은 맑고 투명했다. 물론 눈가에도 자잘하게 주름이 있었고 내 손을 잡는 손은 따뜻했지만 세월의 흔적은 거스를 수 없어 손등에 검버섯이라고 말하기에 뭣한 반점과 주름이 깊었다.

  분명히 내가 소셜다이닝 플랫폼 <집밥>에 모임을 개설할 때, <한뼘자전소설쓰기>를 주제로 한다고 했다. 즉 우리 모임은 자신의 이야기를 한뼘 분량으로 써와 발표하고 그에 대해 소감을 나누는곳이라고 했으나 간혹 이같은 감성지기들이 찾아와 나를 당혹하게 만든다.

  문예지기로 활동한 지 여섯 달째가 되었다. 소문을 듣고 또는 정기적으로 참여하는 중장년층의 여성이 있었다.

  내가 살고 있는 소도시 익산은 부유(浮游)하는 이미지가 강하고 현실 또한 그렇다. 기차로 1시간 10분이면 서울까지 닿을 수 있는 도시라는 이름답게 산업화와 함께 만들어진 도시이다. 아직도 동산동에는 미싱일을 하는 여성들이 있다. 그녀들은 10때 쌍방울, 백양 등의 공장에서 섬유업계의 종사자로 가족을 책임지는 역할을 했다. 지천명에 가까운 나이가 되었어도 아직도 미싱일을 그만두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익산에 거주하는 섬유업계 종사자나 여성문제에 관심이 있는 중장년층 여성을 대상으로 <한뼘자전소설쓰기>를 작년부터 해오고 있었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문화가 있는 날, 문예지기를 공모한다는 소식을 듣고 위의 이름으로 올 초에 지원을 했는데 운 좋게 선정이 되었다. 그래서 매 달 마지막 주 수요일에 문예지기로 이 모임을 개설하여 지금까지 운영해오고 있다.

  그런데 처음 의도와는 다르게 산업화가 낳은 희생양들은 참여가 줄고 앞에서 잠깐 말했듯이 가을이 되니, 감성의 계절이 되니, 뭔가 끓어오르는 심상을 표현하지 못해 가끔 울기도 한다는 감성지기 참여자가 늘고 있었다.

  사실 글을 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의도야 좋지만 내 이야기를 한뼘 분량으로 써와 발표한다는 것이 쉬운 일일 턱이 없다. 그래서 나는 어떤 형식이어도 좋고 내용이어도 좋다고 욕심을 조금 내려놓았다. 그랬더니 참여자가 늘었지만 내 장르와 무관한 에 대해 시 창작에 대해 조언을 구하는 참여자가 많아졌다. 이같은 고민을 털어놓으니 가까운 시인이 나태주 시인이 쓴 꿈꾸는 시인이라는 책을 권해주었다.

  이 책은 시를 선망하고 세상을 사랑하는 젊은 독자들에게 들려주는 시의 세계라는 소제목이 붙어 있었다. 즉 나태주 시인의 시에 대한 개인적인 이야기를 가상의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이에게 낮은 목소리로 조곤조곤 들려주고 있었다. 지극히 서정적인 감성으로 이의 머리를 쓰다듬고 등을 도닥이며 말하고 있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런 행운을 누리는 이는 누구이며 어떤 소녀일까? 나는 기꺼이 내 손을 잡고 가을이라, 환장하겠다!’고 말하는 감성지기가 아닐까 생각했다.
 

  본의 아니게 나는 문화가 있는 날, 모임을 진행하면서 자기 자랑질 하듯 써 오는 글이나 닭살 돋듯 남편이나 자식 자랑을 하는 글을 보면 가차 없이 매섭게 지적질을 한다. 분명 글쓰기 모임이 아닌데도 그렇다. 아무리 이 모임이 글쓰기 창작 교실이 아니어도 을 쓰는 것을 매개로 하기 때문이고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드러내보자는 의도가 있기 때문이다. 문장이 조금 서툴러도 진솔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써올 때 우리는 눈시울을 붉히고 어깨를 도닥일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글에 대해서, 그런 참여자에게는 자신의 일기장에나 쓰라고 매몰차게 말한다. 지적질에 토라진 참여자를 보면 뜻하지 않게 내가 지금 선생질을 하고 있나?’ 하는 자책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꿈꾸는 시인에서는 못된 선생질 노릇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현재의 시가 너무 어렵고 난해하여 독자들을 잃어버린 이유가 이런 못 된 선생질 노릇을 하는 평론가나 문창학과의 교수들 때문이라고 한다. 따라서 사물을 바라보는 아름다운 마음만 있으면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으며 시어가 쉽고 이해가 잘 되어야 독자가 감정이입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참으로 좋은 시란 짧아야 하고 시어는 쉬어야 하고 독자는 어떤 감동을 느낄 수 있으면 된다고 말한다. 옛날 상갓집에서 삯을 받고 주인을 대신해서 울어 주는 일을 하는 사람을 곡비라고 하는데 시인이 바로 이에 해당한다고 한다.


멀리서 빈다

 

어딘가 내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꽃처럼 웃고 있는

너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 번 눈부신 아침이 되고

 

어딘가 네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풀잎처럼 숨 쉬고 있는

나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 번 고요한 저녁이 온다

 

가을이다, 부디 아프지 마라
 

 

  시인은 어느 문학강연에서 이 시를 낭송했다고 한다. 같은 여류 문인이 마지막 연 가을이다, 부디 아프지 마라는 문장 때문에 그만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는 이야기도 한다.

  또한 이 책은 시 쓰기 전에’, ‘시 쓸 때에’, ‘시 쓴 뒤에로 나눠 시인이 되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론서의 역할도 하고 있다. 당나라 때 시인 구양수의 三多을 소개하며 글쓰는 이의 자세에 대해서도 따끔하게 말한다.

  안타까운 것이 글을 쓰겠다는 사람이 글을 읽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를 쓰겠다는 사람이 시를 읽지 않는다는 것이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문예지기로서 감성지기에게 할 말은 아니라고 생각되어 나는 입을 다물기로 한다.

  각설하고, 이번 10월 문화가 있는 날에는 꿈꾸는 시인을 소개하고 이곳에 수록된 몇 편의 시를 참여자들과 함께 읽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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