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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소설가 이근미의 책세상] 복제인간의 절규, 나를 보내지 마!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7-11-07
조회수 112




복제인간의 절규
, 나를 보내지 마!





 

나를 보내지 마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민음사 펴냄/ 2009년


2017년 노벨문학상은 일본계 영국작가 가즈오 이시구로에게 돌아갔다. 스웨덴 한림원은 선정 이유를 감정의 거대한 힘이 담긴 소설을 통해 인간과 세계의 연결에서 착각을 일으키기 쉬운 감각 이면에 있는 심연을 드러냈다라고 밝혔다. 이시구로는 30여 년 동안 장편 7, 단편집 1권을 출간했는데 이 가운데 나를 보내지 마가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아무래도 여러 가지 상을 받은 연유 때문인 듯하다.

 

2005년에 발표한 나를 보내지 마타임‘100대 영문 소설‘2005년 최고의 소설로 선정되었고, 전미 도서협회 알렉스 상, 독일 코리네 상 등을 받았다. 독일, 프랑스, 일본 등 전 세계 37개국에서 번역되고 영화로도 개봉되었다. 복제 인간의 사랑과 슬픈 운명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에 의문을 제기한 작품이다. 복제인간을 다룬 다른 작가의 작품들이 기술적인 면에 더 치중했다면 나를 보내지 마는 심리적인 면, 인간 본연의 의미 같은 심오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다소 낯선 듯 하지만 가즈오 이시구로는 이미 현대 영미권 문학을 이끌어 가는 거장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1954년 일본 나가사키에서 태어난 작가는 1960년 영국으로 이주하여 켄트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이스트앵글리아대학에서 문예창작 석사학위를 받았다. 작품이 많이 발표되지 않았을 때 이미 대영제국 훈장(1995)과 프랑스 문예훈장(1998)을 받았다.


이시구로는 1982년에 창백한 언덕 풍경으로 데뷔하여 위니프레드 홀트비 기념상을 수상했다. 일본을 배경으로 전후의 상처와 현재를 절묘하게 엮어 낸 작품이다. 세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1989년에 발표한 세 번째 소설 남아 있는 나날로 부커 상을 받으면서부터이다. 내놓는 작품마다 유명 문학상을 수상하거나 노미네이트 될 정도로 실력과 화제성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 이시구로 소설의 특징이라면 치밀한 묘사로 독자를 끌어당기는 흡인력을 꼽을 수 있다. 그의 작품은 시종 진지한 필치로 차분하고 격조높게 진행되다가 마지막에 엄청난 감동 혹은 충격을 준다는 공통점이 있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 가운데 가장 큰 사랑을 받는 중인 남아 있는 나날은 최고의 집사였던 아버지를 존경하며 매사 최선의 다하는 스티븐스의 삶을 담고 있다. 저택의 새로운 주인장 패러데이의 권유로 포드자동차를 몰고 여행을 떠난 스티븐스. 평생을 바쳐 충성한 달링턴 경에 대한 회의와 일 때문에 떠나보낸 켄턴 양과의 재회, 그리고 남은 날에 대한 상념 등이 가슴을 절절하게 만든다.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게 읽은 우리가 고아였을 때는 추리기법을 사용해 시종 흥미진진하게 흐르다가 마지막 부분에서 전율에 가까운 충격과 감동을 안기는 작품이다.

 

두 작품은 쓸쓸함을 주긴 하지만 마지막의 먹먹한 감동이 모든 것을 상쇄한다. 그에 비하면 나를 보내지 마는 책을 덮을 때 비감함에 가슴이 무지근해지고 만다. 시종 음울하면서 비장하게 흐르던 이야기가 결국은 심장을 녹아들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시구라의 소설들은 여기저기 심어놓은 복선들이 마지막 부분에서 한꺼번에 해결되며 독특한 재미와 결이 다른 감동을 안기는데 나를 보내지 마에서는 특유의 스타일이 끝내 발현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갑갑함에다 절망감까지 떠안을 수도 있다.

 

나를 보내지 마는 우리에게 해결이 아닌 숙제를 남기는 작품이다. 단지 소설 속의 이야기가 아닌, 앞으로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떨치기 힘든 부담으로 다가온다. 복제인간을 가장 유혹적인 산업으로 인식하는 부류가 없으란 법이 있는가. 줄기세포 논쟁이 뜨거운 데다, 동물을 이용한 부분 복제가 이미 실행되고 있으니 무조건 아닐 거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작품 속으로 들어가 보자. 소설 속에 등장하는 복제인간들은 부모가 아닌 시험관에 들어있는 베일에 싸인 물질로 부터 시작된 의학 재료를 공급하기 위한 존재들이다. ‘근원자를 알 길 없는 그들은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이다. 그들의 진로는 기증자가 되거나 신체를 기증한 사람들의 간병인이 되는 길 뿐이다. 인간답지 못한 환경에서 사육되는 복제인간을 안타깝게 여긴 몇몇 뜻있는 사람들이 교육을 시키면 똑같은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학교를 세운다. 기숙학교 헤일셤 출신의 캐시가 소설의 주인공이다. 간병인으로 일하고 있는 캐시는 헤일셤 시절 친하게 지낸 루스와 토미와 재회하면서 과거를 회상한다.

 

이야기는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 헤일셤 아이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모른 채 양질의 교육을 받지만 어렴풋이 자신들이 복제인간이라는 걸 눈치챈다. 정확히 얘기해주는 사람이 없는 가운데 미래의 꿈을 꾸기도 하고, 절망하기도 하면서 나름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2부는 헤일셤 생활을 마치고 코티지에서 대기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캐시를 비롯한 교육받은 복제인간들은 자신들의 꿈을 실현할 수 있을지 여부를 타진한다. 하지만 길은 모두 막혀있다.

 

3부에서는 최고의 간병사가 된 캐시가 루스와 토미와 지내는 시간들이 펼쳐진다. 루스는 두 차례 기증을 한 후 몸 상태가 악화되자 캐시에게 토미의 간병을 부탁하면서 두 사람이 연인이 되길 바란다는 말을 남긴다. 그동안 자신이 두 사람 사이를 방해했다면서. 루스가 떠난 뒤 세 차례 기증으로 인해 몸이 약해진 토미를 돌보는 캐시, 일생 가운데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헤일셤에서부터 떠돌던 뜨겁게 사랑하는 우수 커플은 기증 기간이 유예되어 몇 년간 행복하게 지낼 수 있다는 말을 확인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결국 헛소문임이 밝혀진다. 네 번째 기증을 앞두고 캐시를 떠나보내는 토미, 결국 캐시는 토미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는다.

 

복제인간이라는 사실을 정확히 몰랐던 아름다운 유년을 갖게 된 걸 감사해야 하는 걸까. 일찌감치 복제인간 임을 깨닫고 아무 생각없이 사육당하는 게 차라리 나은 삶일까. 모든 것이 차단된 상황에서 가능성을 찾아 헤매는 행보들을 지켜보며 여러 생각을 하게 되는 게 이 소설의 특징이다. 소설 속의 일반인들은 인간의 이식용 장기가 밑도 끝도 없이 불쑥 생기는 거라고, 진공실 같은 곳에서 배양되는 거라고 믿고 싶어한다. 장기 교체로 암을 치유할 수 있게 된 세상에서 그 치료를 포기하고 희망없는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복제인간이 일반인보다 우수하다는 게 증명되는 게 무서운 사람들에 의해 헤일셤을 비롯한 복제인간 교육기관은 모두 문을 닫는다. 캐시가 답답한 현실 앞에서 흐느끼지도 자제력을 잃지도 않는것으로 소설은 끝난다.

 

SF소설이면서 성장소설 형식을 띠고 있는 나를 보내지 마는 세상의 수많은 생명들에 대해, 보이지 않는 것들에게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가볍고 충동적이며 파괴적인 이야기가 난무하는 세상에서 가즈오 이시구로가 던지는 격조있는 질문에 찬찬히 답해보라. “나를 보내지 마!”라고 외치는 당신의 클론을 만난 듯한 느낌과 함께 꿈꾸며 달릴 수 있는 나의 삶이 소중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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