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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최보기의 이런 기능성 책이라니!] 내가 거미라고?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8-01-08
조회수 292

내가 거미라고?


글_최보기(작가. 북칼럼니스트)

 


 


『아픔이 길이 되려면』 김승섭 지음/ 동아시아 刊/ 2017

 

군대에서 뭔가를 잘못한 중대장이 대대장으로부터 군화 발길질을 당했다. 중대장은 소대장에게, 소대장은 병장에게 기합을 주었다. 다시 병장은 상병에게, 상병은 일병에게 화풀이를 했다. 일병에게 화풀이를 당한 불쌍한 이등병은 그러나 화풀이 상대가 없다. 이등병은 연병장을 어슬렁거리던 개를 걷어찼다. 가장 불쌍한 것은 영문도 모른 채 얻어맞은 개라는 것이 이야기의 주제다.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도 날마다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 영문이나 원인도 모른 채 당하는 아픔 말이다.


이를 비슷하게 설명하는 과학이론으로 ‘나비 효과(Butterfly Effect)’가 있다. 기상학자 로렌츠의 이론인데 브라질 나비의 날갯짓이 미국 텍사스에 토네이도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초기의 미세한 차이가 시간이 흐르면서 엄청난 결과의 차이로 귀결된다. 수많은 변수들 때문에 주가, 기후, 사회적 사건의 장기적 결과를 예측하기 쉽지 않다는 주장이다. 요즘 나비 효과는 과학보다 경제학이나 인문학적 개념으로 더욱 활용되고 있다.


많은 독자들과 언론, 오피니언 리더들이 2017년 나온 국내 저자의 책 중 의과대 교수 김승섭의 『아픔이 길이 되려면』을 높이 치고 있다. 이 책은 해가 바뀌었지만 여전히 베스트셀러다. 책이 말하는 아픔은 저자가 의학자인 만큼 질병이 유발하는 육체적, 정신적 아픔 그대로다. ‘은 그 질병과 아픔의 원인을 제대로 찾아 치료함으로써 아픔의 근본을 제거하는 인류 공생의 길이다. 대개의 질병과 아픔의 원인은 놀랍게도 아픈 개인 차원의 건강관리나 책임을 넘어 사회 구조와 인식에 있는 경우가 많아서다.


저자 김승섭은 그걸 ‘원인의 원인 (the causes of the causes)’이라 한다. ‘우울증이나 결핵 환자의 질병 원인은 일차적으로 정신()과 병균이지만 더 깊이 연구해보니 학교폭력, 성차별 등 그가 사회로부터 받았던 불이익이나 취약한 주거환경이었다. 그러므로 왕따나 차별을 없애려는 사회적 노력과 저소득층 복지 강화가 우울증이나 결핵을 줄이는 인 것이다. 저자는 그 원인의 원인을 철학적 추론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 데이터(Data)’로 증명한다.
 

1966년 루마니아 국가원수 차우세스코가 낙태금지법(Decree 770)을 시행했다. 출산율의 급격한 저하를 막으려는 것이었다. 이 법은 1989년 루마니아 혁명으로 폐기될 때까지 23년 동안 루마니아 사회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친다. 4년은 출산율이 급격히 상승했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여성들이 불법으로 낙태를 하면서 1985년 출산율은 원위치 됐다. 원치 않았던 아이와 양육비 부담으로 고아원 아이들이 급증했다. 불법 낙태 과정에서 의료사고나 감염으로 모성 사망비율이 법 시행 이전보다7배나 올라갔다. 주변의 불가리아, 체코보다 9배나 높았다. 낙태금지법이 철폐되자 모성 사망비율이 절반으로 감소했다. ‘모성 사망이라는 아픔을 제거하는 은 산모의 건강관리가 아니라 법의 폐지에 있었다.
 

그게 ‘원인의 원인이다. 우리나라는 비교적 안전한 임신중절수술이 가능하기에 산모 사망을 실감하기 어렵지만 매년 ‘68,000여 명이 그런 아픔을 당하고 있다. 여기에는 유산을 위해 여성들이 택하는 약 40가지의 위험한 방법들에 의한 태아와 산모의 죽음도 포함된다. 그런데 이런 아픔이 주로 가난한 여성들에게 집중된다. 근본적으로 산모 사망을 줄이려면 의료 복지가 선행돼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원인의 원인이다. ‘인도에서 거리에 들끓는 쥐를 없애기 위해 쥐를 잡아오는 사람에게 마리 수 당 대가를 지불했더니 아예 쥐를 대량 사육해 가져오더라는 것처럼 우리가 겪는 아픔의 근본 원인은 엉뚱한 곳에 있는 경우가 다반사다.


미국 시카고 서부에 있는 론데일 북부와 남부는 지리적으로 가깝고 인종, 연령, 빈곤율, 독거가정비율이 비슷하다. 그런데 폭염으로 인한 사망률은 북부가 남부보다 10배 이상 높다. 지리적, 경제적으로 비슷한 두 지역의 이런 차이는 폐허의 도시공간, 뒷골목 마약, 높은 범죄율 때문이 아니었다. ‘공동체의 붕괴가 원인이었다. 불안한 치안으로 외출을 꺼렸고, 다른 주민을 믿지 못해 집 밖의 위급상황에 개입을 피했다. 높은 폭염 사망은 폭염으로 위협을 당하는 론데일 북부 사람들이 이웃에게 쉽게 도움을 요청할 수 없는 사회 구조때문이었다.


이는 우리의 세월호 참사에 맥락이 닿는다. 우리 사회가 평소 서로의 생명을 존중하는 공동체 의식에 투철 했다면 안전불감증이나 불법개조, 불법 운항을 생각지 못했을 터 세월호는 훨씬 안전 했을 것 아니겠는가? 연말연초 우울한 뉴스들이 우리를 우울하게 했다. 제천에서는 대학에 합격해 모처럼 외할머니를 찾았던 소녀의 가족 등 여러 사람이 운명을 달리했던 화재사고가 있었다. 소방대의 늑장 대응과 가연성 건물 외장재, 소방로 불법주차 등 여러 원인들이 지적됐다. 그러나 한 꺼풀만 더 파고들어 보면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이웃들의 안전불감증과 그것을 제도적으로 보강하지 못하는 국가(정부)가 근본적인 원인제공자다.


책은 읽는 목적은 각자 다르다. 무료한 시간을 달래려는 사람은 공상과학소설이나 연애소설을 찾는다. 물론 만화책을 찾는 사람도 많다. 무엇인가 공부를 하려는 사람은 그 분야 전문가가 쉽게 쓴 교양지식서를 찾는다. 성찰이나 힐링의 시간을 갖고 싶은 사람은 문학이나 명상집을 찾는다. 의지가 박약한 사람은 자기계발서를 찾는다. 김승섭의 『아픔이 길이 되려면』은 우리 사회에 대한 보다 책임 있는 시민으로 거듭나기 위한 성찰을 고급지게하라는 책이다.


메르스와 결핵 같은 질병부터 성소수자(동성애) 차별, 해고 노동자들의 고충, 대기업 공장 근로자의 직업병, 세월호 참사, 외국인(인종) 차별, 여성차별(직장의 유리천장, 가사노동, 육체적 폭력) 등 많은 아픔의 원인의 원인’(the causes of the causes)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당연히 원인과 원인이 그물처럼 엮인 원인의 그물망(web of caution)을 친 주인공은 거미. 내가 혹시 그 거미는 아니었을까? 반성과 성찰이 『아픔이 길이 되려면』에 있다. 우리의 외국인 차별에 대해 한국을 떠나면 당신도 소수자입니다가 저자의 뼈아픈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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