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열기
닫기
이전으로 돌아가기

독서인

메뉴타이틀

게시물 상세화면
제목 [소설가 장마리의 독서지략] 말을 알아듣는 꽃이라니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8-01-08
조회수 364



말을 알아듣는 꽃이라니

글_장마리(소설가)








▲『조선해어화사』/이능화 지음/동문선/1992▲



전라북도에는 ‘한옥자원활용 야간상설공연’이라는 이름의 전통문화예술공연이 있다. 즉 한옥자원을 활용하여 전통문화예술 공연으로 관광객을 유치하고 우리의 전통문화 예술을 지켜나가라는 의도의 문화예술공연이리라.
 

한옥하면 전주 한옥마을만 연상하는데 정읍이라는 작은 도시에서도 이 이름으로 공연을 한다. 작년 가을에 지인으로부터 이 공연에 쓸 시나리오를 부탁받았는데 이곳 대표가 시나리오 작가를 꼭 만나고 싶다는 기별을 해왔다. 사실 나는 소설가이지 시나리오 작가가 아니라 이런 사정도 말할 겸 부득이 정읍시 산외면에 위치한 ‘고택문화체험관’을 찾았다.
 

단아한 모습의 50대 후반의 대표는 한국무용을 전공한 예술인이었다. 그녀는 다짜고짜 내게 ‘기생’에 대해 ‘권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춤과 노래를 하는 ‘예기(藝妓)’가 아니냐고 대답했고 ‘권번’이란 그러한 예기들을 양성하는 곳이 아니냐고 답했다. 대표는 원래 이곳이 ‘고택문화체험관’이 아니라 ‘권번 문화예술원’이었는데 정읍시 의원들이 ‘권번’이라는 말은 일제시대의 잔재이니 사용하면 안 된다고 하여 부득이 이름을 그렇게 바꾸었다며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나는 그녀의 한숨이 이해가 갔다. 하지만 당황스러운 면이 없지 않았다. 한국무용을 전공한 예술가로써 현직에서 물러나, 그와 관련한 연구를 하는 일로 말년을 보내겠다는 그녀의 의지가 솔직히 아름다워 보였으나 ‘권번’이라는 말이 일제 때 사용하던 말임에는 틀림이 없기 때문에 좀 난감한 마음이 들었다.
 

그녀는 ‘권번 문화예술원’이라는 현판을 걸었을 때 자신의 의도가 결코 나쁘지 않았다는, 왜곡되어 있는 정읍시 의원들의 인식을 이번 공연에서 혁신하고자 한다고 했다. 다시 말해 ‘기생’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우리의 전통문화를 수호하고 지켜나간 예기였음을 알릴 수 있는 작품을 상연하고 싶다는 거였다. 즉 몸 팔고 술파는 기생이 아니라 예술을 지켜나간 예기의 이야기를 써달라는 부탁이었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아니 소설을 쓰는 사람이라면 ‘기생’이라는 단어는 매우 끌리는 소재임에 틀림이 없기 때문에 나는 일단 알았다고 대답하고 그녀와 헤어졌다.
 

그런데 얼마 안 있어 다시 연락이 왔다. 삼례에 있는 문화예술촌 책박물관에 『조선해어화사』라는 1926년에 발행한 진본이 있는데 그 책을 함께 보러가자고 했다. 나는 흔쾌히 그러마 하고 삼례로 갔다. 하지만 진본은 구경 못하고 돌아왔다. 인터넷으로 1992년에 동문선에서 간행한 『조선해어화사』를 주문했다.
 

이 책은 일제 식민통치 중엽에 출간된 것으로 여러 서적에서 기생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발췌하여 고대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 이능화(李能和)의 주관적 입장으로 서술한 우리나라 문헌사상 최초의 기생사(妓生史)였다.
 

흥미로운 것은 고려와 조선시대의 기생은 천인 계급에 속했지만, 기생이 상대한 남자들은 왕후장상부터 한량, 이름 없는 사내까지 귀천이 없었다는 것이다. 또한 국제적 외교 자리나 국내 정계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차지했으며, 그녀들은 시가(詩歌)를 비롯해 전통무용 등을 계승 발전시켰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고려 때 문인 정지상이 지은 「송별送別」이 기생과의 이별을 앞두고 지은 시라는 것도 새롭게 안 내용이었다. 학교 다닐 때 이 시는 친구와 이별을 앞두고 그 심정을 애절하게 표현한 시라고 배운 기억이 있다. 여기에서 친구란 임금이 될 수도 있고 함께 학문을 연마했던 친구라고 배웠다. 그런데 그 친구가 기생이었다니 생각도 못했다.
 

 

비 개인 언덕에는 풀빛 더욱 푸르른데 雨歇長堤草色多

남포에서 그대 보내니 이 마음 슬퍼지네 送君南浦動悲歌

대동강 물 어느 때나 다할까 大洞江水何時盡

이별의 눈물 해마다 푸른 물결에 더하리. 別淚年年添綠波

 

또한 『배비장전』을 통해 잘 알고 있는 내용인데, 평양감사의 비장이 평양에 도착해서 한 기생을 사랑하다 이별하고 돌아올 때 이빨을 뽑아주고 서로 맹세를 잊지 않았다. 하지만 약속을 배반했다는 소식을 듣고 사람을 보내 이빨을 찾으니 기생이 상자를 가지고 나와 이빨이 가득 담겨 한 되 가까이나 되는 상자를 보여주고, 기생이 웃으면서 “배비장의 이빨도 이 가운데 있으니 알아서 찾아가라”고 했다는 내용도 실려 있다. 덧붙여 이빨 관련 이야기가 하나 더 있는데, 계림의 창기가 한 소년과 정을 나누고 헤어질 때 “원컨대 그대의 몸에 달린 물건을 얻고자 하옵니다”라는 말에, 소년은 이빨을 뽑아주고 도성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듣자 하니 그 기생이 다른 남자를 취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 이빨을 돌려달라고 하자, 기생이 손뼉을 치고 “도살장에서 죽이는 것을 경계하고 창가의 예를 나무라는 것은 어리석음이 아니면 망령이로다”하며 웃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하나 더 소개를 하자면, 졸지에 갑부가 된 사람을 오금장자(烏金長者)라고 하는데 이 말은 올공금팔자(兀孔金八字)라는 속담에서 유래한 내용이라고 한다. 올공금이란 것은 장고(杖鼓)의 용구철(龍駒鐵 )로, 옛날 전주에 사는 한 상인이 생강을 배에 가득 싣고 평양 대동강에 닻을 내렸다. 생강은 남쪽 지방에서 나는 귀한 물건이라 관서 지방에서는 매우 비싼 가격이라 큰돈을 벌게 된 것이다. 평양의 이름난 기생이 그를 유혹하여 돈을 가로챈 것이다. 그는 빈손으로 돌아갈 수 없어 그 기생집에 머물면서 고용살이를 했다. 땔나무를 해오는 등 손발이 닳도록 일하는데 어느 날 또 다른 상인이 그 기생의 꼬임에 놀아나는 것을 보고 “불 땔 놈이 또 왔군”이라고 했다. 결국 상인은 견디다 못해 돌아가려고 기생에게 사정을 하여 노자 돈이라도 보태달라고 하자 기생은 집안의 먼지가 켜켜이 쌓인 창고에서 장고의 올공금 열여섯개가 가장 쓸모가 없다고 생각하여 던져 주며 “가다가 이것으로 양식이나 마련하시오.”라고 했다. 상인은 할 수 없이 올공금을 들고 길을 가다가 모래흙에 닦아보니 까맣게 윤이 나는 것을 알고 시장으로 달려갔다. 시장 상인은 “이것은 오금(烏金)이다. 황금보다 열 배나 비싼 것이다.”라고 하여 부자가 되어 돌아왔다는 이야기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아쉬운 것은 자신의 신분에, 그러니까 홍길동이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와 신분에 고뇌하여 의적이 되듯, 기생은 자신의 처지와 상황에 대해 문제제기를 한 인물이 어째서 한 명도 없는지 안타까웠는데, 제주 기생 ‘만덕’이 그 인물에 해당되었다. 만덕은 양가의 여자였는데 어려서 부모를 잃고 의지할 데가 없게 되자 기녀의 집에 몸을 의탁하여 살았다. 자라서 관가의 기적에 만덕이라는 이름을 올리게 되자, 자신은 기생이 되기 싫다며 관부(官府)에 호소하여 기적에서 이름을 빼주었다. 그 후 장사를 하여 큰돈을 벌어 성공하여 부를 취득하고 남에게 베풀었다. 임금이 제주 목사를 통해 그녀에게 “소원이 무엇이냐?”고 묻자 “도성으로 가서 임금 얼굴을 한번 보고 금강산을 유람하는 게 소원이오.”라고 했다고 한다. 당시 여자로는 기개가 대단한 듯하다.
 

그 외,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부안 매창의 이야기와 황진이 이야기도 나온다.

정리해 보면 기생이란 각 고을의 관비 중에서 선발하여 노래와 춤을 가르쳐서 여악(女樂)으로 사용했다. 양민계급의 아녀자도 교방(敎坊)에 적을 두어 관청에 들어가 공적(公的)인 역할을 했다. 어느 집에 손님이 오면 초청받아 기예를 하고 행하(行下:일한 대가)를 얻어 생업을 했다. 평양의 교방이 그 예이다. 평양의 교방은 많은 동녀(童女)가 이곳에 들어가 노래를 익히고 춤을 배워서 나라에 진연(進宴)이 있을 때 뽑혀서 공연을 했고 본 고장에서도 손님이 오면 영업을 했다. 서른이 넘으면 기생 노릇을 그만두고 시집가서 살기도 하고, 기생어미로 전업하기도 하고, 혹 술을 팔아서 생업을 삼기도 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왜 기생을 화류계의 여자로 인식하게 된 것일까? 내가 찾아본 바로는 일제 강점 때 예기들의 전통문화예술 공연자로서의 역할을 대폭 축소시키고, 도쿠가와 시대(德川時代)의 유곽제도를 1916년 3월 데라우치 총독이 공창제도로 공포했기 때문이었다. 이후 텔레비전 드라마나 영화, 책에서 기생들은 그러한 이미지로 묘사되었다. 일본이 우리 전통문화 예술을 말살하려는 한 일환으로 작용한 것인데, 작가나 연출자가, 그러한 역사적 사실은 간과하고 흥미와 자극적인 장면을 시청자나 독자, 관객에게 보여주려는 의도가 지나친 것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교방’을 뜻하는 일본 말이 ‘권번’이다. 따라서 예기양성소를 ‘권번’이라고 부르면서 기생들의 기적을 관리하던 조합이 되었고 요정 출입을 지휘하고 화대를 받아주는 중간역할을 담당하게 된 것이다.
 

기생을 일패(一牌)라고 한다. 牌는 단(團) 또는 조(組)의 의미로 예기들을 일컫는다. 은밀하고 다정한 것을 은근(慇懃)이라고 표현한다. 이는 은밀히 몸을 파는 여자를 은근자(慇懃者)라고 했다. 오늘날 와전되어 은군자(隱君子)라고 부른다. 즉 은밀히 性을 판다는 뜻으로 二牌가 이에 해당된다. 그리고 三牌를 탑앙모리(창녀의 호칭)라고 부른다. 매음(賣淫)하는 유녀(遊女)를 말하고 이들은 잡가(雜歌)를 할 뿐 기생처럼 노래와 춤은 하지 못한다. 구한말에 삼패는 경성 각처에 흩어져 있다가 광무 연간에 신태휴(申泰休)가 경무사로 있으면서 남부의 시동(詩洞)을 삼패의 거주구역으로 정했다. 삼패의 집을 상화실(賞花實)이라고 불렀고 신창조합이 창립되면서 삼패도 기생이라 불렀다.
 

나는 책을 덮고 ‘권번 문화예술원’ 대표가 원하는 예기에 대한 시나리오를 쓰기로 결심했다. 즉 자신이 타고난 신분에 구애받지 않고 기생이 되어 나라를 구하는 일에도 힘을 쓰는 예쁘고 아름다운 ‘기생’을 2018년 정읍 고택문화체험관에 환생시키기로 마음먹었다. 부디 많은 이들이 작품을 감상하고 그녀의 바람대로 잃어버린 ‘권번 문화예술원’이라는 이름을 되찾기 바란다.■


 

이전글
[최보기의 기능성 책이라니!] 평양감사도 먹어야 산다
다음글
[마음을 읽는 여자 박상미와 책읽기] 나만의 비밀을 만드는 여행
0 / 100
  •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