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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마음을 읽는 여자 박상미와 책 읽기] 백년 여관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8-02-06
조회수 155

혼령이 산 자를 구해내고,
살아남은 자가 죽은 원혼을 달래는 환상소설

글_박상미(교수)



『백년여관』 /임철우/문학동네/2017

 

지독하게 아픈 현실의 공간 속에 별과 같은 사람들이 등장하고, 눈물겹게 따뜻한 서정의 세계가 마술 같은 상상력과 어우러진다. 마치 ‘묘약’과 같은 위안을 안겨 주는 소설가 임철우의 작품을 만나면 자연스레 ‘마르케스’가 떠오른다. 마르케스의 소설만큼 환상적인 요소가 많지만, 마르케스보다 임철우의 소설이 더 감동적이다. 이유는, 동양의 신비로움과 더불어 한국 근대사 100년을 살아내며 상처받은 인간들을 끌어안고 함께 우는 작가의 애끓는 눈물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임철우의 장편소설 <그 섬에 가고 싶다>(1991)를 읽고 영화감독 이창동은 “다양하고 생동감 넘치는 인간들은 마치 햇빛이 짱짱한 세계, 신화에 나오는 인물들 같다”고 서평에 쓰기도 했다. 그는 영화 <그 섬에 가고 싶다>(1993)의 시나리오를 쓰고 조감독을 맡으면서 영화계에 입문했다. 문자를 읽으면 머릿속에 영상이 펼쳐지는 임철우의 상상력이 소설가를 영화감독으로 탄생시키는 계기를 제공한 것은 아닐까.
 

1980년 5월, 광주 이야기가 오로지 풍문과 유언비어로만 떠돌던 시대의 한가운데에 소설가 임철우가 있다. 그는 오늘까지 살아남았고, 1981년부터 지끔까지 ‘가열차게’ 광주항쟁과 그 정신에 관한 소설을 써왔다. 그는 오랜 시간 ‘8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로 불려왔고, 그 평가는 결코 과분하지 않다. <봄날>,<백년여관>,<이별하는 골짜기>와 같은 걸출한 작품들이 좋은 본보기다.
 

죽은 자와 살아남은 자, 그 모두의 아픔을 보듬기 위해서 일제시대부터 제주 4·3항쟁, 6·25 때의 보도연맹 사건, 80년 광주항쟁까지, 무려 우리나라 100년의 역사를 다루며 글을 써온 소설가 임철우.
 

97년에 <봄날>이 나왔을 때, ‘작가와의 대화’ 행사에 찾아갔었다. 어떤 기자가 “언제까지 과거의 이야기, 광주 얘기만 할 거냐”라는 질문을 했다. 그 때 작가는 눈물을 흘리며 답했다.

“5·18은, 광주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에요. 그 고통이 지금의 나를 구성하고 있는데, 그게 어찌 과거인가요. 비극의 역사는 우리의 현재예요.”
 

그 후로 임철우의 소설은 허구가 아닌, 임철우의 목숨이 받아쓰는 원혼들의 목소리로 나에게 다가왔다. 80년 5월, 광주에서 죽음을 선택한 사람이 있고, 살아남아서 그것을 증언하는 길을 택한 사람이 있다면 후자를 택한 게 그의 삶이었다. 몇 해 전 5월에 그를 만났을 때, <백년여관>을 두고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눴다.
 

“한을 품고 죽어간 사람들도 고통스럽지만, 살아남은 사람들 역시 고통스럽죠. 그 아픔을 안고 죽어간 사람들을 기억하고 그 이야기를 하는 건 결국 산 자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작가는 적어도 자기가 살아온 시대의 문제를 재단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서영채 문학 평론가도 동석한자리. 그가 작가 임철우에 대해 이렇게 정의를 내렸다.
 

‘죄의식의 밀도와 무게를 가지고 임철우를 말해야 한다.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 작가는 전 세계를 통틀어서 300년 이내엔 장자크 루소와 임철우밖에 없다.’
 

<봄날>을 집필할 당시, 연구실 옆방을 쓰고 있었는데, 밤늦게 공부를 하고 있으면 임작가가 연구실 문을 열고 들어와 ‘광주의 원혼들 때문에 힘들다’며 눈물을 흘린 적이 많았다고... 임작가는 힘겹게 그때를 회상했다.
 

“그 당시 광주에서 일어난 일을 서울 친구들에게 말을 하니 믿지를 못해요. 그래서 거짓 없이 진실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는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했어요. 친형도 광주 31사단 대위였고 계엄군이었어요. 친구들도 군대에 있었고... 사실 계엄군 시민군 모두 우리 자신이에요. 10년에 걸쳐서 5권짜리 장편소설 <봄날>을 겨우 완성했어요. 그때를 생각하면 거의 미쳐있었던 것 같아요. ‘내가 이 소설을 못 끝내고 죽으면 어떡하나… 제발 끝낼 수만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봄날> 쓰고 나서 나는 이제 소설 못 써도 좋다, 다 됐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한동안 아무런 글도 쓰지 못했어요. 풀리지 않는 뭔가가 있었죠. 불면증으로 고생하면서 눈물과 술, 분노로 저를 학대했어요.”
 

'봄날' 이후 ‘백년여관’을 쓰기 까지 4년 동안 그는 몸과 마음을 지독하게 앓아야 했다. 결국 뇌졸중으로 길바닥에 쓰러졌다. 그 순간에 깨달았다. 죽음은 삶과 항상 함께 있었다는 것을…. 다시 쓰기 시작했다.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 살고 있는 가상의 섬 ‘영도’ 이야기를.
 

'백년여관'은 임철우의 작가적 삶에 큰 획을 긋는 소설이다. 한국의 문화와 역사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작품이라는 인정을 받아서 중국에서도 번역과 더불어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백년여관>은 한국 현대사의 희생양이 된 원혼들의 신내림을 받은 작가 임철우가 한바탕 굿판을 통해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그린 ‘환상소설’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무녀 조천댁은 이 땅을 떠도는 구슬픈 혼령들을 초대해 굿판을 벌인다. 백 년만에 딱 한 번 찾아온 개기월식일 밤에. 그 곳은 산 자와 죽은 자, 기억하는 자와 망각하는 자가 함께 어우러진 환상적이면서도 매우 현실적인 공간이다. 혼령이 산 자를 구해내고, 살아남은 자가 죽은 원혼을 달래는.
 

‘마술적 리얼리즘’의 세계를 보여주는 ‘한국의 마르케스’라는 평가를 받지만, 그의 소설은 마르케스보다 고통을 아름답게 승화시키는 초자연적인 힘이 강하다. 본인도 마르케스를 읽으며 정서적 유사성을 많이 느꼈다고 말한다.
 

“고통이 너무 크면 울음도 안 나오지요. 울음으로도 담을 수 없을 때 ‘허허허’ 웃음이 터지고 미친 사람이 되는 거죠. 하늘에서 피가 쏟아지고 나무도 사람도 동물도 함께 미치는 듯한…. 온 세계가 함께 뒤틀리고 피범벅이 돼서 비명을 지르게 되죠. 인간의 고통을 자연이 함께 조응하고, 죽은 자가 튀어나와서 산 자와 같이 이야기하는 초자연적인 현상들이 일어나죠. 마르케스 작품들을 읽으면서 토속적인 발상과 문화가 우리와 비슷하다고 느꼈어요.”
 

우리 사회가 어찌해야 과거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을지 함께 고민했으면 좋겠다. 자기 욕망만 보지 말고, 우리를 생각해야 한다. 함께 사는 우리가 힘들다면 나도 결코 행복할 수 없다. 시대의 삶이 내 삶이 될 때, 불행한 역사는 반복되지 않는다. <백년여관>은 어둡지 않게 역사의 아픔을 이야기 한다. 고통과 비극적인 시대의 아픈 이야기는 무한한 상상력의 옷을 입고 또 하나의 ‘증언설화’로 거듭 태어난다. 80년 5월의 폭풍 속에서 신이 그를 살아남게 한 이유를 나는 안다. 산 자들에게 ‘묘약’과 같은 위안을 안겨주고, 한 서린 영혼들이 못 다한 증언을 대신해 줄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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