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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최보기의 이런 기능성 책이라니] 삶의 지혜가 가득한 책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8-03-02
조회수 310
삶의 지혜가 가득한 책
글_최보기(작가.북칼럼니스트)

『꽃의 제국』 강혜순 지음/ 다른세상 刊/ 2002
 


 

서평가를 놔두고 굳이 북칼럼니스트라 했던 이유는 첫째, 저자가 누구든 그가 심혈을 기울인 책에 대해 감히 평가를 한다는 것이 주제 넘는 것이라 생각했다. 둘째, 주관적 독후감이나 단순한 줄거리 요약보다 읽히는 서평을 씀으로써 독서 욕구를 자극 하자는 취지였다. 그러기 위해 쉽고 재미있게 쓰되 가급적 책의 구체적 내용은 많이 언급하지 않는 방향으로 쓰고자 노력해왔다. 그런 관점의 글은 개인적 경험상 1,500 자가 적당했다. 답안지 길다고 점수 잘 나오는 것 아닌 것처럼 글이 쓸데없이 길어지면 독자들을 지루하게 만들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 분량을 넘어서는 책 소개는 처음부터 아예 을 포기한다. 책의 내용에 치중하는 것이 글도 편하고 독자에게 더 이롭다는 판단 때문이다.
 

빌 브라이슨의 명저 『거의 모든 것의 역사』에 따르면 가장 깊은 바다 밑부터 에베레스트 산 꼭대기까지 생물이 살 수 있는 지구 공간의 높이는 20Km다. 우리가 사는 집을 우주라 친다면 20Km는 지붕의 페인트칠 두께도 안된다. 인간은 그중 0.05% 안에서 생존이 가능하다. 물속, 땅속, 하늘이 아닌 육지에서만 살 수 있는데 인류가 살기 적합한 육지는 전체의 4%에 불과하다. 강혜순의 『꽃의 제국』은 나머지 96%까지 광범위하게 지구를 지배하는 식물들의 번식 전략에 관한 보고서다. 실상의 지구는 만물의 영장인류의 제국이 아니라 꽃의 제국이라 그들에게서 배울 지혜가 많다는 것이다. 저자는 두뇌도 없는 식물이 어떻게 수억 년 동안 지구를 지배했을까?’ 묻지만 그건 역설로 읽힌다. 식물은 20만 년 전 지구에 출현했던 호모사피엔스보다 무려 35억 년이나 먼저 태어났다. 먹이사슬의 맨 아래에서 동물들의 식량과 산소를 틀어쥐고 있는 그들은 지구상 생명체의 99%를 점유하고 있다. ‘식물인간이라는 인간들의 폄훼와 달리 그들도 가 있고 언어가 있고, 생각이 있다. 아파하기도 한다.
 

필자는 『꽃의 제국』이 다루는 내용들과 매우 유사한 다큐멘터리를 시청한 적이 있다. 교육방송(EBS)으로 기억된다. 그날 방송에 나온 나무 중 지구상에서 가장 큰, 장수 생물이라는 자이언트세콰이어 나무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이 나무는 산불이 나 주변 온도가 200도 이상 올라가야 씨앗을 터뜨려 번식을 꾀한다. 스스로는 1미터에 달하는 껍질 속에 수분을 충분히 담아 산불을 견디어 낸다. 뜨거운 불 앞에서 모든 생물이 소멸될 때 남다른 번식을 선택한 역설의 결기가 그에게 제왕의 관을 선물하지 않았을까? 그 방송을 보는 순간 사즉생 생즉사(死卽生 生卽死)’의 진리와 인생의 블루오션 전략을 절감했다.
 

평소 등산이나 숲길 산책을 즐기는 필자는 지천에 널린 식물들을 보면서 딱 한 가지가 늘 부럽다. 그들이 예외없이 빛과 물을 이용한 엽록체의 광합성으로 에너지(식량)를 자체 생산한다는 점이다. 소설가 김훈의 『밥벌이의 지겨움』을 벌써 이야기 했지만 밥벌이가 궁극적으로 우리 인간을 얼마나 힘들게 하는가 말이다. 한겨울에 모든 잎을 버린 채 알몸으로 서서 눈 쌓인 가지로 칼바람과 대결하고 있을 때는 불쌍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것 또한 인문학적 관점일 뿐이다. 알고 보면 잎으로부터 모든 영양물질을 회수해 봄에 있을 광합성에 대비하는 식물의 지혜로운 생존전술인 것이다.
 

나팔꽃씨는 한의학에서는 유용한 약재로 쓰이지만 인문학에서는 건강한 사람에게 몰래 먹여 몸을 망치게 하는 음습한 존재로 대우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작가들은 그 이유를 나팔꽃이 암수한꽃인 데서 찾는다. 암수한꽃은 하나의 꽃봉오리 안에 암술과 수술이 모두 갖추어져 암꽃과 수꽃의 구별이 없는 꽃인데 우리 곁에 가장 흔한 나팔꽃이 그 대표다. 유전학적으로 볼 때 극히 열성 인자다. 몸에 해로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를 나팔꽃 입장에서 해석해보면 어떻게 될까? 암꽃과 수꽃이 각각 따로 널려있는 꽃은 어차피 바람이든 벌이든 누군가에 의해 꽃씨가 퍼트려져야 하므로 꽃씨 방어에 대한 전략을 세울 이유가 없다. 그러나 나팔꽃은 꽃씨나 꽃이 훼손되는 순간 번식 없는 종말을 맞는다. 그러니 함부로 나를 따서 먹다가는 너의 몸이 망가진다는 무기를 갖춰야 하지 않았을까? 물론 이는 필자의 작가적 상상일 뿐이지만 식물들의 이런 기막힌번식 전략을 낱낱이 해부하기에 강혜순의 『꽃의 제국』은 재미가 크다.
 

더군다나 이 책은 무척이나 아름답다. 저자의 설명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같이 편집된 사진들이 매우 고품질 일색인데 그것들이 모두 꽃사진이라서 그렇다. 당연히 사진의 품질을 위해 종이 또한 고급지를 썼다. 편집에 남다른 심혈을 기울인 것도 금방 눈에 띈다. 누구든 일단 손에 넣으면 쉽게 남 주기 아까운 책이라 생각할 것이 분명하다. 필자 역시 아무리 귀한 손님이 와서 서재의 책들을 탐하더라도 이 책은 절대로 주지 않는다.
 

5월이면 울진 불영계곡은 소나무 꽃가루(송홧가루)로 인해 노랗게 물이 든다. 바람에 꽃가루를 날려 바늘구멍보다 작은 0.04밀리미터의 암술머리에 안착 시켜야 하는 풍매화의 번식 전략은 인해전술이다. 금낭화나 얼레지 같은 꽃들은 주로 개미를 유인해 씨앗을 퍼뜨린다. 물론 공짜는 없다. 이들 식물들은 개미를 부리기 위해 개미의 식량이 될 우윳병(엘라이오좀)을 씨앗 껍질의 일부에 장착해둔다. 인동초의 꽃은 6월에서 7월 사이에 주로 핀다. 흰꽃과 노란색 꽃을 함께 볼 수 있어 금은화라고도 한다. 흰 꽃은 아직 수정이 되지 않은 꽃이고, 노란 꽃은 수정이 끝난 꽃이다. 노란 꽃에는 더 이상 꿀이 없다. 인동초는 꽃색을 변화시켜 꿀벌에게 미리 꿀이 없음을 알리는 것이다. 곤충 중 유일하게 날개가 몸통보다 작은 꿀벌은 비행을 위해 초당 약 230번의 날개짓을 한다. 꿀을 따와 로열젤리를 만드는 일벌은 중노동으로 인해 수명이 평소보다 줄어들 정도다. 꿀도 없으면서 그 꿀벌을 속이면 다음 해에 꿀벌이 오지 않을 수 있다. 그럼 종족의 번식도 끝이다. 인동초는 꿀벌의 헛수고를 막는 배려를 함으로써 공존의 길을 택한다. 남을 배려하는 것이 곧 나를 위하는 길임을 식물 인동초가 간명하게 일깨워주지 않는가 말이다. 마지막 한 마디, 제 철이 아닌데 꽃이 피는 경우 철 없는 행동이 아니라 생명에 위기를 느껴 번식을 서두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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