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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소설가 이근미의 책 세상] 카타리나가 당한 미디어 폭력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8-03-02
조회수 346
 

카타리나가 당한 미디어 폭력
글_이근미(소설가)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하인리히 뵐 지음/ 민음사 펴냄/ 2008

 

우리는 뉴스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수많은 매체가 뉴스를 쏟아내고 여러 포털이 뉴스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쏟아지는 뉴스를 재가공하는 일로 떠오른 유튜버와 파워블로거들도 있다. 내가 쓴 연예인 분석 기사를 토씨하나 안 바꾸고 22분 동안 읽어주는 유튜브 동영상을 발견했는데 화면에도 제목에도 출처 안내가 전혀 없어 놀라고 말았다.

 

어떤 뉴스는 인터넷과 SNS를 넘나들다가 어느 순간 쓰나미가 되어 세상을 휩쓸어 버린다. 몇 해 전 표절 사건으로 문단이 시끄러웠는데 이미 1990년대에 신문에서 뜨거운 공방을 벌인 사안이었다. 당시 몇 번에 걸쳐 작가와 평론가가 공격하고 반박하는 글을 주고받았지만 유야무야되었다. 확산시킬 루트가 없었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뉴스가 퍼져나가고 댓글로 의견을 표할 수 있는 지금은 ‘걸리면’ 곱게 보내지 않는다. 미투 운동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도 만천하에 공개할 도구가 생긴 덕분이다. 갖가지 변명으로 덮어보려던 이들은 더 큰 창피를 당하고 ‘3일이면 잠잠해진다’는 신부님의 순진한 문자는 전 국민이 알게 되었다.

 

1인 미디어 시대, 누구나 기자이며 누구나 독자이다. 실시간으로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접하고, 확산시키고, 응징하고, 환호한다. 뉴스를 보고 감동도 울분도 공유하는 세상이다. 파급력이 큰 만큼 쓰는 것 이상으로 알리고 퍼트리는 일에도 신중을 기해야 한다.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는 ‘혹은 폭력은 어떻게 발생하고,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가?’라는 부제를 달고 등장했다. 작가 하인리히 뵐은 1917년에 태어나 1985년에 세상을 떠났다. 1972년에 노벨문학상을 받고 2년 후 이 작품을 썼는데 당시는 TV, 라디오, 신문, 잡지 같은 고전적인 매체가 뉴스를 전했다. 이 작품은 초판 10만부가 바로 매진되고 영화와 텔레비전 프로그램으로 제작되는 등 보기 드문 사회적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뵐이 최대 부수를 자랑하는 <빌트>지와 논쟁을 벌인 이후 쓴 작품인 데다 내용이 매우 사실적이어서 반향을 일으킨 것이다.

 

뵐이 자신이 입은 마음의 상처와 저널리즘에 대한 생각을 카타리나라는 한 여성의 운명을 통해 묘사한 작품 속으로 들어가 보자. 1974년 2월 20일 저녁 6시 45분 경, 카타리나 블룸은 무도회에 참석하기 위해 집을 나선다. 4일 후 그녀는 형사 주임 발터 뫼딩의 아파트를 찾아가 “신문기자 퇴트게스를 사살했으니 나를 체포하라”고 말한다.

 

가정경제학교를 졸업한 27세의 카타리나 블룸, 깔끔하고 정직하게 살림을 대행하는 가정관리사이다. 오전 7부터 4시30분까지 정기적으로 일하고 퇴근 후에는 다른 집에 가서 두 시간씩 일한다. 주말에도 리셉션, 파티, 결혼식, 무도회, 상점 등 부르는 곳이 많아 바쁘다. 요리사로 가정관리사로 단순한 급사로 쉬지 않고 일해 아파트와 차를 장만했으며 병든 어머니에게 매달 생활비를 보낸다.

 

이혼녀인 그녀에게 유혹이 많지만 끄떡도 하지 않는다. 어느 날 무도회에서 만난 괴텐에게 한 눈에 반했고, 그와 자신의 아파트로 온다. 다음날 정문이 아닌 다른 곳으로 나갈 수 있도록 도운 그 남자는 하필이면 경찰이 1년 넘게 추적해온 살인강도 용의자였다.

 

27세의 아름다운 여성과 범법자, 흥미로운 먹잇감을 발견한 퇴트게스 기자는 1면에 카타리나의 대형사진과 함께 갖가지 추측을 쏟아놓는다. 그동안 카타리나 집에 들른 ‘신사 방문객’들에 대한 의문을 표하고, 카타리나가 오래전부터 괴텐과 관련이 있었다고 단정하면서 고인이 된 아버지, 병석의 어머니, 감옥에 있는 오빠, 이혼한 남편까지 세상 앞에 낱낱이 드러낸다. ‘겨우 27세의 가정부가 자기 힘으로 비싼 아파트를 분양받고 차를 몰고 다니는 게 가능하냐’는 비아냥 섞인 내용에다 카타리나 주변사람들의 말을 교묘하게 각색해 집어넣는다.

 

거짓말로 가득 찬 선동적인 기사가 계속 보도되자, 독자들은 전화를 걸거나 편지를 보내 카타리나를 성적으로 조롱한다. 급기야 퇴트게스가 페인트공으로 위장해 병실에 침입한 이후 카타리나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는 일까지 발생한다. 카타리나는 사실과 다른 기사를 마구 써대는 데다 어머니까지 갑자기 죽자 직접 인터뷰를 결심한다.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은 퇴트게스는 카타리나의 아파트로 찾아와 성희롱 발언을 하며 그녀의 몸에 손을 댄다. 카타리나는 결국 권총을 발사하고 만다.

 

소설은 58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3장에 미리 퇴트게스 살해 사실을 밝힌 뒤 경찰 심문 과정, 기사가 왜곡되는 상황, 괴텐을 피신시킨 이유와 방법, 권총을 습득하게 된 경위,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서 형태로 이어간다.

 

소설 속에서 퇴트게스는 “비인간이어도 인간적이어야 하는가?”라는 명목을 내세운다. 카타리나는 기자를 사살한 후 “후회도 없고 유감도 없었다”는 섬뜩한 발언을 한다. 사실과 거짓이 마구 뒤섞여 발가벗겨지는 카타리나와 독자들의 알 권리라는 명목 하에 무차별 보도를 일삼는 퇴트게스, 이들이 낯설지가 않다. 44년 전에 발표된 이 소설을 읽을 때 등골이 서늘해지는 이유이다.

 

사건이 터지면 수많은 매체들이 경쟁적으로 보도를 쏟아낸다. ‘사실’을 캐내는 과정에서 ‘추측’이 난무하고 개인의 ‘인권’은 무참히 짓밟히는 일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소설 중간 중간에 수록된 기사를 통해 어떤 식으로 사실이 왜곡되고 선정적으로 변색되는지 살펴보면 뉴스를 대하는 눈이 생길 것이다. 불리한 위치에 처하면, 일일이 설명할 수 없는 순간들은 결국 범죄구성 요건이 된다는 것도 소설 속에 잘 드러나 있다.

 

1인 미디어 시대는 누구나 기자면서 독자이다. 리트윗이나 팔로잉, 댓글의 파급력도 만만찮다.수많은 보도가 쏟아질 때 정확한 관점을 갖고 사실과 진실을 가려내는 눈이 필요하다. 또한 독자가 관심을 갖는 뉴스가 어떻게 확대 재생산되는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언론 홍수 시대, 가려지는 것은 무엇이고 극대화 시키는 것은 무엇인가. 카타리나와 퇴트게스 두 사람의 입장을 다 생각하며 소설을 읽으면 폭력의 앞모습이 선명히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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