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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소설가 장마리의 독서지략] 이번 주 토요일에 뭐할래?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8-03-05
조회수 408

이번 주 토요일에 뭐 할래?
글_장마리(소설가)

 





이언 매큐언/『토요일』/문학동네/2013
 
 

내가 이언 매큐언의 소설을 좋아하게 된 것은 좀 오래되었다. 소설 습작을 하면서였으니까 얼추 십년은 넘는 것 같다. 읽는 독자에서 쓰는 작가가 되겠다고 마음먹고 소설창작 커뮤니티에 들어갔다. 국문학을 전공했고 나름 소설을 읽었다고 자부하던 터였기에 소설창작 커뮤니티에 들어가면 금방 작가로 입문할 줄 알았다. 그러나 내가 들어간 소설창작 커뮤니티는 신춘이나 문예지 등에 등단한 초보 작가들과 최종심에서 경합하다가 떨어진, 이미 작품성이나 실력은 인정받았으나 운(運)이 허락하지 않아 등단을 못한 예비 작가들도 있었다. (우리는 등단을 운칠기삼(運七氣三)에 빗대어 말한다. 그래서 운이 좀 있어야 등단할 수 있다고들 한다.) 그런 반면에 나 같이 자신의 실력은 모르고 기고만장해 있는 사람들도 꽤 되었다.

 

습작품을 합평 받을 때 그 참담한 심정은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칼질’을 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소설창작 커뮤니티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글을 잘 쓴다는 평가를 주위사람들한테 받은 터라, 아직 등단을 하지 않은 아마추어임에도(대부분은 겸손한척은 하지만) 심하게 자존심에 상처를 입는다. 커뮤니티를 이끄는 작가는 별 말을 하지 않는다. 습작을 하는 문우들끼리 신랄하게 작품을 난도질한다. 어떻게라도 그 참담함에서 벗어나고자 애절한 눈길로 작가에게 도움을 청한다. 그러나 대부분 커뮤니티를 이끄는 주인장은 담배를 피우거나 막걸리 잔을 비우며 모르쇠 한다. 결국에는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거나 심하면 말싸움이 일어나기까지 한다.

 

“그러니까 소설가로서 재주가 없으니 그만 두라는 말이네! 당신들의 의도는 충분히 알았어요. 어디 선생님도 그런가요?”
 

그만두겠다고 밖으로 나가거나 성질을 부리는 습작생은 있어도 이렇게 당돌하게, 작가에게 묻는 이는 없다. 대부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있다가 뒤풀이에 가서 술로 위로를 받는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발끈해서 소리를 쳤다. 작가는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고 피식 콧방귀를 뀌었던가? 아니 그렇지 않았다. 그는 몹시 화를 냈다.
 

“자만심을 버려요!”
 

전에는 이렇게 막무가내로 대드는 습작생을 다독일 수 있었단다. 그런데 지금은 나도 늙었는지 그런 투정을 받아 줄 마음의 여유가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어떻게 그날 집으로 돌아왔는지 기억나지 않았고 한잠도 잘 수 없었다. 사람이 물에 빠지면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 마음이 바로 그때의 나였다. 나는 최종심까지 갔으나 아직 등단을 못한, 자신을 드러내지 않던 입이 무거운, 그러나 착해 보이던 선배에게 내 참담한 심정을 글로 써서 메일로 보냈다. 며칠 후 그녀에게서 묵직한 소포를 받았다. 내 습작품을 온통 빨간 펜으로 수정해서 문장을 비롯한 문제점을 빼곡하게 적어 보냈다. 그리고 마리 씨의 열정에 찬사를 보내며 열심히 소설을 써보라는 짤막한 글과 도움이 되었으면 싶어 보낸다는 이언 매큐언의 『첫사랑, 마지막 의식』 단편집을 동봉했다. 이 책에 수록된 「나비」라는 작품을 필사해 보라고도 했다.
 

작가가 되어 소설창작반을 맡아 강의할 때면 나는 어김없이 이언 매큐언의 『첫사랑, 마지막 의식』 에 수록되어 있는 「나비」를 언급한다. 그리고 그 선배보다 가혹하게 원고지에 필사하라고 숙제를 내준다.
 

이언 매큐언의 소설은 문장의 치밀함에 있다. 집중하지 않으면 아니 인터넷 소설이나 웹툰 같은 줄거리 위주의 장르문학에 익숙해 있다면 자칫 지루해서 읽기가 힘들다. 하지만 그의 매력은 바로 퍼즐처럼 한 치의 틈도 허락하지 않는 문장의 치밀함이다. 나는 이언 매큐언이 발표한 소설을 대부분 갖고 있다. 『토요일』은 오래 전에 사놓고 책장에 꽂아 두었던 책이다.
 

요새는 작품을 쓰지 않고 딴 짓을 하고 있다. 아침에 바쁘다는 핑계로 간단히 빵으로 몇 끼를 때우면 어김없이 된장국에 누룽지까지 챙겨 먹어야 잘 먹었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런 심정이었다고 할까? 나는 『칠드런 액트』 옆에 꽂힌 『토요일』을 뽑았고 오랜만에 느긋하게 읽기 시작했다.
 

토요일, 2003년 2월 15일, 24시간 동안 일어나는, 하루의 일이다. 그런데 그 짧은 시간의 이야기를 400페이지가 넘는 분량으로 채우고 있다. 이날은 전 세계적으로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반전 시위가 벌어진 날이다. 9ㆍ11 테러와 뒤이은 이라크 전쟁의 여파로 국제사회가 떠들썩하던 시기가 배경인 이 작품은, 헨리 퍼론이라는 신경외과 의사의 평범한 일상 사이사이에 비일상적인 폭력의 이미지를 녹여내고 있다. 국제정치나 전쟁과 같은 거대 담론 대신, 인간의 내면이라는 작은 세계에서 벌어지는 폭력에 맞선 투쟁과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능력 있는 신경외과 의사 헨리는 새벽에 잠을 깬다. 사랑하는 아내가 잠에서 깰까봐 나이트가운을 걸치고 베란다로 나온다. 2월의 새벽바람은 차다. 하지만 그는 옷깃을 여민다. 이 나이 때가 되면 간혹 깊게 잠들지 못 하거나 일찍 잠을 깨기도 한다. 그때 하늘을 가르는 비행기 한 대를 발견한다. 그 비행기는 곧바로 불이 붙고 추락한다. 거리가 멀지만 분명 도시 한 복판의 비행기 추락이라 엄청난 재앙을 예감한다. 너무 추워 다시 방으로 돌아오고 침대로 돌아간다. 차가운 느낌에 아내가 깨고 그들은 사랑을 나눈다. 변호사인 아내는 토요일 아침인데도 출근을 하고 자신은 그대로 누워 나른함을 좀 더 즐긴다. 동료 의사와 약속한 스쿼시 게임을 지키기 위해 메르세데스를 끌고 집을 나선다. 그런데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반전 시위 때문에 길이 막히고 골목을 찾아 들어간다. 그곳에서 예기치 않게 접촉사고가 나고 헌팅턴을 앓는 이십 대 후반의 백스터라는 건달에게 호되게 당한다. 그는 신경외과 의사답게 퇴행성신경질환을 앓는 백스터를 흥분하게 만들어 그 자리를 빠져나온다. 기분이 나빠졌지만 아무렇지 않게 동료 의사와 스쿼시를 치지만 3:2로 지고 집에 돌아온다. 뮤지션인 아들 시어와 음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시어는 촉망받는 뮤지션이다. 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기분이 좋아진다. 무엇보다 저녁에 사랑하는 딸, 문단에 주목을 받고 있는 신예 작가 데이지가 6개월 만에 온다. 데이지는 메이저급 출판사에서 곧 시집을 낸다. 또한 노시인 장인도 온다. 데이지에게 문학적 영감을 제공한 것은 바로 장인이다. 그는 그들을 위해 작은 파티를 준비하기 위해 생선을 사러 갈 계획이다. 그 전에 치매를 앓고 있는 요양원에 들러 어머니를 뵙고 아들이 일하는 술집에 들러 새로 발표하는 음악을 듣기로 한다. 그의 토요일은 이처럼 여백이 없다. 마침내 어머니를 뵙는 요양원의 공간에서, 새벽에 잠을 설쳤기 때문에, 몽롱해지고 잠을 자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면회시간에 맞춰 헤어지고 아들이 공연하는 술집을 들른 후 집으로 와 부지런히 가족들을 위해 요리를 한다.
 

모든 식구가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는 이때, 사랑하는 아내가 마지막으로 집에 들어서는 이때, 헌팅턴을 앓는 백스터가 나타나 아내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장인의 코뼈를 부러트리고, 데이지를 발가벗긴 후 시를 낭송하게 한다. 그런데 발가벗은 데이지는 임신을 하고 있다. 가까스로 헨리는 시어의 도움으로 백스터를 계단 아래로 넘어트리고 제압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헨리의 토요일은 이렇게 막을 내리지 않는다. 계단에 넘어지면서 뇌를 다친 백스터를 위해 병원으로 가서 수술을 집도한다.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이다. 새벽이 넘어서야 집으로 돌아온다. 아내가 잠든 방으로 들어가 그들은 오늘 하루 있었던 일에 대해, 끔찍했던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데이지의 임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22살의 어린 초보 아빠와 엄마가 될 그 애들의 고생이, 마치 자신들이 겪었던 지난 과정과도 같다고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들은 사랑을 나누고 드디어 잠으로 빠져 든다.
 

24시간 동안 일어난 헨리의 일상이 핍진한 묘사 때문에 잘 맞춰놓은 퍼즐 조각 같다. 매큐언의 문장에 집중하면서 느긋하게 옆에 차 한 잔을 놓고 음악을 들으면서 읽기에 좋은 소설이다. 특히 토요일에 읽으면 더 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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