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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마음을 읽어주는 여자 박상미와 책읽기] 사무치게 낯선 곷에서 너를 만났다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8-03-05
조회수 285
사무치게 낯선 곳에서 너를 만났다
글_박상미(교수)




「사무치게 낯선 곳에서 너를 만났다」 / 이주영 지음 / 나비클럽 / 2017

 

한국의 바쁜 일상을 살다보면, 사무치게 그리운 것들을 마음 놓고 그리워 할 여유조차 없을 때가 많다. 낯선 땅에서 낯선 언어로 만났던 내 친구들은 어디서 무얼 하며 살고 있을까... 독일에 살 때 만난 친구들이 하나 둘 기억을 뚫고 눈앞에 나타났다. 나이도, 국적도, 전공도 다르지만 정말 힘 들 때 만나서 마음 한구석 떼 주며 받아주고, 기대며 친구가 되었던 사람들. 멕시코 청년 카를로스, 이란 아가씨 크리스틴, 독일 할머니 엘케 룸멜, 아제르바이잔 아가씨 피단 카리자다, 터키 청년 하칸, 의남매를 맺었던 독일 청년 로버트 파비안...
 

잠시 생각에 잠기다 말고 나는 이내 현실로 돌아와서, 마감 시간을 넘긴 글을 쓰고, 세금 독촉장 고지서를 챙기다보면... 시간에 쫒기는 만큼 빠른 속도로 그들은 추억 속으로 밀려나고 만다. 나의 현재에 함께 존재할 수 있는 친구들은, 바쁘다는 핑계로 멀리 있다는 핑계로,‘추억’이라는 기억만이 닿을 수 있는 공간으로 유배되고 마는 것이다.
 

하루하루를 마감 시간에 쫒기며 사는 인생. 그 많던 친구들은 어디로 갔을까... 탄식하다가 <사무치게 낯선 곳에서 너를 만났다>에서 이런 문장을 만났다.

 

“오래된 친구라 맘 놓고 욕할 수 있는 것은, 프랑스나 한국이나 마찬가지다. 마구 욕하고 친구도 아니라고 생각 없이 소리칠 수 있는 것은, 아무리 그래봤자 친구였고, 친구이고, 친구일 거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래봤자 친구였고, 친구이고, 친구일 거기 때문’이라는 믿음을 주는 친구가 진짜 친구지! 생각하며 몇몇 얼굴을 떠올려 본다. 어떻게 지내지? 목소리 들은 지 한참이구나... 그들은 나를 그들은 친구라고 생각 할까? 덜컥 걱정이 된다. 그 많던 친구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국경을 초월한 친구들 이야기를 풀어놓으며, 작가는 말한다.‘세상 모든 이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친구’라고.

 

“나는 세상 모든 사람들을 친구로 본다. 친구 세상에는 차별이 없다. 조금 손해 봐도 친구니까 별로 속상하지 않다. 맘에 안 드는 면이 보이면 대놓고 맘에 안 든다고 말할 수 있는 편한 관계가 서로를 성장시킨다. 무엇보다 나에게 친구는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는 열쇠이자 내가 갇힌 틀에서 탈출하는 비상구였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헤맬 때마다 같이 미로를 걸어준 길동무였고 어리버리한 나를 위해 대책을 강구하며 길을 제시해준 네크워크였다. 나에게 친구는 살아 숨 쉬는 지도였다.”

 

‘세상 모든 이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친구’라는 마음가짐으로 살아 온 작가의 이야기를 읽으며 ‘친구’라는 존재가 오늘 나를 ‘여기’있게 한 주역들임을, 오늘 여기까지 오게 한 수십 장의 ‘지도’였음을 느끼며 사무치게 그들이 그리워졌다. 지나온 시간을 같이 했던 친구들은, 타인이 아니라 내 인생을 함께 만든 나의 일부였다. 잊고 있던 나의 꿈을 ‘친구’덕분에 에 낯선 곳에서 이루게 된 저자의 이야기는, 기억 속의 친구들을 모조리 호출해서 사무치게 그리워하고, 감사하게 만든다.
 

우울하게 살아가던 소심한 길치 아가씨가 단식투쟁 끝에 집을 떠난다. 집을 나서자 몰랐던 세상의 문들이 열린다. 도쿄, 로마, 서울, 파리에서만난 괴짜들과 친구가 되자, 다른 인생의 문들이 연거푸 열린다. 한국에서 나고 자랐다고 한국이 가장 편하다고 할 수 있나. 작가는 한국이 오히려 낯설기만 하다. 정신적인 난민을 자처하여 떠돌며 만난 친구들은 매일 새로운 지도를 함께 그려주는 동지가 된다. 마흔다섯,‘이미 늦었다’는 스스로가 만든 감옥에 갇혀서 떠오르는 꿈들을 ‘주책’이라고 치부해버리기 쉬운 나이에 그림 그리는 작가가 된 것도 모두 갈에서 만난 친구들 덕분이다. 자기를 찾는 유랑은 친구들을 만나는 여정이었다.
 

애완견을 위한 비디오를 제작하기 위해 바닥을 기어다니는 카메라맨, 난민 친구들을 돕느라 가정파탄 직전인 프랑스 전업주부, 야한 성인용 책을 팔아먹는 착한 카사노바, 벨기에에서 도자기를 굽기 위해 동성결혼을 꿈꾸는 이성애자, 어딜 가든 책을 짊어지고 다니는 책벌레, 퍼주기 좋아하는 일본 새댁, 우아한 욕만 가르쳐주는 이탈리아 청년...
 

세상이 ‘비정상’이라 말하면 어떤가. 서로에게 ‘특별한’점을 발견해주고, 격려해주고, 같이 웃다보면 친구가 되고, 함께 꿈의 지도를 그려주는 인생 기획자들이 된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각국을 헤매던 우울한 길치였던 저자에게 따뜻한 휴식을 제공하고 다른 세상으로 안내해준 살아 있는 지도는 바로 친구였다.

 

“‘사람들은 친구가 없어 외롭다’고 한다. 나는 친구가 있어도 외롭다. 친구는 외로움을 대신해주는 존재가 아니라 그냥 내 외로움을 지켜보는 것밖에 못하는 무기력한 존재이다. 그래서 나는 친구가 있어도 외로운 것이고, 외로워도 친구가 있는 것이다.”
 

친구는 나의 외로움을 채워주거나, 나의 어려움을 해결해주는 존재가 아니라, 그냥 내 외로움을 지켜봐주며 옆에 있어주는 사람일 것이다. 친구를 사귀는 능력은, 어떤 상황에서도 친구를 알아보고 먼저 다가가서 마음을 전하는 능력이 아닐까. 작가는 오랜 시간 혼자 길을 헤매면서, 외로움을 견디는 법을 스스로 터득한 사람이기에, 자신처럼 외로운 친구를 먼저 알아보고, 내가 아팠던 만큼 친구의 아픔을 감지해 내는 능력이 탁월하다. 그리고 나의 그에게 맞는 체온으로 다가가서, 나의 체온으로 그를 덥혀줄 줄 안다. 길을 잃어본 자만이 줄 수 있는 위로를, 길 잃은 친구에게 건넨다. 친구가 된 그들은 내가 외로울 때 나의 외로움을 감지하고, 어느새 다가와 내 옆에 앉아 그들의 체온으로 나를 덥혀 준다.
 


친구는 나에게‘특별한 존재’다. 내 친구에게 나도 ‘특별한 존재’다. 누군가에게 특별한 존재로 인식되기 위해 애쓰는 존재들 사이에 생겨나는 ‘특별한 정’이 바로 우정이 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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