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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최보기의 이런 기능성 책이라니] 글은 어떻게 써야 하는가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8-10-29
조회수 235



글은 어떻게 써야 하는가

글_최보기(작가, 북칼럼니스트)






『문장강화』 이태준 지음. 임형택 해제 / 창비 刊 / 2005

 
 

바야흐로 콘텐츠 시대다. 콘텐츠(Contents)는 어떤 형식 안에 채워지는 내용이다. 책과 글, 카메라와 사진, 캔버스와 그림, 무용가와 몸짓, 가수와 노래까지 전자가 형식이면 후자는 내용, 콘텐츠다. 일본과 중국, 동남아를 벌써 넘어 유럽, 미국까지 뒤흔드는 한류(韓流)가 바로 ‘한국’이란 형식에 채워진 한국적 콘텐츠다. 콘텐츠는 대부분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다. 아무것도 없던 것에서 읽고, 보고, 듣고, 만지고, 느끼게 해주는 그 무엇들이다.

 

지구를 꽉 채우고도 남을 무수한 콘텐츠 중에 명작으로 평가 받는 문학, 예술 등의 작품은 짧게는 몇 년, 길게는 수십 년 갈고 익힌 거장들의 손에서 탄생한다. 톨스토이, 김소월, 베토벤, 임방울, 비틀즈, 방탄소년단(BTS), 피카소, 이중섭, 피겨의 여왕 김연아에 이르기까지 명품 콘텐츠를 만들어 낸 사람들은 오랜 기간의 ‘지독한’ 학습과 훈련을 거쳐 완성된 명장들이다.

 

학습과 훈련은 대부분 말과 글로 시작된다. 둘 중에는 글이 말보다 보편적이고 전방위적이다. 21세기 들어 새삼스럽게 ‘글쓰기’가 중요한 이슈로 떠오른 이유다. 사회 각 분야에서 콘텐츠를 익히려는 사람이든, 전하려는 사람이든 ‘글쓰기’가 매우 중요한 도구로 떠오른 것이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글을 잘 쓰고 싶어하지만 잘 쓰기가 쉽지 않다. 이는 당연하다. 글쓰기 또한 오랜 학습과 훈련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글을 못 쓰는 이유는 간단하다. ‘안 쓰기’ 때문이다. 글은 부지런히 쓰면 반드시 실력이 는다. 다만, 어느 분야나 먼저 정상에 이른 거장이 쓴 입문서가 있다. 그것을 독파하면서 훈련하는 사람과 그냥 맨땅에 헤딩하는 사람, 누가 더 지름길을 달리게 될지는 뻔하다.

 

20세기 초반 상허 이태준이라는 대단한 소설가가 있었다. ‘시는 정지용, 산문은 이태준’이라 했을 정도다. 그가 쓴 불후의 명작 중에 글쓰기 입문서 격인 ‘문장강화’가 있다. 글을 쓰는 사람은 어떤 자세와 마음으로 써야 하는지, 글을 잘 쓰려면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책이다. 우리나라에서 글깨나 쓰는 사람치고 이 책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1946년에 초판이 나왔던 책인데 지금도 통할까 싶어 걱정할 필요 없다. 글을 쓰는 자세와 방법은 그때나 지금이나 같을 뿐만 아니라 출판사에서 지금의 언어에 맞게 손을 봐 다시 출판 했다.

 

상허 이태준 선생은 ‘글을 아름답게 꾸미려는 태도를 버리고 마음속에 있는 것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것이 가장 좋은 글쓰기 태도’임을 먼저 강조했다. 필자 역시 글을 자주 쓰다 보니 ‘정직한 글, 솔직한 글’이 ‘좋은 글, 잘 쓴 글’이라는 것을 몸으로 체득하게 됐는데 ‘솔직, 정직’이 바로 ‘마음속에 있는 것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것’의 다른 표현이다. 또 그렇게 쓰여진 글을 읽고 ‘어떤 사람은 웃고, 어떤 사람은 울고, 어떤 사람은 희망을 갖게 되고, 어떤 사람은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그 글이 다른 사람에게는 새벽 같은 빛이거나 캄캄한 어둠이 될’ 수 있다. 그저 함부로 쓸 일이 아닌 것이다.

 

여전히 ‘문장강화’를 읽으며 글쓰기를 수련 중인 필자에게도 가끔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느냐?’는 질문이 들어온다. 그때마다 대답은 “많이 써봐야 한다. 문장은 될수록 짧게 써야 한다”는 등 몇 가지 경험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작고하신 문학평론가 고 황현산 님은 ‘나를 위한 열 개의 글쓰기 지침’에서 ‘긴 문장을 명료하게 쓰는 것이 더 내공이 깊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그렇다. 비숙련가가 문장을 길게 쓰면 ‘괴발개발’이기 십상이라 짧게 쓰라고 권고할 뿐 그것이 정답은 아니었던 것이다. ‘많이 써보기, 솔직하기’ 등이 포함된 열 개의 지침은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얼마든지 볼 수 있는데 너무 명쾌 해 짧은 지침으로만 남은 것이 아쉬울 정도다. 참으로 다행인 것은 ‘문장강화’가 우리 곁에 남아있어 저 열 개 지침을 토대로 글쓰기 수련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 만큼 ‘문장강화’는 매우 자세하고, 구체적이고, 생생하다. 가령 “평어, 경어와 문장 : '나는 세상을 비관하지 않을 수 없다.', '저는 세상을 비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는'이나 '없다'는 평범하게 나오는 말이다. '저는'과 '없습니다'는 상대자를 존칭하는 정적(情的)의식, 상대의식이 들어있다. '나는'과 '없다'는 들띄워놓고 여러 사람에게 하는 말 같고, '저는'과 '없습니다'는 어떤 한 사람에게만 하는 말 같다. 평어(平語)는 공공연하고 경어(敬語)는 사적인 어감이다. 그래서 '습니다 문장'은 읽는 사람이 더 개인적인 호의와 친절을 느끼게 한다. 호의와 친절은 독자를 훨씬 빠르게 이해시키고 감동시킨다.“식의 가르침이다.

 

”한가지 생각을 표현하는 데는 오직 한 가지 말밖에는 없다고 한 플로베르의 말은 너무나 유명하거니와 그에게서 배운 모빠쌍도 ‘우리가 말하려는 것은 무엇이든 그것을 표현하는 데는 한 말밖에 없다. 그것을 살리기 위해선 한 동사밖에 없고, 그것을 드러내기 위해선 한 형용사밖에 없다. 그러니까 그 한 동사, 그 한 형용사를 찾아내야 한다. 그 찾는 곤란을 피하고 아무런 말이나 갖다 대용함으로 만족하거나 비슷한 말로 맞추어 버린다든지, 그런 말의 요술을 부려서는 안된다’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명사든 동사든 형용사든, 오직 한 가지 말, 유일한 말, 다시 없는 말, 그 말은 그 뜻에 가장 적합한 말을 가리킴이다. 가령, 비가 온다는 뜻의 동사에도 비가 온다, 비가 뿌린다, 비가 내린다. 비가 쏟아진다, 비가 퍼붓는다가 모두 정도가 다른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식의 가르침이다.

 

당대의 대가답게 ‘어떻게 써야 잘 쓴 글인가, 글은 어떤 자세로 써야 올바른 글이 되는가’에 대한 ‘꼬장꼬장’한 가르침이 처음과 끝을 이루어 빽빽한 책 ‘문장강화’는 글쓰기 초보를 넘어 중급자까지도 글쓰기 기초와 소양을 닦는데 도움이 크게 될 책이다. 다음은 인터넷에 전해지는, 어느 세계적인 문호가 남긴 글쓰기에 관한 명언이라고 한다.

 

“당신네 아마추어들이 무엇을 쓸지 고민하는 사이에 우리네 프로들은 글을 쓰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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