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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명자의 엉뚱한 고전읽기] [한비자] 인간 내면 탐구의 교과서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8-10-29
조회수 94


[한비자] 인간 내면 탐구의 교과서


글_명로진(작가)



[한비자] 인간 내면 탐구의 교과서

-한비 지음, 김원중 옮김, [한비자] 글항아리



 

[한비자]를 쓴 한비는 동양의 마키아벨리에 비유된다. 아니, 한비가 먼저 활동했으니 마키아벨리가 서양의 한비겠지. [한비자][군주론]은 모두 그 시대의 군왕에게 바친 글이다. 나라를 잘 다스리려면, 신하를 잘 부리려면, 아랫사람에게 속지 않으려면 이리저리 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두 책을 쓴 저자 모두 민중을 위한 군주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을 위한 리더를 추구한다는 거다. 그런데 [한비자]는 군주만을 위한 책이 아니다. 군주에게 직접 리더십 덕목을 제시하는 부분 이외에는 다양한 이야기가 숨어있다. 어쩌면 한비는 군주론을 빌미로 거대한 인간심리 교과서를 쓰려했는지도 모른다. 한비는 인간 내면을 극한의 깊이까지 파고든다. [비내備內](내부를 방비하라)편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군주의 재난은 사람을 믿는 데서 비롯된다. 다른 사람을 믿으면 그에게 지배 받게 된다...부부는 골육의 정이 없다. 서로 사랑하면 가깝지만, 사랑하지 않으면 소원해진다. 이런 말이 있다. "어미가 사랑스러우면 그 자식도 품에 안아 준다그러므로 이 말을 뒤집으면 이렇게 된다. "어미가 미움을 받으면 그 자식은 땅에 팽개쳐 진다."

남자는 나이 오십이 되어도 여색을 좋아하는 마음이 그치질 않으나 여자는 나이 삼십이면 미모는 쇠한다. 미모가 쇠한 부인이 호색한 장부를 섬기면, 그 자신이 내몰리고 천시되지 않을까 염려하고 자식이 왕위를 계승하지 못할 까 염려하게 된다. 이것이 후비와 부인들이 군주가 일찍 죽기를 바라는 이유이다. (184~185)

 

1인과 후궁 다수 사이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다 치자. 그럼 평범한 부부 사이는 어떨까? 한비는 마찬가지라고 단정한다.

 

위나라의 한 부부가 기도를 드리는데, 축원하며 이렇게 말했다. “저희가 공짜로 베 백 필을 얻게 해 주십시오.” 그 남편이 말했다. “어찌해서 조금 바라오?” 그녀는 대답했다. “이보다 많으면 당신은 첩을 살 것이기 때문입니다.” (397)

세상에 믿을 사람 없다는 거다. 부인도 남편도 이기적이라는 거다. 한비는 어린 시절 바람피운 아빠에게 버림받은 엄마를 보고 트라우마가 있었던 게 아닐까? 아니면, 한비의 말이 사실일까? 나와 한 집을 쓰는 분에게 물었다.

당신은 공짜로 한 10억 원 쯤 생기고 내가 외도하는 게 좋겠소? 아니면 그냥 이대로 사는 게 좋겠소?”

그녀가 대답했다.

내 통장 계좌 번호 불러 줄게요.”

...이게 현실이구나. 2,300년 전 춘추 전국 시대 한비의 통찰력은 역시 대단했구나. 그럼 한비는 인간을 죄다 못 되 처먹고 치사하고 상종 못할 존재로 그렸을까? [한비자]라는 방대한 책을 악인으로만 채울 수는 없었을 터. 미담도 실었다. 공자의 제자 자고가 모함을 받아 위나라에서 쫓겨나게 생겼다. 성문을 통해 탈출하다 문지기에게 걸렸다. 자고는 위나라에서 재판관으로 활동했는데 하필 자고가 발 잘리는 형을 내린 문지기였다. 그런데 문지기 보소. 자고를 숨겨 주어 위기를 벗어나게 하네? 어찌된 일인지 자고가 묻자 문지기는 답한다.

내가 죄를 지었으니 발꿈치를 잘린 것은 어쩔 수 없소. 당신이 내 죄를 판결할 때 보니 다방면으로 살피고 나를 변호해 벌을 줄이려 했소. 형이 확정 되자 당신의 얼굴에 안타까운 모습이 보였소. 그때 알게 되었소. 당신의 천성이 인자하다는 것을. 이 때문에 당신에게 보답한 것이오.”

고전이 고전인 까닭은 현대에 적용되기 때문이다. 만약 21세기를 사는 우리를 설득하지 못한다면 고전은 가치를 잃는다. 사람 사는 모습은 이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그 보편 속에 내장된 심사心事의 광맥을 캐내어 역사의 강물에 뿌린 이들이 인문고전의 저자다. 다만 보석은 사금의 형태라 읽는 이들은 모래를 거르고 조각을 탐하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이를 얻을 수 있다.

한비는 고대 중국에서 있었던 갑질을 고발하면서 아랫사람에게 말 한 번 잘못하면 엄청난 비극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제나라에서 궁궐 안의 일을 처리하는 벼슬아치인 중대부 중에 이야夷射라는 자가 있었다. 그는 왕을 모시고 술을 마시다가 매우 취해 밖으로 나가 회랑 문에 기대고 있었다. 그때 발을 잘린 문지기가 무릎을 꿇고 말했다.

어르신께서는 남은 술이 있으면 저에게 내리실 뜻이 없습니까?”
이사가 말했다.
네 이놈, 물러가라. 형벌을 받은 자가 어찌해서 감히 술을 구걸하느냐?”

발이 잘린 자는 재빨리 물러났다. 이야가 그곳을 떠나자 발이 잘린 자는 회랑문의 난간 아래에 물을 뿌려 소변을 본 모양을 만들었다. 다음 날 왕이 지나다 이를 꾸짖으며 말했다.
누가 이곳에 소변을 보았느냐?”
발이 잘린 자가 무릎을 꿇고 대답했다.
신은 보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어젯밤 중대부 이야가 이곳에 서 있었습니다.”
왕은 이에 이야를 벌해 죽였다. (401)

 

누가 술 한 잔 달라고 하면 그냥 조용히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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