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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마음을 읽어주는 여자 박상미의 책 읽기] 눈부신 꽝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8-10-30
조회수 362



『눈부신 꽝』 - 김연숙


글_박상미(교수)



 



『눈부신 꽝
』 김연숙 지음/ 문학동네 시집 / 2015


 

"여기에 내가 있었다.

 

누군가 글자를 새겨놓았다는

수용소 마당의 돌멩이를 생각하곤 했다.

 

이 작은 돌멩이 하나를 이제

그대에게 보내드린다."

 

시집을 열면 맨 먼저 볼 수 있는 '시인의 말'에 이렇게 쓰여져 있다. 아마도 이 시인은 고립된 상황에서, 누가 발견하여 보게 될지 아무도 읽어주지 않을지 모르는 자기만의 시를 적고 있었는가 보다. 내 손에 들어와 읽게 되는 그의 시편들은 돌멩이에 새겨진 글자들처럼 오롯한 힘이 있었다.

어느 시인이나 일상생활 속에서 시를 얻지만, 그 시가 힘이 있으려면 무한히 확산되어 가는 시적 알맹이가 있어야 한다. 가령 모르고 보면 어려운 말들의 나열로 보이는 시 '대표선수'를 예로 들어보자.

 

(전략)

지역불평등의 문제일까요

공존의 평화는 그렇게나 힘든 걸까요

마을을 급습한 화생방 살포

흩어져 누운 형제들의 시신을 멀리하고

이렇게 혼자 종이사막 위를 지나는

참으로 메마른 시간입니다

(중략)

적자생존과 이해관계라면 저는 알지 못합니다

랜덤으로 주어진 제 뿌리의 맹목적인 지향을

끝까지 따라갈 뿐

 

김연숙 시의 밀도는 촘촘하다는 단어로는 표현이 부족하다. 독특한 사유와 무심한 듯 정곡을 찌르는 날카로운 상상력이 씨실과 날실로 쫀쫀하게 짜여 진 거미줄 같다. 한 번 걸려들면 손에서 놓기 힘들다.

이 시에서 화생방살포는 바퀴벌레 살포를 말한다는 걸 잘 읽어보면 알 수 있다. 시인은, 아니 어쩌다 살아남은 한 마리 바퀴벌레는 묻는다. 함께 살아갈 순 없는 거냐고. 누가 생태의 강자이며 누가 누구에게 해로운 종족이냐고. 그것은 누가 판단하느냐고. 아무튼 바퀴벌레로 태어났으니 타고난 대로 살아갈 뿐이라고.

생활의 사소한 관찰에서 시작하여, 무심한 듯 던지는 시인의 질문들은 존재의 이유를 묻고, 관점을 비틀어 다시 질문한다. 독특한 사유 방식을 따라가다 보면 빨리 읽기는 어렵지만, 시인이 던진 무심한 한마디에 웃음이 터지기도 한다. 직접적으로 서정을 노래한 음유시인의 방식이라기보다는, 들여다보면 보석의 표면 저 깊이에 있는 불꽃을 발견하여 무릎을 탁 치게 되는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시인의 방연작은 흙의 방’, ‘물의 방’, ‘공기의 방’, ‘촛불의 방으로되어 있는데, 시 쓰는 시인을, 또한 읽는 독자를 무의식의 방으로 안내하며 차츰 비움과 정화의 과정을 거치게 해준다. 각자 나름으로, 다만 읽으면서, 해석하거나 의미를 찾으려하지 않고 무심하게 읽는 가운데, 차츰차츰 후련함과 가벼움을 느끼게 한다고 할까.

역시 방에 관한 시라고 할 수 있는 숨은 방’, ‘내 창문의 역사’, ‘기록에 없는 자에 관한 기록’, ‘잡념은 울창하다등등의 시는 자기만의 방 속에서 분리되어 있는 듯 하면서도 타인과 연결되어 있는 존재로서 방 속에서의 의식의 잘 나타내고 있다.

한 편 한 편에서 발견할 수 있는 독특한 유머들, 모던한 시적 감각들, 개인이자 끈끈한 네트워크 속의 한 점에 대해 이 시집은 치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알고보면 늦은 나이에 다시 시를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무엇이 이 시인을 시의 끈을 놓지 않고 다시 붙들며 이토록 정밀한 관찰과 추이와 잘 직조된 미적 감각의 시를 쓰게 했을까. 나는 그것을 이 시인의 눈에서 본다.

 

목덜미를 뜯기면서도 어린 영양은 / 보리라 / 무심한 초원 저 멀리 어질어질 / 환영처럼 피어오르는 땅의 열기를// 중략 //아가리를 벌린 재규어의 부어오른 목젖 // 깜빡이지도 않는 눈으로 지금도 / 보고 있는 것처럼 / 울지 않고, 보고 있는 것처럼 <렌즈>

 

굶주린 거울처럼 모든 것을 담아도 / 늘 비어있는 이상한 그것 / 모든 기억이 잠겨있는 / 담수호랄까 // 선회하며 추락하는 비행기 속에서도 / 될수록, 혼절하지 않으려는 / 팽팽하고 야릇한 그것 / 이 세상에 특파된 종군기자라네 <시인의 눈>

 

아마도 거울의 뒷면에 발라진 수은처럼 번지고, 스미지 않고 항상 작은 개체로 다시 태어나며 '빤히 되쏘는 저 눈!'(거울의 탄생)과 같은 눈을 지니고 세상에 특파된 종군기자와 같은 시인의 삶을 살아가기에, 시인은 시를 쓰는 존재인가 보다.

부드러운 미감의 시도 이 시집에서는 많이 발견할 수 있다. ‘고트스킨으로 만든 부츠를 신고 도시를 걸으며 시인은 생각한다.

 

무두질과 염색을 거쳐 내게로 온

외롭던 잠들을 생각 한다

남의 살갗을 가죽을 만지는 일은 무섭고도 부드러운 일

 

시인의 감성은 우리를 잠시 촉촉하게 해주며, 어린 생명의 잠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해준다.

 

돌산 절벽에 단단한 뿔을 걸고

허공에서 잠들던

어린 짐승의 눈동자를 생각 한다

별들 가득 반짝이는 밤하늘을 바라보다

스르르 눈을 감고 스며들던 혼자만의 잠

 

김연숙의 시를 읽고, 다른 어떤 시인이 떠오른 적이 없다. 그것은 오랜 세월 담금질한 사유의 언어를 김연숙만의 언어로 건져 올리는데 성공했다는 의미다. ‘누군가 글자를 새겨놓았다는 수용소 마당의 돌멩이는 끝내 누구에게도 발견되지 않을 수도 있다. ‘일 수도 있다. 시인은 나 여기 있다소리 칠 마음조차 없다. 김연숙 시인의 독특한 사유, 무심한 듯한 언어가 품은 유머의 힘을 발견한 이들은 그야말로 눈부신 꽝을 발견한 행운아! 그래서 거듭 읽을 때마다 새로움을 발견하게 되는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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