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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소설가 이근미의 책 세상] 언어의 줄다리기 관전 포인트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8-12-03
조회수 54

 

언어의 줄다리기 관전 포인트

글_이근미(소설가)




 

『언어의 줄다리기』 신지영 저 | 21세기 북스 | 2018년 11월


 

우리가 말을 할 때 끊임없이 줄다리기 한다는 사실을 의식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무슨 말부터 시작할까, 지금 치고 들어갈까, 여기서 멈춰야 하나, 이런 생각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나 실은 끌려가기도 하고 끌어당기기도 하면서 타인과 대화를 해온 것이다.

 

언어 표현을 위해 매 순간 거대한 줄다리기 경기를 펼치거나 관전하는 이유는 언어가 사회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제까지 괜찮았던 표현을 오늘부터는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고 습관적으로 사용했던 언어의 속뜻을 뒤늦게 알아 사용이 머뭇거려지기도 한다.

 

언어 속 숨은 이데올로기 톺아보기라는 부제가 달린 언어의 줄다리기를 읽다보면 단어 하나가 펼칠 수 있는 세계가 무궁무진하다는데 우선 놀라게 된다. 아울러 고려대학교 국문학과 신지영 교수의 깊고 넓게 톺아보는 힘에 매료되어 그동안 무심코 사용해온 언어를 되돌아볼 기회를 얻는다. 음성공학과 언어병리학을 연구하여 다양한 저작을 선보인 국문학자의 줄다리기 경기장은 언어의 중요성과 언어의 힘을 새삼 깨닫게 해 준다.

 

포인트를 딱딱 짚어주는 저자의 안내를 따라 10개의 언어 경기장을 돌아보자. 각 경기장마다 신문기사와 문서, 다양한 통계자료가 제시되는데 수십 년 전 자료부터 최근 자료까지 경기 흐름을 읽는데 도움을 준다. 저자는 원고를 쓰는 동안 너무나도 흥미로웠다고 밝혔는데 독자 입장에서는 풍부한 자료와 저자의 해박한 안내에 너무나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대통령 각하 vs. 대통령님, 미혼 vs. 비혼, 여교사 vs. 여성교사, 자장면 vs. 짜장면 등 줄다리기 운동장에 등판한 언어들은 우리가 그동안 별 생각 없이 사용해오던 것들이다. 대통령 각하에서 대통령님이 된 과정은 웬만큼 알고 있는 사안이다. ‘각하라는 호칭을 버린 건 좀 더 친숙해지고자 하는 노력의 산물 정도로 거론되어 왔다. 대통령 각하와 대통령님이라는 두 언어에 대한 고찰이 유장하게 펼쳐지는 가운데 새로운 사실이 드러난다. 권위주위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각하라는 단어는 사실상 귀족의 경칭 중에서 가장 낮은 위계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판서에게 붙이는 각하가 조선시대 경칭 중 가장 낮은 등급이라니 대통령 뒤에 붙이는 것 자체가 맞지 않았던 셈이다.

 

각하라는 경칭보다 더 큰 문제는 대통령의 의미이다. 클 대(), 거느릴 통(), 거느릴 령(). 령은 다스린다도 포함하고 있으니 대통령은 거느리고 다스리는 사람을 뜻한다. 한마디로 민주주의에 어울리지 않는 호칭인 것이다. 저자는 대안으로 대표와 같은 중립적인 표현을 쓰되 대외적으로는 대한민국 대표로 부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한다. 1882년 조미조약 문서에서부터 최근 신문까지 방대한 자료를 요리하면서 결론에 이르는 과정을 함께 하다 보면 언어는 대단히 중요하며, 그런 만큼 제대로 쓰여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줄다리기를 관전하다보면 때로 심각하고 때로 치열하며 때로 격렬하고 때로 코믹하기도 하다. 특히 자장면과 짜장면의 격돌은 폭소를 터트리게 된다. 우리는 왜 그토록 오랜 기간 짜장면을 마음 놓고 쓰거나 부르지 못했을까. 임오군란 때 들어왔던 청나라 군인들이 인천 쪽에 화교 공동체를 이루었고, 그들이 먹던 작장면이 한국화하여 짜장면이 되었으나 자장면으로 불러야 했다. 이유는 이미 굳어진 경우가 아니면 기본적으로 된소리를 쓰지 않는다는 외래어표기법의 규정 때문이었다. ‘짜장면이 자장면이라면 짬뽕은 잠봉이냐는 반발에서부터 각계에서 짜장면을 표준어로 정하라는 압력을 가해 2011831일 드디어 복수표준어에 등극했다. 자장면을 속 시원히 짜장면으로 부르게 됐지만 여전히 버스돈가스가 우리를 답답하게 한다. 사전 발간 후에도 없어지지 않는 어문 규정에서 속히 벗어나 뻐스와 돈까스도 짜장면이 누린 해방감을 맛보게 해야 한다.

 

언어 줄다리기 10편 톺아보기는 언어의 변천과정과 언어와 언어 간의 미묘한 차이를 맛볼 수 있는 풍성한 지적 여행 과정이다. 몇 가지만 살펴보면, 장애인의 반대말은 비장애인과 일반인이다. 장애가 없는 사람을 정상인이라고 부르면 장애인은 비정상인이 되기 때문이다. 한때 장애우라는 말도 쓰였으나 친구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어 어느덧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미혼과 기혼이라는 단순한 양분법은 여러 불편을 야기한다. 이혼한 사람은 미혼과 기혼 중 어디에 표기해야 하나. 혼자 살다가 90세 넘어서 돌아가신 분을 미혼이라고 부른다면? 비혼과 독신으로 폭을 넓히는 게 대안이 될 것이다. ‘여교사, 여검사는 차별과 불평등을 안고 있는 단어이다. ‘교사검사속에 전문적인 일에 능숙한 사람은 남자라는 이데올로기가 깔려있기 때문이다. 그 반대편에 남자간호사가 있다는 것도 명심해야 할 사안이다. 단어 하나를 사용하는데도 신중을 기하며 다각도로 따져봐야 함을 알려주는 지점이다.

 

20044월 평안북도의 룡천의 기차역에서 150여명이 목숨을 잃고 1300명이 부상당하는 큰 폭발사고가 났다. 우리 표기법으로는 용천이지만 룡천으로 표기해서 구호물자를 보냈다는 얘기를 하면서 저자는 북한의 표기법에 대한 고찰도 잊지 않고 점검했다.

 

언어 표현들 사이의 줄다리기 경기를 잘 들여다보면 우리 사회가 보이고 자연스럽게 언어 감수성이 높아진다. 언어의 감수성에 귀 기울이면 한 번 더 생각하여 적당한 표현을 찾게 될 것이다. 저자는 마음에 걸리는 표현들이 많아지고 말을 하면서 자신의 말에 주목하며 자기 말에 담긴 표현을 점검하려는 태도가 우리들에게 생기길 기대한다고 했다. ‘성찰적 말하기배려의 듣기로 서로의 생각을 받아들이고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는 사회가 펼쳐지길 기대한다는 뜻이다. 칼날같이 날카로운 말들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언어의 줄다리기를 잘해 따뜻하게 통하는 사회가 되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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