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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마음을 읽어주는 여자 박상미의 책 읽기] 『가장 가난한 아이들의 신부님』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9-01-02
조회수 181



『가장 가난한 아이들의 신부님


글_박상미(교수)






『가장 가난한 아이들의 신부님 소 알로이시오 저 / 박우택 역  | 책으로여는세상 | 2009년 09월 30일

 

 
 

"기도를 하다가도 아이들이 찾으면 기도를 멈추고 아이에게 가세요. 그 아이 안에 살아있는 예수님을 보세요."

 

'소 신부님'으로 잘 알려진 소 알로이시오(1930~1992, 본명 Aloysius Schwartz, 미국 워싱턴 출생). 그가 함께 일하는 수녀님들께 항상 했던 말이다. 19576, 사제 서품을 받은 스물일곱 살 청년은 그해 12월 당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그 중에서도 가난한 사람들이 많았던 부산 송도로 자원해서 왔다.

물질적 풍요가 넘치는 메리놀 신학대학에서 신학 공부를 하는 동안 그의 마음은 늘 불편 했다. 검소한 생활을 몸에 익히는 루벵대 신학대으로 옮겨 공부를 마친 후, 전쟁의 잿더미에서 굶주리는 아이들이 기다리는 한국을 선교지로 택하고 달려온다. 알로이시오 신부가 전하는 복음은 단 한가지였다.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해준 것입니다.”

 

알로이시오 신부의 저서 <가장 가난한 아이들의 신부님>은 인간으로서의 욕망을 모두 내려놓고 가난한 아이들의 아버지가 그가 루게릭병으로 투병하다가 1992년에 선종하실 때까지의 이야기다.

아버지 장례를 치르기 위해 피를 파는 어린 여자 아이, 넝마주이가 된 고아들을 보며 알로이시오 신부는 미국 워싱턴에 '한국자선회'라는 모금단체를 만들고 후원자들을 모았다. 매일 미국의 후원자들에게 편지를 쓰고, 동네 주부들이 부업으로 만든 수놓은 손수건을 편지 봉투에 넣어 보냈다. 후원금은 1달러가 대부분이었고, 5달러 이상 거금을 보내오는 후원자도 있었다. 피란민 판자촌이 즐비하던 송도성당 주임을 자원한 그는 마리아 수녀회를 창립하고 거리에 버려진 아이들을 거두기 시작했다.

 

가장 가난한 아이들에게 최고의 교육을 해야 합니다.”

 

알로이시오 신부는 소년의 집을 세웠다. 공사 현장의 임부들이 "왜 비싼 자재만 쓰냐"고 물으면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최상의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답했다. 이렇게 아이들을 위한 기숙사와 학교가 세워졌다. 그는 아이들과 함께 달리기를 하고 축구 시합을 했다. 가난한 아이들의 아버지가 되어주고, 기를 살려주기 위해서였다.

 

"내 희망은 보통 가정의 아버지와 같습니다. 아버지들의 소망은, 자식이 건강하고 교육 잘 받고 잘 취직해서 사는 것 아니겠어요?"

 

악착 같이 돈을 모아서 구호병원과 도티 기념병원을 세웠지만, 정작 자신은 지독한 가난을 견디며 살았다. 사제복 한 벌로 평생 살았고, 구두는 수시로 꿰매서 고무바닥이 비닐처럼 닳을 때까지 신었다. 부산과 서울, 필리핀, 멕시코에도 소년의 집무료병원을 세웠고, 잘 먹이고, 정성껏 가르치고, 사랑으로 키우는 일을 평생 동안 지속 했다.

알로이시오 신부가 평생을 보낸 부산 송도 성당은, 후에 아프리카 수단에 병원과 학교를 설립하여 원주민을 위해 헌신한 이태석 신부가 다녔던 성당이다. 부산 송도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보다 더 가난한 삶을 스스로 택하고 가난한 이들과 살을 부비며 가족처럼 살았던 알로이시오 신부의 손길을 체험하며 자란 소년 이태석은 그가 걸은 길을 따라 걷는 사제가 된다.

받은 사랑은 소년의 가슴에 꿈의 씨앗을 뿌리고, 그가 청년이 되었을 때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땅 아프리카 수단으로 가서 받은 사랑을 실천한다. 미국인 사제로부터 받은 사랑의 씨앗을 받은 한국인 사제는 아프리카 수단으로 가서 뿌리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은 것이다. 이태석 신부는 자신의 저서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에서 알로이시오 신부를 이렇게 추억 한다.

 

나에게 영향을 끼친 내 주위 사람들의 아름다운 삶의 향기들어릴 적 집 근처에 있었던 소년의 집에서 가난한 고아들을 보살피고 몸과 마음을 씻겨 주던 소 신부님과 그곳 수녀님들의 헌신적인 삶의 모습도, 내 마음을 움직이게 한 아름다운 향기였다.”

 

이태석 신부는 이곳에서 오르간을 처음 보았고, 연주하는 법도 배웠다. 이 신부의 어머니는 알로이시오 신부의 자수 사업에서 손수건 수놓는 부업으로 생활비를 보탰다. 이태석 신부는 알로이시오 신부에게서 받았던 사랑을 아프리카 수단에서 그대로 실천하게 된 것이다.

알로이시오 신부가 한국에 뿌린 사랑의 씨앗은 이미 많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었다. 소년의 집에서 신부님과 함께 축구를 하던 소년 김병지는 국가대표 축구팀의 골키퍼가 되어서 2002년 월드컵에서 4강 진출 신화를 이루었고, ‘소년의 집 오케스트라단원들은 카네기홀 무대에 서서 공연을 하고 기립 박수를 받기도 했다.

201812, 우리는 뉴스를 통해서 그 사랑의 기적을 또 한 번 전해 들었다. 고 이태석 신부가 의료 봉사활동을 펼친 아프리카 수단에서 온 청년이 한국에서 의사의 꿈을 이룬 것이다. 이 신부 권유를 받고 수단어린이장학회의 도움으로 2009년 한국으로 와 인제대 의과대학에서 공부한 토마스 타반 아콧(33)씨가 제83회 의사국가시험 실기 시험에 합격했다. 한국에 온 지 9년 만의 결실이다. 그는 인제대백병원에서 1년간 인턴, 4년간 전공의 수련을 마친 뒤 전문의 자격증에 도전할 예정이라고 한다.

 

전문의가 되면, 톤즈로 돌아가서 이 신부님이 걸으신 길을 뒤따라 걷고 싶습니다.”

 

소년의 집졸업생 2만 명이 넘었고, 그들이 받은 사랑의 결실을 사회에 어떤 형태로 환원할 지는 오래도록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8개국, 120여명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알로이시오 신부의 이야기는 영화 <! 마이 파파>가 되어 우리 곁에 다시 왔다. 그가 베푼 사랑의 나비 효과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뛴다. 받은 사랑의 나비 효과는 지구를 돌고 돌아, 어떤 모습으로 계속해서 다시 태어날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부풀어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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