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열기
닫기
이전으로 돌아가기

독서인

메뉴타이틀

게시물 상세화면
제목 [최보기의 이런 기능성 책이라니] 꽃과 노래와 이야기와 시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9-01-02
조회수 161



꽃과 노래와 이야기와 시

글_최보기(작가, 북칼럼니스트)





『사는 게 참 꽃같아야』 박제영 저  | 늘봄출판사 | 2018년 11월 20일
 
 
 

‘꽃’이라는 글자는 생김새가 꼭 꽃 같고, 귀에 들리는 소리도 꼭 꽃 같다. 그때의 꽃은 눈으로 봐도 좋고, 귀로 들어도 좋다. 길을 걷는데 어떤 큰 건물 입구에 현수막이 내걸렸다. 화사한 꽃 그림을 배경으로 ‘기분 꽃 같네’라는 문구가 씌여 있었다. 현수막을 보는 순간 “이제 우리 꽃길만 걷자”는 상투적인 말과 달리 그리 신선할 수가 없었다.

현수막을 들여다보며 잠시 서 있자니 가끔 SNS등에 글을 쓸 때 센티멘탈한 분위기의 연출을 위해 자주 써먹는 "별안간 꽃이 사고 싶다. 꽃을 안 사면 무엇을 산단 말인가"란 시구가 연달아 생각났다. 이 시구는 시인 이진명의 시 '젠장, 이런 식으로 꽃을 사나'에서 발췌한 것인데 광화문 대형서점에서 봄을 알리는 메시지로 현수막을 내걸면서 대중의 사랑을 받게 됐다. 꽃 같은 기분에 취해 꽃으로 이어지는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아이들을)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교육학자들의 재치와 ‘내려 갈 때 보았네 / 올라갈 때 못 본 / 그 꽃’을 거쳐 기어이 꽃의 시인 김춘수에 이른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 그는 다만 /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 꽃이 되었다.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 그에게로 가서 나도 / 그의 꽃이 되고 싶다. // 우리들은 모두 / 무엇이 되고 싶다. /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필자에게 꽃에 관한 시라면, 다른 것들을 고려하지 않고 시만 놓고 볼 때, 고은의 그 꽃이나 서정주의 국화가 ‘김춘수의 이 꽃’에 미치지 못한다. 다만, 영랑 김윤식의 ‘모란이 피기까지는’은 다르다. 김춘수의 꽃에서 가슴 벅찬 사랑과 희망을 본다면 영랑의 모란에서는 마거릿 미첼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오뚝이 스칼렛의 ‘찬란한 슬픔의 봄’이 힘있게 겹친다.

 

“… 오월 어느날 그하로 무덥든 날 // 떠러져 누은 꼿닢마저 시드러버리고는 / 천지에 모란은 자최도 업서지고 / 뻐쳐 오르든 내 보람 서운케 문허졌느니 /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 내 한 해는 다가고 말아 / 삼백예순날 하냥 섭섭해 우옵네다”

 

모란, 일본 속담에 미인을 일러 ‘앉으면 모란, 서면 작약’이란 말이 있다. 이리 보아도 예쁘고, 저리 보아도 예쁘다는 뜻이다. 모란은 한자로 목단(牧丹)이다. ‘화투’ 놀이를 아는 사람이면 ‘6월 목단’을 모를 리 없다. 모란과 작약은 자매지간이다. 작약은 풀이고, 모란은 나무다. 그래서 둘을 초작약(草芍藥), 목작약(木芍藥)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탐스럽고 화려한 자태, 매혹적이고 농염한 향기를 지닌 꽃이라 예로부터 화중지왕(花中之王), 국색천향(國色天香)이라고까지 불렸다. 과연 영랑이 ‘일년 내 슬픔에 빠질’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집에서 작약을 화초로 키우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작약은 진분홍 새 순 돋는 맛으로 키운다’고 입을 모은다.

그럼 영랑만 모란을 노래했을까? 그럴 리 없다. 일찍이 중국 당나라 시선(詩仙) 이태백도 벌써 당대 최고의 미인 양귀비를 꽃 중의 왕인 모란에 비유해 ‘명화경국양상환(名花傾國兩相歡)-모란과 경국지색이 서로 반기니’라며 ‘청평조사(淸平調飼)’를 읊었던 것이다. 고래의 아름다운 시뿐만이 아니다. 민초들의 찰진 삶에도 모란은 피었다. 1960~70년대를 주름잡았던 당대 최고 여배우 김지미 씨도 ‘모란’이었다. 민초들은 화투를 치면서 ‘목단 열끝 패’를 잡으면 ‘김지미 궁뎅이가 왔네’라고 농을 했다. 여배우가 아무리 예뻐도 화중지병(畵中之餠-그림 속의 떡)일 뿐이니 ‘고스톱 판에서 흑사리 껍데기만도 못한 목단 열끝’을 그리 불렀다는 것이다.

시인 박제영이 그러한 장면을 기억해 한 편의 삽화처럼 시를 썼다. “쓰잘데기 없이 또 김지미가 와부렸어 형님 가지셩 / 육목단 열끝을 삼촌은 늘 김지미 궁뎅이라 불렀지라 … … 모란을 따라 삼촌의 봄날은 갔지라 / 그게 무에 대수간 / 갈 테면 가라지라 … …모란을 따라 나의 봄날도 가겠지라 / 무에 대수간 / 갈 테면 가라지라”

박제영은 연이어 덧붙인다. “부귀도 영화도 죽고 나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꽃이 아무리 예쁜들 화무십일홍! 열흘 붉은 꽃이 없다지요. 그래도 꽃처럼 붉은 화양연화(花樣年華)의 한 시절을 보내고, 그 추억으로 사는 것이 인생 아닐런지요.”라고. 아마도 그의 시 ‘사는 게 참 꽃 같아야’ ‘사는 게 참, 참말로 꽃 같아야’가 솟아난 배경이 여기 아닐까!

주의(※), 지금까지 여기에 쓴 글은 필자의 문장이 아니라 시인 박제영의 문장을 대부분 옮긴 것들이다. 시인 박제영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신간 ‘사는 게 참 꽃 같아야’는 꽃과 문학(시, 산문, 소설)과 노래와 영화 등 갖은 이야기가 저런 식으로 ‘나긋나긋’ 버무려졌다. 봄의 꽃 ‘목련, 냉이꽃, 벗꽃, 찔레꽃, 진달래…박대기꽃’ 등 18개, ‘수국, 봉선화, 작약, 능소화, 며느리밥풀꽃…수련’ 등 여름 꽃 20개, ‘구절초, 국화, 꽃무릇, 억새, 무화과, 사루비아, 코스모스’ 등 가을 꽃 7개, ‘동백, 매화, 수선화, 서리꽃, 에델바이스, 대나무’ 등 겨울 꽃 6개가 뒤처지지 않을 자기만의 이야기를 들고 나왔다.

가장 먼저 피는 꽃은 봄의 전령 목련이다. ‘오오! 내 사랑 목련화야. 그내 내 사랑 목련화야’로 시작하는 노래는 양희은의 ‘하얀 목련’에서 일차 ‘썰’을 푼다. ‘하얀 목련이 필 때면 다시 생각 나는 사람. 봄비 내린 거리마다 슬픈 그대 뒷모습… …’ 노랫말을 양희은 씨가 쓴 것은 지병이 악화되어 큰 수술을 앞둔 1982년 어느 봄날이었다. 병실 창밖으로 봄 햇살을 받고 있는 하얀 목련이 일순에 지고 마는 것을 보며 자신의 삶을 성찰했던 노래가 양희은의 ‘하얀 목련’이었다.

꽃과 문학과 음악과 전설에 얽힌 51개의 이야기가 강원도 춘천 토박이 시인 박제영의 구수한 입담을 통해 한겨울 밤을 훈훈히 덥힐 책이 ‘사는 게 참 꽃 같아야’다. ‘라일락꽃’에 이르면 이문세의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김영애의 ‘라일락(lilac)꽃’은 당연하고, ‘베사메무쵸 리라(Lilas)꽃 같은 귀여운 아가씨’는 물론 우리 토종꽃 ‘수수꽃다리’가 ‘미스김라일락’으로 불리게 된 사연까지 미친다. 가히 만만치 않은 책이다.

 




 
이전글
[소설가 장마리의 독서지략] 간절히 그렇다고 생각하면 반드시 그렇게 된다
다음글
[마음을 읽어주는 여자 박상미의 책 읽기] 『가장 가난한 아이들의 신부님』
0 / 100
  •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