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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명자의 엉뚱한 고전읽기] 『셰이프 오브 워터』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9-01-02
조회수 162


셰이프 오브 워터


글_명로진(작가)


『셰이프 오브 워터기예르모 델토로/대니얼 크라우스 저/김문주 역  | 온다 | 2018년 03월 27일 | 원서 : The Shape of Water

 

우리는 몸부림쳤지. 고통과 몸부림은 중요해. 고통과 몸부림을 반드시 겪어야만 해...이제는 이해하지. 그리고 아름답지. 그녀는 아름답지. 우리는 아름답지. 좋은 광경이야. 행복한 광경이야. 그녀 목에 난 선들은, 그녀가 흉터라고 생각했던 선들은 흉터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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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셰이프 오브 워터]는 우리나라에서 관객 수 507,102 명에 그치며 흥행에 실패했다. 사실 저 숫자는 507,100 명이 맞다. 나는 세 번 봤으니까. 세 번 보면서 세 번 울었다. ? 고통 받는 사랑은 슬프니까. 오해뿐인 사랑은 아프니까. 그럼에도 사랑하려는 사람은 아름다우니까. 지인의 평가는 극과 극이었다. “황홀하다.”는 평가와 이게 뭐냐?”는 평가. 나는 이게 뭐냐?”는 평을 내리는 분들에게 왜 이 영화가 아름답고 황홀한지 설득하기 위해 이 원고를 쓴다.

이 책을 고전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딴지 걸지 말기를. 고전古典오랫동안 사람들에게 읽힌 책이라는 뜻이지만 고전은 늘 현재성과 현대성을 갖는다. 생산연도가 유일한 기준은 아니다. [셰이프 오브 워터]는 우리에게 시대가 지나도 변치 않을 지혜를 주기에 나는 이 책을, 이 영화를 기꺼이 고전이라 부른다.

여기서 [셰이프 오브 워터]의 줄거리와 결말을 모두 소개하진 않겠다. 어떤 이는 이 영화를 괴기영화라 부르고 어떤 이는 엽기라 칭하지만 이 영화는 사랑에 대한 매혹적인 판타지다. 엘라이자라는 청소부가 우주 연구소에 잡혀 온 괴생물체와 사랑에 빠진다. 우주 연구소 측은 이 괴생물체를 해부해서 살인 무기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 연구를 진행하려 하고, 엘라이자는 자기가 사랑하는 괴생물체를 빼돌려 바다로 돌려보내려 한다. 괴생물체는 아마존에서 잡혀온 양서류 수컷이다. 엘라이자는 구두에 집착하는 청각 장애인이다. 이제 이 영화에 대해 도무지 이해 못할 괴작이라는 이들이 갖는 견해와 그에 대한 내 반박을 싣는다.

 

첫째, 왜 하필 여성 주인공은 괴생물체를 사랑할까? 인간도 동물도 아닌, 아가미로 숨 쉬는 존재. 생긴 건 개구리와 도룡농 중간쯤인 괴물을 도대체 왜? 작품 속 악역인 스트릭랜드는 이 생명체가 가진 부정적인 면만을 본다. 미개하고, 폭력적이고, 그저 연구 가치가 있는 존재이기에 하루 빨리 죽여 없애거나 해부해야 하는 대상. 썩 미인은 아니지만 멀쩡한 여자 사람인 엘라이자는 왜 하필 비늘달린 양서류를 사랑하는가?

나는 이렇게 묻고 싶다. 왜 하필 당신은 그를 사랑하는가? 왜 하필 당신은 그녀를 사랑하는가? 왜 하필 키 작은 남자인가? 왜 하필 못생긴 여자인가? 왜 하필 흑인인가? 왜 하필 가난뱅이인가? 왜 하필 장애인인가? ‘왜 하필이하에는 백만 가지 이유가 뒤 따른다. 지구에 사는 인간은 자기와 닮지 않은 모든 이를 이해하지 못한다. 아니 이해하지 않는다. 따라서 자기와 다른 모든 사랑을 이해하지 못한다.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이 사랑하는 그이에 대해 왜 하필?’이란 물음이 무효이듯, 엘라이자에게도 이 물음은 무상하다. 아가미 달린 괴생물체는 상징이다. 이 세상 모든 괴상한 사랑에 대한 상징. 하나 무엇이 괴상하단 말인가?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이상인가? 물고기의 입장에서 보면 설현도 괴물이다.

 

둘째, 왜 엘라이자는 벙어리이고 괴생물체도 말을 못하는가? 사랑에 말이 필요한가? 내 친구 안나는 다양한 국적을 가진 남성과 사랑했다. 당연히 그들이 썼던 언어도 다양했다. 안나는 말했다. “서로 말이 적게 통할수록 사랑은 더 잘 통한다.”. 여행가 데이비드 역시 동의한다. “언젠가 남미에서, 한 여인을 만난 적이 있다. 나는 스페인어를 전혀 하지 못하고 그녀는 영어를 전혀 하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가 사랑을 하는데 아무 문제없었다.” 분명 반박하는 사람이 있을 거다. 그럼 이렇게 물어 보자. 같은 언어를 쓴다고 해서, 사랑이 더 공고해 지는가? 한국말을 쓰는 사람 사이에 우리는 언제나 소통하는가? 애인끼리 부부끼리 친구끼리 언어학적으로는 알아듣는 말을 하지만 영혼으로는 전혀 다른 말을 하고 있지는 않는가? 독해 가능한 어휘로 말한다고 해서 항상 이해되던가? 사랑은 어떤 경지에 이르면 말하지 않아도안다. 아니, 말하지 않아야 안다. 사랑은 언어 이전에 있다. 몸이 언어 이전에 있듯이. 그러므로 사랑은 언어 이전에 몸으로 하는 것이다. 인간 여성과 양서류 수컷 사이의 사랑은 그리하여 육체적 결합이 필수다.

 

지금 이순간은 그녀가 욕조 안에서 품어 왔던 그 어떤 환상과도 비교 할 수 없었다. 그녀는 괴 생명체의 모든 굴곡을 어루만졌다. 그에게는 있어야할 곳에 자리 잡은 성기가 있었다. 그녀 역시 늘 그저 내버려 두던 그곳에 성기가 있었다. 그녀는 마침내 그의 것을 자신의 안으로 밀어 넣었다. 출렁이는 물속에서 두 세계는 완전히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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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에서는 엘라이자와 괴생명체(그에게도 이름이 있다. 데우스 브랑퀴스. ‘아가미의 신이란 뜻이다. 이하 데우스라고 하자.)가 목욕탕에 물을 채우고 사랑을 나누는 장면에서 두 사람의 몸이 빛난다. 엘라이자 역시 이때가 가장 아름답다. 환상적이며 매혹적이고 뜨겁다. 우리가 사랑할 땐, 그렇다.

 

셋째, 셰이프 오브 워터사랑의 모양인가? 영화의 원제는 [The shape of water], 물의 모양이다. 이걸 사랑의 모양이라고 번역했다. 데우스는 신비한 생명력을 가진 존재로 등장한다. 엘라이자를 돕는 자일스는 대머리였는데, 데우스가 손을 한 번 대자 머리가 나기 시작한다. 데우스는 아마존 주민들이 신처럼 생각했던 존재다. 데우스는 물에서 자유롭게 산다. 영화가 끝날 무렵, 데우스는 엘라이자를 데리고 물속으로 들어간다. 엘라이자는 [인어공주]의 오마주다. 지느러미대신 다리를 얻고 언어를 잃었기에 그녀는 발을 감싸는 구두에 집착한다.

책에는 이런 표현이 등장한다. “눈꺼풀 위에 맺힌 물방울은 하나하나가 그 자체로 온전한 세상.” 그렇다. 눈물 한 방울이 세상이다. 피 한 방울이 역사다. 땀 한 방울이 우주다. 오늘 그대와 내가 나누는 애액 한 방울이 생명이다. 인간은 물에서 비롯했고 물로 이루어져 있다. 물의 모양이 인간의 모양이고 인간은 사랑이다. 그러므로 이 영화의 한글 제목을 사랑의 모양으로 지은 것은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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