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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마음을 읽어주는 여자 박상미의 책 읽기] 『내 일생 책 한 권을 낳았네』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9-01-30
조회수 199



『내 일생 책 한 권을 낳았네


글_박상미(교수)




『내 일생 책 한 권을 낳았네』 강원도 꼴두바우 마을 사람들 저 | 한국경제신문사/비매품 | 2018년

 

 

강원도 폐광촌 할머니들이 자서전을 쓰고 싶어 하는데 오시겠어요?”


너무 먼 길이었습니다. 하지만 일흔을 넘긴 어르신들이, 꼭 남기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일지 궁금했습니다. 2018년 봄부터 시작된 강원도 상동, 꼴두바우 어르신들의 자서전 쓰기 수업은, 글을 아는 분들과 모르는 분들이 섞여 있었습니다. 글을 모르는 사람들의 인생도, 자서전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어서 직접 쓸 수 있는 분들은 쓰도록 도와드리고, 글을 모르시는 분들의 이야기는 듣고 받아 적어서 <내 인생 책 한 권을 낳았네>는 태어 낳습니다.


내 인생은 책 한 권으로 안 돼. 그 세월을 어찌 한 권으로 말을 할꼬...”


상동에서 태어나 80년 넘게 여기서만 살았지. 40년 전만해도 여긴 서울 명동만큼 번화했던 곳이야. 이젠 흔적만 남았고, 70넘은 노인들만 남아 있지만, 자연환경이 이만한 곳이 있을까. 나에게 상동은 세상의 전부지. 그 얘기 한 권으로 못 쓰지.””


구비구비 돌아돌아 상동까지 왔네. 그런데 말이야, 살아보니 이곳이 내 뼈를 묻을 고향이야. 산도 우리를 품어주고, 사람들도 서로 품어가며 산다. 이젠 못 떠나.”


한 분, 한 분의 인생 이야기를 들으며, 한 문장도 흘리지 말고 모두 기록해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구나 마음껏 자신의 삶을 이야기 할 기회를 드리고, 우리는 그 이야기들을 카메라에 담아드렸습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상동 어르신들의 이야기는 다큐멘터리와 함께 진행되었습니다.


<내 인생, 책 한 권을 낳았네> 프로젝트는 글을 알든 모르든 상관없이, 내 인생을 돌아보고, 남은 인생을 더 의미 있게 살 수 있는 힘을 얻는 시간으로 거듭나고 있었습니다. 말로 하는 이야기는 카메라에 담아 받아 적고, 직접 쓸 수 있는 사람은 쓸 수 있게 도와드리고, 내 인생을 그림 한 장으로 그리겠다는 분은 그릴 수 있게 도와드렸습니다.


누구에게나 아름다운 추억, 내 인생의 찬란했던 한 순간은 있는 법.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의 사진을 들고 와서 이야기 하는 날은, 모두의 얼굴에 행복했던 한 시절이 오래 머물며 잔잔한 미소로 일렁였습니다.


이 과정을 함께 해 주신 따뜻한 마음, 넓은 귀, 애정의 눈빛을 가진 작가들이 있었기에, 실컷 웃고 울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덕분에 어르신들이 마음껏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고, ‘고생 많이 했지만, 참 의미 있고 감사한 삶이었다고 고백하기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어르신들이 걸어 온 인생 이야기를 이끌어내는데 주원규 소설가의 노력은 참 따뜻했습니다.

내 자식들보다 더 친절해. 잘 들어주니까 자꾸 말하고 싶더라고.’ 입을 모아 말씀하셨죠.


손종수 시인은 모두의 마음속에 사는 시를 한 편 씩 건져 올려 주셨습니다.


시인이 와서 시 수업을 한다니까 겁이 나더라고. 내가 시를 어떻게 써... 걱정이 되고. 그런데 선생님이 읽어주는 시들을 들어보니까, 나도 쓸 수 있겠더라고. 시는 짓는 게 아니고, 내 가슴에 있는 거였어.’


할머니 한 분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유, 말이 그렇지. 그게 어디 쉬워? 잘 안 되더라고. 강사님 말대로 쉽게 그냥 써보려고 했지. 아니, 근데 한 줄 쓰고 두 줄 쓰려고 하니까 졸음이 와. 안 된다니까.”

그 말을 듣고 할머니들이 일제히 웃으셨고 저도 따라 웃으면서 준비된 백판에 할머니의 말씀을 그대로 옮겨 적으며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의식하지 못하셨지만 방금 하신 말씀이, 어제 그 장면을 고스란히 그려낸 시였습니다. 보세요. 제가 고친 거 하나도 없습니다. 그대로 옮겼어요.”


할머니의 글쓰기


써보려고 했지

아니, 그런데

한 줄 쓰고

두 줄 쓰려고 하니까

졸음이 와

안 된다니까


이제 막을 글쓰기를 시작한 할머니의 진솔한 심정이 그대로 담긴, 마치 아이들의 동시 같은 느낌이 들지 않나요? 그거, 아세요? 제가 강의 도중 창밖을 볼 때마다 회관 앞에서 서 있는 키 큰 은행나무가 노랑나비떼를 몰고 와 환호하며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는 사실을요. 영월을 떠난 뒤에도 그 모습을 떠올릴 때마다 제가 얼마나 행복해 하는지, 그 시간들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할머니들께 제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손종수)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 어르신들은 내 인생 책에 지금의 모습을 남기고 싶어 하셨습니다. 허영한 사진작가의 참여는 참 뜻 깊었습니다.


우리... 영정 사진을 좀 찍어줄 수 있겠어요?’


내 인생을 돌아보는 수업이 진행되면서, 어르신들은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마지막 모습을 남기고 싶어 하셨습니다. ‘지금이 내 인생의 가장 젊은 날이라며 마음껏 오늘의 사진을 찍어드렸습니다.


우리는 알게 되었죠. 모든 인생을 말하고, 기록하고 싶은 소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이 책에는 그 모습들이 고스란히 사진과 글로 담겨 있습니다.


이제 어르신들은 남은 날들도 매일매일 하루를 아름다운 소풍을 즐기듯이 내 인생 이야기를 잘 써 나가시리라 믿습니다. 어르신들의 인생 이야기를 들으며 참 많이 배웠습니다. 고단한 삶이지만, 웃음과 순수한 마음을 잃지 않고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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