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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최보기의 이런 기능성 책이라니] ‘옥불탁 불성기’에 관한 고찰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9-01-30
조회수 156



'옥불탁 불성기'에 관한 고찰

글_최보기(작가, 북칼럼니스트)






『결국 이기는 사마의』 친타오 저/박소정 역  | 더봄 | 2018년 11월 20일
 
 
 

 옥불탁 불성기(玉不琢 不成器), 옥이 아무리 곱더라도 갈고 쪼지 않으면 그릇이 될 수 없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인 것처럼, 봄에 씨앗을 뿌리지 않은 농부는 가을에 걷을 것이 없는 것처럼. 사실 인생을 살면서 이것만큼 영양가 있는 가르침도 드물다. 무언가 꿈을 꾸는 사람이라면 더구나 새기고 새겨야 할 금언이다. 오랫동안 스스로를 ‘자르고, 쓸고, 쪼고, 가는’ ‘절차탁마(切磋琢磨)’가 결국 ‘대기만성(大器晩成)’에 이르는 법이고, 세상은 아무래도 꿈꾸는 사람의 것이니까.


수구와 혁신 세력이 뒤엉켜 정세가 혼탁했던 고려 말 친원파와 맞서다 전라도 나주로 유배를 가야 했던 정도전. 민초들의 힘든 삶을 지켜보며 ‘작심(作心)’한 그가 멀리 함경도 함흥에 있던 장군 이성계를 제 발로 찾아갔던 때 나이가 42세였다. 사극을 보면 알 수 있듯이 14세기 당시 42세는 벌써 원로 초입에 진입했을 ‘늙은 나이’였다. 그럼에도 정도전은 새 나라 건설의 꿈을 위해 먼 길을 걸었다. 로마제국의 원로원처럼 신하 중심의 시스템 국가를 꿈꾸었던 정도전은 결국 강력한 왕권국가를 꿈꾸던 이방원에 의해 제거되었지만 그가 남겼던 ‘경국대전’은 이후 5백 년 조선왕국의 설계도가 됨으로써 꿈은 이루어졌다.


정도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세조(수양대군)의 최측근 참모가 돼 예종, 성종에 이르기까지 조선을 휘어잡았던 ‘칠삭둥이 한명회’ 역시 첫 벼슬은 마흔이 가까운 중견 나이 때 개성에 있던 태조 이성계의 저택(경덕궁)을 지키는 궁지기였다. ‘피비린내 나는 쿠데타의 주역’이라는 역사적 평가와 별개로 ‘때를 기다리며 실력을 다지다 꿈(?)을 이뤘던 그의 처세’는 눈여겨볼 대목이다. 덧붙여 우리나라를 벗어나 국제적으로 인내와 대기만성의 아이콘을 찾는다면 일본의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빼놓을 수 없다. ‘두견새가 울지 않으면 오다 노부나가는 죽이고,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어떻게든 울게 하고,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울 때까지 기다린다’는 그 두꺼비 도쿠가와 이에야스 말이다. 6살에 인질로 잡혀가 14년을 보낸 후 20세에 약체의 영주로 등극한 그는 오다와 도요토미 아래서 끝없는 ‘옥불탁 불성기’ 끝에 60세에 이르러 쇼군이 됨으로써 이후 264년에 이르는 에도(江戶, 東京, 도쿄) 막부시대를 열었다. 비슷한 시기 유럽에서는 52세 때 감옥에서 소설을 구상, 58세 때 발표해 영국 셰익스피어와 유럽 문학의 양대 기둥을 이뤘던 작가가 있었다. 그는 ‘돈키호테’를 썼던 스페인의 세르반데스였다.


성인 열 명 중 아홉 명이 ‘매우 감명 깊게 읽었다’는 책이 있다. 아홉 명 중에는 어린이 때 어린이 용으로 읽은 사람, 앞의 한두 권 정도 읽다가 그만둔 사람, 읽지 않았으나 체면상 ‘읽었다’ 하는 사람 등이 끼어 있다. 그럼에도 열 명 모두가 이 책의 줄거리나 주요 사건, 인물들에 몇 마디 보탤 지식은 가지고 있다. 언론이나 식자들의 말과 글에서 수시로 인용되는 것을 보고 들은 까닭이다. 그러므로 이 소설에서 교훈을 찾아내 인용하는 수준의 독자는 역사나 문학 분야의 전문가이거나 ‘덕후’일 확률이 높다. 일반 독자가 굳이 이 책의 통독 여부나 이해 여부를 가지고 기죽을 필요가 없다는 의미다. 이 책의 제목은 원말명초 나관중이 지은 소설 ‘삼국지’다. 설마 ‘삼국지’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초나라 항우와 한나라 유방이 패권을 다투던 ‘초한지’의 어떤 대목을 ‘삼국지’의 한 대목으로 헷갈리는 사람은 있을지라도.


‘삼국지’는 한족의 명나라가 들어선 시점에 쓰인 책이라 저자 나관중이 한 황실 후예 유비에게 매우 우호적일 수 밖에 없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때문에 유비는 매우 인덕이 높은 지도자로, 조조는 상대적으로 비수와 음모에 능한 지도자로 인식된다. 독자들은 그래서 대개 유비와 제갈공명이 삼국통일을 못 한 것을 안타까워한다. 그러나 실제의 조조는 그렇게 비열하기만 한 지도자가 아니었다. 그의 참모였던 순욱은 조조의 능력 중심 용인술과 솔선수범을 높이 평가했다.


위나라 조조, 촉나라 유비, 오나라 손권이 천하삼분지계로 다투었던 ‘삼국지’의 결말은 촉과 오를 접수한 조조 가문의 승리로 끝난다. 조조가 ‘삼국지 최후의 승자’로 등극하는 순간이다. 그러나 과연 조조가 최후의 승자일까? 아니다. 최후의 승자는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이긴다’ 했던 고사의 주인공 ‘사마의 중달’이다. 라이벌 공명에게 연전연패 했지만 이는 ‘공명이 있어야 나도 조조에게 인정 받는다’는 중달의 고단수 전략이었을 수도 있다. 그는 자신의 실력을 믿고 직언을 아끼지 않다가 조조가 보낸 빈 찬합을 받고 자결한 순욱이나 조조의 속마음을 너무 꿰뚫는 통에 제거당한 ‘계륵 (鷄肋, 닭갈비, 먹기도 버리기도 아까워 결정이 어려운 상황)’의 주인공 양수와 달리 조조 앞에서 철저히 몸을 낮추었다.


3대 조방 황제에 이르러 라이벌 조상에게 실권을 빼앗기고 병을 핑계로 낙향했을 당시 그의 나이는 70세였다. 늙은 중달이 사라지자 독점 권력을 마음껏 휘두르던 조상은 혹시나 싶어 심복 이승을 지방관리 취임 인사차 보내 중달을 염탐하게 했다. 이를 미리 알아챈 중달은 손을 떨어 약사발을 흘리고 귀머거리 행세를 하며 첩자를 속였다. ‘완전히 맛이 갔다. 마음 놓아도 된다’는 이승의 보고를 받고 안심한 조상은 황제 조방과 황궁을 벗어나 고평릉에 제사를 지내러 갔다. 때는 이때다, 도처에 숨죽이고 있던 부하들을 소집해 일거에 황궁을 접수한 중달은 조상을 제거하고 손자 사마염이 진(晉)나라를 세우는 초석을 다졌다. 당시 70세는 아마도 지금으로 치면 90세는 넘었을 나이다.


사마의 중달은 그 나이에 이르기까지 결정적 기회가 올 때까지 인내하며 힘을 비축하고 있었던 것이다. ‘삼국지’를 읽으며 조조, 유비, 손권, 제갈량, 관우, 장비, 조자룡, 마초, 주유, 육손 등등 영웅호걸이 아닌 사마의 중달에게서 배을 인생의 지혜가 ‘인내와 대기만성’이다. ‘절대로 서두르지 말고 때를 기다리며 실력을 기르라’는 뜻이 담긴 그의 유언을 마지막에 남겨둔다. 이와 비슷한 의미로 초기의 약체 유비가 조조의 식객으로 머물렀던 것에서 유래한 도광양회(韜光養晦)가 있다. ‘칼날의 빛을 칼집에 감추고 어둠 속에서 힘을 기른다’는 뜻인데 얼마 전까지 중국의 외교전략이라며 자주 인용이 됐었다.


“무릇 사람은 물러날 때와 나아갈 때를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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