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소설가 장마리의 독서지략] 늘 “애에로워”서 시를 쓰는 시인, 유강희 |
---|---|
작성자 | 관리자 |
등록일 | 2019-01-30 |
조회수 | 216 |
![]() 늘 "애에로워"서 글_장마리(소설가) ![]() 『고백이 참 희망적이네』 유강희 저 | 문학동네 | 2018년 11월 22일
시인의 말
유강희
‘생활의 달인’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이곳에 나오는 이들은 대부분 십 수 년 동안 한 직업에 올인한 이들이다. 신발을 수십 년 동안 만든 이는 눈을 감고도 미싱에 드드륵 가죽을 박고 구두 밑창의 닳은 상태를 보고 신발 주인의 건강상태 등을 맞추는 등, 오랫동안 한 일에 집중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준다. 또한 칼국수 집을 새색시 때 시어머니로부터 전수받아 운영한 할머니는 이제 며느리에게 비법 전수를 하는데, 그 할머니는 눈을 감고도 똑같은 굵기의 면발을 만들어 내고 한번 척 집으면 단 일 그램도 차이가 나지 않는 양을 똑같은 대접에 담아내는 능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유 시인도 30년 동안 시만 써왔으니 그런 신통방통함이 있을까? 즉 30년 동안 시만 써왔으니 입만 열만 자음과 모음이 어우러진 기막힌 문장을 만들어 내지 않겠느냔 말이다. 그러나 내가 기억하는 유 시인은 “애에로워요(외로워요)”라는 말만 한듯하다. 그러던 유 시인이 늦게 결혼하여 어여쁜 딸을 두었다. 그러니까 몇 년 전만 해도 늘 외롭다고 했는데, 그럼 요새는 외롭지 않는가? 아닌 모양이다. 이렇게 세 번째 시집 『고백이 참 희망적이네』를 냈으니 말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외롭지 않으면 시를 쓸 수 없다. 그런데 첫 장, 시인의 말을 읽고 내 생각이 맞다는 걸 알았다. 그는 여전히 시에게 외면당하는 중이었고, 여전히 홀로 사랑하는 중이어서 외로운 시인이었다. ‘삶이 자꾸 시를 속이려 들거나/혹은 시가 삶을 속이려 들 때마다/나는 우두커니 먼 데를 바라본다.(이하생략)라는 문장에서, 그는 여전히 외롭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이번 독서칼럼에는 유 시인과 이 시집에 대해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유 시인은 스무 살, 어찌 보면 철없던 시절에 운 좋게(이렇게 표현하는 것을 유 시인은 이해해 주리라 믿는다) 그것도 중앙 신문사로 대표되는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1996년 첫 시집 『불태운 시집』, 2005년 두 번째 시집 『오리막』을 펴낸 유 시인은 늦게 결혼을 했고 어여쁜 딸을 낳은 후로는, 동시집을 세 권 정도 냈다. 움직이는 모든 동작에 리듬을 살려 손으로 예쁘게 표현하는 것을 ‘손유희’라고 한다. 나는 유 시인의 동시집을 읽고,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예쁜 입말을 살려 표현했기 때문에 ‘문장의 유희’ 또는 ‘언어의 유희’가 뛰어난 시집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언어유희의 사전적 의미는 ‘말이나 문자를 소재로 하는 유희’ 또는 ‘미사여구나 현학적인 말로 상대를 현혹하는 일’라고 나와 있다. 내가 말하는 의미와 다르지 않으므로 유 시인의 동시집은 ‘언어유희의 選集’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동시집이라고 해서 아이들을 상대로 쓰지 않았다는 것은 알 것이다. 당연히 이번 시집 『고백이 참 희망적이네』에서도 그러한 언어유희가 보인다. 「도토리 두 알을 위한 노래」라는 ‘도토리’를 주제로 쓴 시인데, 이 시를 읽고 기분이 좋아 킥킥대며 형광펜으로 밑줄을 그었다. 마지막 5연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그러한데 이곳에 옮기면 다음과 같다.
5 방석과 엉덩이가 하나로 붙어 있는
포즈의 위험성에 대해
삼각형으로 접어놓은 것 같은 맨드라미 피었네 그 위에 수사마귀 한 마리 거꾸로 앉아서 아이 어지러워 누가 날 좀 내려놔줘요
나는 산불감시초소를 작업실로 쓰고 싶다
어떤 작가는 성당을 작업실로 썼다지만 나는 산불감시초소를 작업실로 쓰고 싶다 긴 철제 사다리가 마치 천국으로 가는 계단처럼 비스듬히 기대어 있는 (그러나 결코 천국에 가기 위한 것은 아님) 그리고 작은 창이 달려 있고 녹색 양철 지붕이 있는 집, 이 산불감시초소에서 한 계절을 나고 싶다 나는 매일매일을 뜬눈으로 지샐 것이며 밤에는 모르는 별의 문자를 해독하고 잠 못 드는 새의 울음소리를 채집하여 나의 자서전에 인용할 것이다 (그건 아직 먼 후의 일이지만) 그리고 나는 먼 구름을 애인으로 둔 늙은 바위로부터 겨우겨우 모은 전설을 바람의 피륙에 한 땀 한 땀 기록하리라 나는 또 사라진 짐승들의 발자국을 쫓아 하루종일 숲속을 헤맬 것이다 나의 관심은 그러나 그것들에 있지 않다 지금 살아 있는 것들의 불타오르는 내면을 나의 열렬한 정부로 삼고 싶을 뿐, 멀리 도시의 불빛도 잠재우고 나는 홀로 외롭게 마음속 산적을 불러 그들과 함께 녹슨 칼을 푸른 숫돌에 갈며 절망이 타고 가는 말의 급소를 노릴 것이다 마침내 나는 산불을 지르고 도망칠 것이다 비겁의 검은 숲을 모조리 불태울 것이다 아직 펄펄 숨쉬는 짐승들의 시간을 불러올 것이다 비명, 비명, 비명의 바윗돌을 구르게 할 것이다 나는 미친 듯 길길이 산비탈을 뛰어내려오며 결국 아무것도 태울 수 없는 빈산이 내 안에 있음을 숨죽여 몸서리칠 것이다 어떠한가? 유 시인은 아직도 ‘애에로워’ 하고 있지 않는가? 이달 작가회의 행사에는 유 시인을 만나기 위해서라도 꼭 나가봐야겠다. 그리고 문득 나도 소설 때문에 더 ‘애에롭’고 늘 ‘애에롭’고 싶다.■
|
댓글수(1)
잠 못이루는 시간에 독서를 합니다
엊그제 독서회 멤버중 한분이 장마리작가님의 <선셋블루스>를 빌려 달라고 해서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애에로워서라는 표현에 미소를 지어봅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