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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명자의 엉뚱한 고전읽기] 돈 문제로 고민될 때...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9-01-30
조회수 128


돈 문제로 고민될 때...


글_명로진(작가)



『관자』 관중 저 / 김필수, 고대혁, 장승구, 신창호 공역  | 소나무 | 2015년 02월 28일



창고가 가득 차야 예절을 알고 입을 옷과 먹을 양식이 풍족해야 영욕을 안다.
- 관중, [관자]

 

 춘추 전국 시대의 명재상 관중(기원전 725~645)은 실용주의 정책으로 제나라를 강국으로 만들었다. [관자]는 관중과 제환공이 나눈 대화로 이루어진 책이다. 관중이 중국 역사상 가장 훌륭한 재상으로 여겨지는 데는 두 사람의 공이 있다. 첫째는 포숙아, 둘째는 제환공이다. 제나라에서 왕권 경쟁이 벌어졌을 때, 원래 관중은 제환공파가 아닌 공자 규파였다. 관중은 규를 위해 제환공에게 활까지 쏘았던 사람이다. 두 그룹이 왕권을 놓고 싸우다 최종적으로 제환공이 이겼을 때, 제환공은 공자 규의 가신인 관중을 제거하려 했다. 이때 포숙아가 나서서 관중을 적극적으로 천거해 관중은 재상의 자리에 오른다. 포숙아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제환공 역시 중요하다.

[관자]를 보면 관중은 마치 컨설팅을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정치, 경제, 사회에 대한 수많은 사항에 대해 제환공에게 가르침을 주고 건의를 한다. 그러나 박수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 제환공 역시 지치지 않고 질문한다. 질문하는 자가 있기에 답하는 자가 빛난다. 질문이란 것도 뭔가를 알아야 하는 법. 멍청한 학생은 질문 자체를 하지 않는다. 알지 못해서 이기도 하지만 알고자 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나라를 잘 다스리려는 욕망이 있었던 제환공은 끊임없이 질문하고 정치적 지혜와 실력을 동시에 갖추고 있었던 관중은 지치지 않고 대답한다. 이 질문과 대답은 그대로 제나라의 정책이 되어 나타난다. 대표적인 것이 소금에 부과하는 염세다.

정치를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무조건 세금을 거두어 들였다간 백성들이 반발하고 탈세하게 된다. 관중은 일단 소금 관리를 국유화하고 한 사람이 한 달에 먹는 소금 양까지 계산해서 여기에 세금을 부과하는 방식을 취한다. 관중의 계산에 의하면 1인당 의무적으로 내야 하는 인두세 대신 간접세인 소금세를 도입하면 무려 100배 이상 세금을 거둘 수 있었다. 제나라는 소금과 철이 많이 생산되는 곳이어서 이를 통해 부국을 이루고 나아가 강병을 실현한다. 관중은 실용주의적 경제 정책을 통해 제나라를 잘 다스렸을 뿐 아니라, 군대를 길러 중원을 위협하는 이민족을 방어했고 혼란한 춘추 시대 중국의 여러 나라 중 제나라를 패자의 위치에 올려놓는 위업을 달성한다. 든든한 경제를 바탕으로 나라의 힘을 기르는 데 주력했던 관중이 [관자]의 첫 부분에서 말하는 것이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이다.

 

나라에 재물이 많으면 멀리 있는 사람도 온다.

 

문제는 경제라는 것이다. ? ‘곳간에서 인심난다는 말이 있다. 관중은 사람은 누구나 가진 것이 있어야 예절과 영욕을 안다.”고 간파했다. 당장 굶어 죽을 판에 누가 예의를 차리고 영광과 치욕을 따지겠는가? 세계적 사진가 제임스 나트웨이가 1993년 내전으로 극심한 기근에 시달리던 아프리카 수단에서 사진 한 장을 찍었다. 수십일 동안 굶은 남자가 오랜만에 급식소에 구호물자가 도착했다는 말을 듣고 기어서 가고 있는 사진이다. 사진 속의 남자는 뼈만 남은 몸이다. 그런데 이 남자...벌거벗었다. 어찌 옷이 없겠냐만 이 남자의 머릿속에는 오직 배를 채우겠다는 생각뿐이다. 어쩌면 부끄러움을 판단하는 뇌 기능이 멈춰 있는지도 모른다. 생존은 수치 앞에 온다.

관중이 살았던 시대는 자본주의 시대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26백 년 전 현자는 기본적인 재산이 있어야 문화도 있다고 설파한다. 맹자는 말했다. “안정적인 수입이 있어야 안정적인 마음을 가질 수 있다.”. 공자는 말했다. “분배가 고르게 되어야 가난이 없어진다.”. 고전의 철인들이 뜬 구름 잡는 소리만 한 것이 아니다. 오비디우스는 [로마의 축제들]에서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가장 많이 갖고 있으면서도 더 많은 것을 추구했지요. 물을 마실수록 더 갈증을 느끼는, 수종증(水腫症)으로 배가 부어오른 사람들과도 같았소. 지금은 돈이 제일이오, 재력이 관직도 가져다주고 재력이 우정도 가져다주며 가난한 자는 어디서나 유린당하지요.(천병희 옮김, 39)

 

돈 문제는 늘 중요했다. 특히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피와도 같다. 피가 돌지 않으면 우린 죽는다. 돈이 돌지 않아도 역시 우린 죽는다. 아이는 분유를 먹지 못하고 기저귀를 갈지 못한다. 누굴 만날 수도 없고 마음껏 먹을 수도 없다. 살 곳이 없어지고 입을 옷은 헤진다. 이게 죽음이 아니고 무엇이랴.

관중은 늙고 아내가 없는 사람을 환, 젊고 남편이 없는 사람이 과, 늙어 자식이 없는 사람을 독이라 했다. 이들은 경제력이 없으므로 군주가 특별히 신경 써서 돌봐주어야 한다. 맹자는 여기에 어린데 부모가 없는 아이를 고라 하여 공동체에서 도움을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대적 복지 사상의 출발이다. 프리랜서인 나는 수입이 들쭉날쭉하다. 많이 벌 때도 있지만 영 시원치 않을 때도 있다. 통장 잔액이 거의 바닥 날 때면 북유럽 식의 기본 수입이라도 도입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언젠가 마이너스까지 통통 털어서 아파트 대출금을 갚고 아이 학비를 내고 나니 더 이상 끌어 쓸 돈도 없었다. 매일 열심히 일 한다고 하는데도 돈 문제는 나를 괴롭혔다. ‘, 이 짓을 계속 해야 하나회의가 들었다. 그야말로 워킹 푸어working poor였다. 누군가 보험 설계사 일을 권유하며 자기 수입 통장을 보여 줬을 때 내 눈은 휘둥그레 해졌다. 살짝 흔들렸다. 그때 독일 작가 롤프 에시히가 쓴 [글쓰기의 기쁨]이란 책의 한 구절이 눈에 들어 왔다.

 

프리드리히 실러도 써야 할 희곡 제목별로 시간을 할당해 놓은 계획표를 만들었다. 그는 돈을 빌려서 집을 한 채 샀는데 1802년과 1808년 사이에는 매년 한 편씩 작품을 완성해야만 빚을 다 갚을 수 있다고 계산했다. 계획서에는 32편의 희곡에 대한 구상이 제목과 함께 적혀 있었다.

 

독일의 대문호로 괴테와 함께 국민 작가로 추앙받는 실러도 집 대출금 갚느라 글을 썼다. 아하! 실러도 그랬는데 나 같은 작가야 말해 무엇하랴. 그때 읽었던 실러의 대출금 갚기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는 나를 위로했다. 위대한 작가나 비루한 글쟁이나 똑같구나. 다행이었다. 크게 고민하지 않고 하던 일이나 계속 하자고 마음먹었다. 더 크게 날 위로 했던 건, 프리드리히 실러조차 주택 대출을 다 갚지 못하고 죽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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