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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소설가 장마리의 독서지략] 모자라는 재능을 한탄할 게 아니라······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9-03-06
조회수 285

 

모자라는 재능을 한탄할 게 아니라······



글_장마리(소설가)




『문신』 윤홍길 저 | 문학동네 | 2018년 12월 05일

 

 

 

  그리 크지 않았다. 꼼꼼하게 종이로 싸맸다. 두께가 솔찮았다. 택배 기사로부터 물건을 받아들고 보낸 사람의 이름을 확인했다.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평소 인터넷으로 책 주문을 많이 한다. 내가 원하는 책이 절판되어 중고서점을 이용하게 되면 네모반듯한 박스에 충격완화제를 넣고 서점 로고가 선명히 박힌 책 포장상자가 아니라, 이렇듯 책을 꼼꼼하게 싸맨 후 비닐봉투로 겉면을 다시 포장한 책을 배달받게 되는데, 그것과도 확연히 달랐던 것이다.
  나는 문구용 칼로 조심히 테이프 자국을 자르고 내용물을 꺼냈다.
  하얀 책표지에 회색 글씨로 문신’, 윤흥길 장편소설,이라고 씌어 있었고 무려 3권의 책이었다. 나도 모르게 아! 라고 감탄사가 나왔다. 나는 아주 조심히 책을 펼쳤다. 우선 책날개부터 살폈다. 검은 뿔테 안경을 쓰고 무언가를 들여다보는 선생님의 근엄한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사진 밑으로는 선생님의 화려한 약력이 간결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작품에 대한 소감이 다섯줄을 넘지 않았다. 한 장을 더 넘겼다.


   장마리 雅人玉案下
   2018. 12. 26.
   저자 尹興吉(선생님의 이름은 작가 싸인 하듯 흘림체로 쓰여 있었다)


  나는 작년 10월에 장편소설 블라인드를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중소출판기금에 선정되어 출간하면서 선생님께 염치불구하고 추천사를 부탁했었다. 선생님은 작가의 역량이 한참이나 부족한 후배의 부탁을 거절 못하고 추천사를 써주셨는데, 선생님의 글을 읽고 얼마나 낯이 뜨겁던지…… 선생님께 감사하다는 인사도 제대로 못 드릴만큼 면목이 없었다. 그런데 또 한 번 선생님은 나를 부끄럽게 했다. 장마리 雅人玉案下(아인옥안하)라니…… 선배가 후배에게 그냥 말치레로 했다고 해도 나는 다시 화끈 얼굴이 달아올랐다.
  나는 그대로 책꽂이에 꽂아 놓았다. 곧바로 읽을 수가 없었다. 하루를 딴 일로 보내고 잠자리에 들어 불을 끄고 누웠는데 잠이 오지 않았다. 불을 켜고 문신을 펼쳤다.
  제목이 문신이라 문장가에 대한 이야기인가? 천재적인 작가에 대한 이야기? 이런 생각을 했는데, 너무 아픈 우리 역사에 대한 한 가족사의 이야기였다. 즉 일제강점기 한 가족을 통해 한국인의 정체성이란 무엇인지 독자들에게 묻고 있었다.
  ‘문신은 전쟁에 나가 죽을 경우 시신이라도 고향 선영에 묻히기 위해 몸에 새기는 부병자자(赴兵刺字) 풍습에서 따온 것이었다. 시대적 배경은 일제 때이고 주 무대가 전라도 인지라 전라도 토박이 말투가 맛깔스러워 피식피식 웃으면서 읽었다.
  나는 대학원 석사 논문을 이문구의 관촌수필연구인물유형과 문체적 특징을 중심으로, 하여 받았다. 이문구 선생의 구수한 충청도의 입말체 문장과 개성적 인물유형에 대한 논문이었다. 그런데 박사과정은 수료한 지가 몇 해가 넘어가고 있는데 아직 시작을 못하고 있다. 문득 문신에 나타난 전라도 토속 언어에 관한 것을 좀 공부하고 연구해서 논문을 써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 책을 읽는 또 다른 재미는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각기 개성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주인공 최명배는 야마니시 아끼라,라고 창씨개명을 한 천석꾼 대지주이다. 그를 보여주는 대사를 이곳에 옮기면 다음과 같다.
  “내가 누군지 아느냐, 요놈들아? 곧 죽어도 나는 야마니시 아끼라, 그러니까 최하고도 명 자, 배 자 어른이시다! 혹간 길바닥에 나자빠지더라도 그냥 맨손으로는 안 일어나는 독종이다, 요놈들아! 하다못해 차돌멩이 한 개라도 손에 쥐어야 일어나는 상곡 어른신이란 말이다!”
  약삭빠른 기회주의자로 일제의 토지조사사업 당시 허술한 법망을 파고들어 부를 쌓는다. 조상 모시는 것을 중히 여기면서도 먼저 창씨개명을 하고 천황폐하 만세삼창을 하는 모순적인 인물이다.
  그다음은 장남 최부용. 지식인지만 폐결핵을 앓고 있으면서 친일 행보를 이어가는 아버지와 기독교를 믿는 누나, 사회주의 운동을 하는 동생과 거리를 두고 냉소적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지만 행동은 하지 않는 인물이다. 물론 그에게 열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죽음을 앞둔 그가 사회에 대한 비판 외에는 무엇이 있을까.
  친일세력에 가장 반대한 세력들은 사회주의자들이다. 즉 경성에서 유학을 하는 귀용은 사촌형에 의해 사회주의 운동을 하는데 첫 번째로 부딪치는 대상이 최명배, 아버지이다. 귀용은 사촌 형과 함께 악덕지주 야마니시 아끼라의 재산을 털고 자취를 감춘다.
  사랑하는 약혼자를 먼저 보내고 기독교 신념으로 삶을 살아가는 순금이 결국은 집안을 지키고 유지하는 역할을 담당하는데 가장 나약한 여성이 꺾이지 않고 굳건히 제자리를 지키는 인물이라는 것에 다른 역사소설과는 조금 다른 시사점을 주기도 한다.
  나는 이 책에 대한 독서칼럼을 쓰기 위해 인터넷을 검색했다. 원래 문신은 총 5권으로 2018년에 완간할 예정이었는데 건강이 좋지 않아 집필을 중단하면서 3권이 먼저 나왔다고 한다. 선생님은 고 박경리 선생님이 했던 말을 늘 가슴에 담아두었던 모양이다.
  “아파트에 살지 말고 전원주택에서 땅 밟고 흙 만지면서 살아라. 큰 작품을 쓰라. 선생 하기를 그만두라.”
  고 박경리 선생님의 이 말이 선생님은 부채감으로 남아 있었다고 한다. 선생님의 겸손함이 어디서 비롯되었나 했는데 바로 고 박경리 선생님이 뒤에 계셨기 때문이리라.
  작품 집필에 시간이 오래 걸린 이유를 기자가 묻자 선생님은 첫째로는 작가의 역량 문제였다고 말했다. “이 소설을 쓰면서 제가 작가로서는 천부적인 재능을 못 타고 났다는 걸 많이 느끼고 있다면서 남들은 열 권, 스무 권짜리 소설을 쓰는데 다섯 권짜리 소설을 가지고도 이렇게 힘들고 고생하는 걸 보면 제 능력이 대하소설 쓰는 데는 부족하다는 걸 스스로 느꼈다고 말했다.
  기자는 마지막으로 등단 50년을 맞아 후배작가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느냐는 질문을 했고 선생님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50년이라면 사실 긴 세월이에요. 그동안 작가 생활을 하면서 어려운 고비도 여러 번 넘기고 고생도 많이 하면서 아직도 현역으로 남아서 활동할 수 있다는 건 하나님이 저에게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 신인 작가 시절에는 제가 천재인 줄 알았어요. 서울에 올라오니 진짜 천재들이 많아서 기가 죽더라고요. 언제가 뇌 CT 촬영을 했어요. 보통 창작하는 사람들은 전두엽이 크게 나오는 편인데, 제 전두엽은 보통 사람하고 사이즈가 같다는 거예요. 결국 제가 천재가 아니고 범재라는 걸 현대 의학이 판정을 내린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천재가 아니라는 판정을 받은 뒤로 모자라는 천재성을 보완하려고 창작에만 집중했어요. 하나님이 제게 종일이라도 의자에 앉아서 버틸 수 있는 지구력, 뚝심, 체력과 무거운 엉덩이를 주셔서 감사하고 있어요. 모자란 재능을 한탄할 게 아니라 모자라는 부분을 얼마든지 노력으로 벌충하고 상쇄할 수 있다는 걸 후배들이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선생님의 이 말씀을 내게 직접 한 것은 아니지만, 오늘 만이라도 나는 온종일 엉덩이를 의자에 붙들어 놓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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