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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소설가 이근미의 책 세상] 상실의 시간이 주는 힘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9-04-02
조회수 79

 

상실의 시간이 주는 힘

글_이근미(소설가)

 
 


 

『상실의 힘』  최지월 저  | 한겨레출판 | 2014년 07월 11일
 

 

요즘 들려오느니 부모님들이 가셨다는 소식이다. 백세 시대라지만 시편 기자가 말한 인생은 기껏해야 칠십 년, 근력이 좋아야 팔십 년, 그나마 거의가 고생과 슬픔에 젖은 것, 날아가듯 덧없이 사라지고 맙니다라는 말처럼 빈소에 가보면 대개 90세가 되기 전에 떠나신다. 지천명의 나이를 넘기면 어쩔 수 없이 부모님과의 이별식을 치러야 한다. 부모님과 헤어져야 진정 하늘의 뜻을 알게 되면서 어른이 되는지도 모르겠다.
 

상실의 시간들은 한겨레문학상 당선작인데 물샐틈없이, 꼼꼼한 바느질 솜씨다. 작가의 진정성에 깊은 신뢰감을 느낀다. 튀는 소재를 기획적인 전략으로 버무려내는 응모작들이 많은 요즘의 경향에 비추어볼 때 매우 귀중한 덕목이 아닐 수 없다는 심사평대로 작가가 한 땀 한 땀 마음을 새겨 넣었다고 생각될 정도로 치밀하다.

엄마의 죽음에서 출발하는 소설 속에는 사십구재에서 탈상인 100일까지의 기록이 세세하게 담겨 있다. 엄마와 43년을 함께 산 아버지는 절대 스스로 끼니를 챙겨먹지 않았던 인물이다. ‘엄마는 집을 비우는 날이면, 데우기만 해도 차려 먹을 수 있도록 밥이며 반찬을 전부 챙겨놓고 나서야 했다. 엄마 장례를 치른 뒤 49일이 지났지만, 아직도 아버지는 자기 밥을 스스로 챙기지 못한다. 아침저녁으로 죽은 엄마에게 밥상을 내고 치우는 일을 아버지가 할 수 있을 턱이 없다는 소설 속 문장을 보면 앞으로 일어날 일들이 저절로 떠오른다.

 

엄마가 돌아가신 지 49, 슬픔보다는 꾸역꾸역 밀려드는 평범한 일상을 처리해야 할 때이다. 사랑 주던 엄마는 이제 없고, 효도 받으려는 아버지만 남은 상황, 해외에 사는 언니와 자기 공부에 바쁜 여동생은 작가인 주인공을 실업자 취급하며 아버지를 떠안기려는 현실. 이제 주인공 석희는 어떻게 해야 하나.

 

아버지가 먼저 가시고 어머니가 가시는 게 가장 좋다고들 하는 이유는 매운 손끝으로 평생 살림을 해 오신 어머니가 아버지 가시는 길을 돌보시는 게 자녀들도 편하기 때문이다. 대개 아버지가 연장자인 데다 여성이 평균수명이 길기 때문에 아버지가 먼저 가시는 게 호상이 될 확률이 높다.

 

평생 군인으로 살아온 깐깐한 아버지와 작가인 까칠한 노처녀 딸이 아내와 엄마의 부재 속에서 새 삶을 만들어나가는 얘기를 담고 있으니 소설 속의 상실의 시간들은 자칫 치열해 보이기도 한다. 깐깐한 아버지와 까칠한 딸의 팽팽한 줄다리기를 따라가면 죽음보다 더 처절한 것이 삶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소설은 다큐멘터리라고 생각될 정도로 사실적이면서 현실감이 넘친다. ‘원래 나는 이 글을 2년 전에 겪은 어머니의 죽음이 불러일으킨 마음의 혼란을 벗어나보고자 쓰기 시작했다는 작가의 말에서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최지월 작가는 이 소설을 쓴 이유로 고독을 들었다. 장례를 치르면서 자신을 가장 괴롭힌 것이 고독이었고, 그 고독을 극복해보고자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에 어떤 식으로든 연결 고리를 찾고자 무척 애를 썼다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모와 평범하게 이별하지만, 그 이별 속에 많은 번민이 끼어들기 마련이다. 상실의 시간들은 슬픔을 곱씹고 어머니를 회고하기보다 아버지와의 당면 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능력있는 군인이었지만 생활무능력자인 데다 고집만 잔뜩 센 아버지는 어떻게든 병원비를 안 쓰고 딸들에게 집을 물려주고 싶어 한다. 다른 자매들의 이기적인 모습에 배신감을 느끼면서도 딸은 서울과 원주를 오가며 끝까지 아버지를 돌본다. 상실은 새로운 힘으로 귀결되고 가족은 결국 끈끈함 속에서 뭉치기 마련이다.

 

작가는 불교를 바탕으로 죽음을 풀이하고 있다. 삶과 죽음, 죽음 이후에 대해서는 생각이 다 다를 것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죽음과 죽음 이후에 대해 나의 생각과 어떤 점이 같고 어떤 점이 다른지를 따져보는 것도 독서 포인트 중의 하나이다.

 

삶을 지속한다는 건 끊임없이 낯설어지고, 새로워지고, 고독해지는 일이다. 형제도 자라서 타인이 되고, 타인이 만나서 가족이 되고, 그 가족은 다시 서로를 헤아리지 못하는 타인으로 변해 헤어진다. 만난 사람은 헤어진다. 40년이나 알아온 엄마와 나도 이제 헤어졌다. 이별만이 인생이다.’(269)

 

속수무책 상실의 시간들에 대한 성실하고 진지하게 기록을 따라 가면서 삶과 죽음을 오롯이 만나보길 권한다. 영화 신과함께가 엄청난 관객을 끌어 모았는데 죽음 이후에 심판이 있다고 생각하면 제대로 살기 위해 좀 더 고심하지 않겠는가. 성경에서는 사람이 한 번 죽는 것은 정해진 일이요, 그 뒤에는 심판이 있습니다라고 했다. 심판을 믿든 안 믿든 사람이 한 번 죽는 것은 정해진 일이다. 상실의 시간들을 죽 따라가다가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봄날도 곧 간다는 걸 깨닫는다면 삶을 더욱 사랑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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