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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최보기의 이런 기능성 책이라니] 역사란 무엇인가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9-04-02
조회수 906



역사란 무엇인가

글_최보기(작가, 북칼럼니스트)





『백년의 약속-우리가 몰랐던 대한민국 헌법 이야기』 조유진 저  | 처음헌법연구소 | 2019년 03월 06일
 
 
『우린 너무 몰랐다』 김용옥 저  | 통나무 | 2019년 01월 28일

『안익태 케이스』 이해영 저  | 삼인 | 2019년 01월 15일


『한번의 죽음으로 천 년을 살다』 김태빈, 전희경 저  | 레드우드 | 2018년 12월 22일

 

  나라의 정치현실이 암울하다.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타협이 없다. 국민들 사이를 극한 저주와 증오로 갈라놓는다. 그로 인해 국민들을 혼란에 빠뜨린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는다. 국민들이 ‘준엄한 심판’을 내릴 것이라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국민은 자신들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는다’는 토크빌의 통찰이 그래서 빛난다. 그러므로 수준 낮은 지도자들에게 속지 않고, 그들을 심판할 수 있으려면 국민의 수준이 높아져야 한다.
 

  근래 들어 1910년 나라를 일본에 빼앗겼을 때부터 해방전후에 이르는 근ㆍ현대사를 놓고 대립이 특히 첨예하다. 그 시기의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지 판단하는데 도움이 될 신간 4권을 엮어본다. 역사학의 선구자 E.H.카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역사는 과거에 대한 반성이 없으면 똑 같은 역사를 반복시키는 특징을 갖는다. 끊임없는 대화가 필요한 이유다. 물론 대화를 통해 내리는 ‘역사적 판단’은 100% 독자의 자유다.

 

『백년의 약속-우리가 몰랐던 대한민국 헌법 이야기』

  1919년 3ㆍ1만세운동과 임시정부수립 이후 제정됐던 헌법의 역사를 중심에 두면서 근ㆍ현대 정치사의 분수령들을 다뤘다. 여기다 추가로 삼권분립과 민주주의 국가의 요건, 개인과 국가의 관계는 어떠해야 하는가를 규정한 정치철학적 상식과 교양을 함께 다뤘다. 초등학교 고학년들을 대상으로 쓴 책이지만 법과 정치, 역사를 전공하지 않은 일반 국민이라면 누구나 쉽게 저러한 내용을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특징이다.

  모두 7장으로 구성됐다. 1장은 100년 전 1919년 3ㆍ1만세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독립운동과 임시헌법 등 ‘민주공화국의 시작’을 다뤘다. 2장은 해방과 제헌국회, 3장은 자유민주국가와 전체주의국가가 헌법의 관점에서 어떻게 다른지, 4장은 인간의 존엄성, 평등권, 신체의 자유, 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 등 헌법의 허리인 ‘권리장전’을, 5장은 민주공화국의 뼈대인 삼권분립을, 6장은 헌법개정을 다뤘다. 7장은 ‘대한민국은 친일파가 세운 나라인가? 개인보다 국가나 민족이 더 중요한가?’ 등 민주시민의 교양을 채우는 문답으로 구성됐다.

 

『우린 너무 몰랐다-해방, 제주4ㆍ3과 여순민중항쟁』

  도올 김용옥의 ‘우린 너무 몰랐다’는 ‘해방정국과 제주 4ㆍ3, 여순민중항쟁의 진상’을 저자가 바라보는 역사적 관점에서 다시 파헤친 책이다. 노(老) 학자는 대부분 국민들이 ‘반란과 폭동 사건’으로 학교에서 배워 알고 있는 두 사건의 진실이 전혀 반대라고 절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사건의 지칭은 역사를 보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 아직도 대립적이다.

  이는 해방 후 친일파를 징벌하기 위해 제헌의회에서 제정했던 반민족행위처벌법과 이에 근거해 만들었던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가 친일파 경찰의 습격과 김구 암살, 국회프락치사건 등으로 와해됨으로써 ‘친일파 청산의 기회를 잃어버렸다’는 주장과 ‘국론분열을 초래했다’는 주장이 맞서는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역사는 (주관적 입장에서) 과거와 현재의 대화’므로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안익태 케이스』

  우리는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로 시작되는 애국가(愛國歌)에 대해서도 잘 몰랐다. 지금 우리가 부르는 애국가는 법으로 지정한 공식 국가(國歌)가 아니다. 임시정부 때부터 사용이 허락돼 관습적으로 애국가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이 애국가의 가사는 독립지사들의 집단지성으로 완성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독립지사들은 이 가사를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랭사인(Auld Lang Syne)의 곡조에 얹어서 불렀다. ‘오랫동안 사귀었던 정든 내 친구여 작별이란 왠말인가 가야만 하는가’로 시작하는 ‘석별의 정’이란 노래다.

  그러다 1935년 미국에서 활동하던 안익태라는 음악가가 지금의 애국가 곡조를 만들어 발표했다. 임시정부는 이 ‘안익태 애국가’의 사용을 허락했지만 그렇다고 올드랭사인 애국가가 폐지된 것은 아니었다. 해방 후 귀국한 임시정부 요인들은 여전히 올드랭사인 애국가를 합창했다. 그러다 극단적인 좌우이념투쟁과 이승만 대 김일성의 남북정권이 대립하던 소용돌이 속에서 북한이 1947년 새로운 애국가를 확정해 발표하자 남한 역시 1949년 제헌의회에 애국가 건이 상정됐다. 그러나 ‘통일이 될 때까지’ 법정 공식 애국가 제정은 보류됐다. 때문에 관행적으로 ‘안익태 애국가’가 애국가의 자리를 차지해왔다.

  문제는 일제시대 안익태라는, 흔하지 않던 현대음악가가 독일 등 유럽에 남겨놓은 행적이다. ‘안익태 케이스’ 저자 이해영은 ‘에키타이 안(Ekitai Ahn)이란 이름을 썼던 안익태가 친 히틀러 나찌 인물에 나아가 일제의 정보원이었거나 나팔수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나 정황’을 꼼꼼하게 파헤쳤다. 이해영이 안익태를 문제 삼는 것은 ‘국가의 상징인 애국가의 양보할 수 없는 절대조건은 그것을 만든 이가 애국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번의 죽음으로 천 년을 살다-우당 이회영』

  1910년 12월의 혹한 속에서 국경을 넘는 40여 명의 대가족이 있었다. 만주로 떠나는 이회영 일가였는데 그때 그의 나이 44세의 장년이었다. 이 대가족에는 이회영과 그의 형 건영, 석영, 철영은 물론 두 동생 시영, 호영 가족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회영 일가는 생계를 찾아 만주로 갔다가 독립운동에 눈뜬 대부분의 독립운동가와 달리 처음부터 독립운동을 목적으로 만주행을 택했다.

  이들의 망명은 그때까지 ‘독립운동은 상놈들만의 것이고 옛 조선의 고위층은 모두 일제통치를 찬성한다’는 가짜 뉴스를 퍼뜨리던 일제에게 타격을 주었다. 이들이 독립군 양성을 위해 세운 신흥강습소(신흥무관학교)를 빼면 1910년대 서간도 지역 독립운동은 설명이 안 된다. ‘한번의 죽음으로 천 년을 살다’는 끝내 꺾이지 않았던 우당 이회영 일가의 평전이자 그의 유적 답사기다. 구한말부터 1930년대까지 항일운동의 역사와 100년 후에 후손들이 찾은 중국 현장의 생생함이 함께 담겼다.

 

  ‘역사란 무엇인가’를 알려면 일단 역사를 들여다 봐야 한다. 위 4권의 책을 통해 1919년 임시정부로부터 100년의 역사를 여러 각도에서 들여다 봐볼 것을 권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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