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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소설가 장마리의 독서지략] 조선 최고의 문장가에게 글쓰기를 배우다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9-04-02
조회수 195

 

조선 최고의 문장가에게 글쓰기를 배우다



글_장마리(소설가)




『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우다』 박현찬, 설흔 저  | 예담 | 2007년 07월 20일

 

 

 

  소설 습작을 할 때 글쓰기나 소설 작법 등에 대한 이론서도 참 열심히 찾아 읽었다. 어떻게 하면 좋은 소설()을 써서 빨리 등단을 할 수 있을까 해서였다. 그때 이 책을 만났다. 그러니까 십 년이 넘었다. 다른 이론서는 한 번 읽고는 대부분 책꽂이에 꽂아 놓으면 다시 펼쳐보는 일이 없는데, 이 책은 일 년에 한 번 꼴로 보게 되는 것 같다. 그 이유는 글쓰기나 독서 관련 강의를 할 때 교재로 사용하거나 참고하기 때문이다.

  금년에도 서너 곳 강의를 하게 됐는데 모두 독서와 글쓰기 관련 강의이다. 그러다 보니 이론서를 읽는 일부터 시작해야 했다. 늘 하는 고민이지만 요새는 하도 많은 글쓰기 관련 이론서가 나와 있기 때문에 내가 언급을 하지 않아도 어떤 것이 좋다하고 몇 권의 이론서를 이미 읽은 이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대부분 천편일률적으로 글쓰기란 무엇인가부터 시작하여 저자의 수려한 말잔치로 구성된 것이 많다. 그러다 보면 공감이 가는 부분보다는 기교적인 부분과 빤한 이야기만 하는 것 같아 두 번 다시 읽지 않게 되는 것 같다.

  그런데 이 책은 구성이 우선 참신하다. 글쓰기 이론서인데 한 편의 소설을 읽는 듯 재미가 있다. 이론서이기도 하고 소설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책 표지 위에 인문실용소설이라고 쓰여 있는 이유이다. 즉 조선 최고의 문장가인 연암 박지원의 글쓰기 이론과 문장론을 지문이라는 한 허구의 인물이 연암의 글쓰기 작법을 배운다는 것에서 시작하여, 글로 입신양명(立身揚名)하려던 그가 결국에는 글쟁이(소설가)가 된다는 서사로 끌고 가기 때문이다. 이러한 형식을 팩션(faction)이라고도 한다.

  딱딱한 글쓰기 이론서답지 않게 흥미로운 이야기를 따라 가다보면 어느 새 연암의 논리적인 글쓰기 정신과 방법을 익히게 된다. 그러니까 조선 최고의 문장가 연암의 글쓰기 기법과 소설을 읽는 흥미,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다. 연암이 어떤 인물인가 하는 것은 이 지면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니 생략하겠다.

  자칫 연암은 조선시대의 사람이니 그의 방법론이라는 것이 너무 구태의연하지 않겠는가? 지금 우리가 배우기에는 괴리가 있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책의 작가는, 즉 소설적으로 형상화 한 저자는 설흔박현찬이라는 글쓰기와 인문학에 조예가 있는 인물들이다. 그래서 역사소설을 읽는 것처럼 흥미롭고 여기에 언급된 실질적 글쓰기 내용은 연암과 관련한 내용과 책을 참고했기 때문에 고전을 읽는 즐거움도 있다.

  책 내용을 조금 더 소개하면, 연암의 글을 둘러싼 표절 시비를 추적하는 과정(연암의 아들 종채)을 통해 아버지의 글쓰기 비밀을 파헤친다. 종채는 아버지의 제자 지문(허구의 인물)이 남긴 한 권의 책을 얻게 되고, 그 책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니 거기에 아버지의 글쓰기 비밀이 있었음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연암이 말하는 글쓰기 법칙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하나, 정밀하게 독서하라.

  독서는 푹 젖는 것을 귀하게 여긴다. 푹 젖어야 세상과 내가 서로 어울려 하나가 된다.

  바쁜 세상에 언제 책에 젖어 든단 말인가? 빨리 읽기 위한 법을 배우기 위해 속독이라는 곳에 가서 배우는 세상인데…….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듯하다. 그런데 나는 이 책을 여러 번 읽었음에도 읽을 때마다 내가 놓친 부분을 새롭게 발견하게 된다. 비단 좋은 책이란 한 번 읽었을 때 느낌과 두 번 읽었을 때의 느낌이 같을 수 없다. 하물며 글쓰기 이론을 읽히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속독해서는 되지 않을 것이다.

  둘, 관찰하고 통찰하라.

  통찰은 결코 저절로 오지 않는다. 반드시 넓게 보고 깊게 파헤치는 절차탁마(切磋琢磨)의 과정이 필요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라는 시도 관찰과 통찰이 없었으면 쓸 수 없는 시였을 것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 너도 그렇다. 이 석 줄의 시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시인은 아이들이 떠나간 교정을 혼자 걸으며 여기저기 살폈을 것이다. 아이들이 돌멩이에 다치지나 않을까? 그런데 돌 틈에서 자라는 풀 한포기를 보았을 것이다. 뽑아야겠다,라고 손을 뻗었는데, 시인의 눈에 노랗게 핀 꽃을 발견했을 것이다. 그 풀꽃을 자세히 보니 너무 예뻤고 오래 들여다보니 사랑스럽기까지 했을 것이다. 문득 자존감이 없어 늘 의기소침해 있는 반 아이가 떠올랐을 것이다. 어떠한가? 관찰하지 않았더라면 풀에도 예쁜 꽃이 피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고, 통찰하지 않았더라면 반 아이가 무릇 풀꽃처럼 어여쁜 부분이 있다는 생각을 못했을 것이다. 관찰하고 통찰하는 것은 비단 시인만이 필요한 자세는 아닐 것이다.

  셋, 원칙을 따르되 적절하게 변통하여 뜻을 전달하라.

  옛것을 모범으로 삼고 변통할 줄 알아야 한다. 바로 법고이지변(法古而知變 )의 이치다. 또한 변통하되 법도를 지켜야 한다. 이것이 바로 창신이능전(創新而能典)‘의 이치다.

  소설을 잘 쓰기 위한 방법 중 필사라는 것이 있다. 즉 잘 쓴 소설을 원고지에 그대로 베껴보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눈으로만 읽을 때와는 다른 것들을 발견하게 된다. 문채(文彩)를 읽히는 데 많은 도움을 주고 소설은 모름지기 이래야 한다는 기준을 배우게 된다. 그러나 거기에서 끝나면 안 되고 내가 쓰려는 작품은 어떤 차별화를 주어 형상화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넷, ‘사이의 통합적 관점을 만들라.

  대립되는 관점을 아우르면서도 둘 사이를 꿰뚫는 새로운 제3의 시간을 제시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서 있는 자리와 사유의 틀을 깨고 나갈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앞서 말한 세 번째 법칙과 연동해서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어렵게 작품 창작을 하고 보면 기발하고 창의적이지 못하다는 자괴감이 든다. 참신한 작품을 창작한다는 것은 정말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습작기 때 한 문우는 내가 쓰려고 하면 이미 누군가가 다 써서 나는 쓸 것이 없다고 한탄을 한 적이 있다. 또 다른 작가는 세상에는 이미 새로울 것이 없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하니 그 사이를 적절하게 꿰뚫어 참신하고 기발한 작품을 창작한다는 것은…….

  다섯, 11가지 실전수칙을 실천하라.

  명확한 주제의식을 가지고, 제목의 의도를 파악해서 글을 쓰며, 사례를 적절히 인용하고, 일관된 논리를 유지하며, 운율과 표현으로 흥미를 배가하라. 인과관계에 유의하고, 참신한 비유를 사용하며, 반전의 묘미를 살려서 시작과 마무리를 잘하라. 또한 함축의 묘미를 살리고, 반드시 여운을 남기라.

  아마 여기서는 자신이 쓴 글을 다시 읽어가며 고치고 수정하는 퇴고의 과정이 필요하리라. 일필휘지(一筆揮之)로 작품은 완성될 수 없다. 작품을 다 썼다, 이제 반 완성이다, 라고 말하는 이론서도 있다. 즉 이제부터 지난한 퇴고의 시간을 거쳐야 좋은 작품이 되고 작가도 보람을 느낄 수 있다.

  여섯, 분발심을 잊지 말라.

  한 번 뱉으면 사라지고 마는 말이 아니라, 지극한 초심으로 한 자 한 자 새긴 글로써 세상에 자신의 뜻을 증명하는 것이 글쓰는 사람의 자세라고 말하고 있다. 즉 사마천이 사기를 저술할 때의 마음을 잊지 말라고 연암이 말하자, 주인공 지문은 어린아이들이 나비 잡는 모습을 보면 사마천의 마음을 간파해 낼 수 있다고 했다. 앞다리를 반쯤 꿇고, 뒷다리는 비스듬히 발꿈치를 들고서 두 손가락을 집게 모양으로 만들어 다가가는데, 잡을까 말까 망설이는 사이 나비는 그만 날아가 버린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사람이 없기에 어이없이 웃다가 얼굴을 붉히기도 하고 성을 내기도 한다.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글의 힘을 믿는 것인데, 왜 글을 쓰게 되었는지 잊지 않고 모든 기쁨과 분노와 슬픔을 글에 쏟아 부어야 한다. 그런 마음 없이 쓴 글은 모두 헛것이고 그런 마음이 없다면 한순간 방향을 잃고 헤매게 된다고 연암은 말하고 있다.

  특히 소설은 이 분발심을 놓지 않아야 긴 호흡의 작품을 완성할 수 있다. 그런데 바야흐로 밖은 만화방창(萬化方暢)의 계절이다. 들썩이는 엉덩이를 어떻게든 붙들어야 할 것이다. 이 책이 글쓰기나 독서 관련 강의를 듣고자 하는 수강생이 필요한 이론서가 아니라 어쩌면 장편을 쓰고 있는 내게 더 필요한 이론서였음을 다시금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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