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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명자의 엉뚱한 고전읽기] 죽음에 대하여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9-04-02
조회수 140


죽음에 대하여


글_명로진(작가)



 

 사람은 태어나서 살다 죽는다. 독서 카페 마지막 칼럼에는 특정 도서를 소개하기 보다는 우리의 삶에 필연인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2003, 방송 프로그램 촬영을 위해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갔다. 이곳 바다 밑에는 고대 그리스의 유적이 남아 있었다. 그것을 찾아 스쿠버 다이빙을 했다. 바다를 잘 아는 가이드를 따라 사자상이 반쯤 묻혀 있는 곳에 이르렀을 때 심한 조류가 밀려 왔다. 바다 속에서 조류가 밀려 올 때는 재빨리 절벽 가까이에 붙어야 한다. 가이드는 절벽 쪽에 붙어 이쪽으로 오라고 손짓했다. 조류는 나를 사정없이 난바다 쪽으로 밀어댔다. 팔 다리를 휘저었으나 오히려 더 멀어질 뿐이었다. 숨이 가쁘고 목이 탔다. 발밑에 펼쳐진 검푸른 심해를 내려다보는 순간, 죽음의 공포가 밀려왔다. 젖 먹던 힘까지 내서 절벽 쪽으로 치댔다. 10분쯤 지났을까? 폐가 타는 듯했다. 조류가 잦아들자 가이드가 내 손을 잡았다. 내 산소는 거의 바닥이 나 있었다. 나는 얼이 반쯤 나가 있었다. 배에 올라 그대로 실신하고 말았다. 한 시간 쯤 뒤, 포구에 도착할 때 쯤 나는 정신을 차렸다.

괜찮으냐?”

가이드가 물었다.

죽는 줄 알았다.”

내가 대답했다. 가이드는 내가 ‘OK?’ 하고 사인을 보내면 너는 늘 ‘OK’라고 했다.”

 심지어 조류가 잦아들고 나서 우리가 몇 분 더 다이빙을 하고 왔다는 것이다. 나는 끊어진 필름처럼 몇 장면이 떠오를 뿐 조류 이후의 다이빙은 잘 기억나지 않았다. 전형적인 질소 중독 증상이었다. 깊이 잠수해서 고압의 공기를 들이마셨을 때 몸 안에서 용해되는 질소량이 증가해서 일어나는 마취 상태를 말한다. 나는 조류가 끝난 곳에서 몇 분 동안은 죽어 있었던 것이다. 몸은 움직였지만 정신은 빈사 상태였으니.

 인간에게 죽음이란 공포이자 두려움이다. 또한 슬픔이다. 나 자신에게 닥친 죽음의 두려움보다 더한 것은 아마도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리라. 이순신 장군은 [난중일기]에서 막내아들 면의 전사 소식을 접하고 이렇게 썼다.

 

 사경(새벽 2)에 꿈을 꾸었는데 내가 말을 타고 언덕 위를 가다가 말이 헛디뎌 냇물 속에 떨어졌지만 거꾸러지지는 않았다. 그런데 막내아들 면이 나를 껴안는 모습을 보고 깨었다. 무슨 조짐인지 모르겠다. 저녁에 어떤 사람이 천안에서 와서 집안 편지를 전했는데, 봉함을 뜯기도 전에 뼈와 살이 먼저 떨리고 정신이 혼미해졌다. 겉봉을 대강 뜯고 보니 겉에 통곡 痛哭두 글자가 쓰여 있었다. 면이 전사한 것을 알고 나도 모르게 간담이 떨어져 목 놓아 통곡했다. 하늘이 어찌 이다지도 인자하지 못하신가. 내가 죽고 네가 사는 것이 이치에 마땅하건만, 네가 죽고 내가 살았으니 무슨 이치가 이렇게 어긋나는가. 하늘과 땅이 캄캄해지고, 밝은 해까지도 빛을 잃었다. 슬프다. 내 아들아, 나를 버리고 어디로 갔느냐...(허경진 옮김, [난중일기])

 

 20101128일을, 나는 잊지 못한다. 인천의 한 요양병원에서 부친은 돌아가셨다. 오후 4시쯤 간호사가 내게 말했다. “얼마 안 남으셨어요. 청각이 끝까지 남아 있으니까 아버님께 뭐라고 말씀해 보세요.” 무슨 말을 하란 말인가?

아버지...아버지...”

 그것뿐이었다. 내 목소리를 들은 아버지의 감은 눈 위로 눈물이 베어 나왔다. 정신이 아득했다. 뭔가 말해야 하는데, 말하고 싶은데 그게 뭔지 알 수 없었다. 10분쯤 지났을 때, 심전계의 바이탈 사인이 멈췄다. 의사가 와서 보더니 서류를 내밀었다. “제세동기 사용에 비용이 듭니다.” 이 사람아! 지금 그게 중요한가. 참으로 야박했다. 내가 종이에 서명을 하자 의사는 몇 번 심폐소생술을 시도했다.

사망하셨습니다.”

 장례를 치르고 며칠 뒤, 아내와 아들과 오리고기를 먹으러 갔다. 초등학생 아이는 맛있게도 고기를 먹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나는 눈물이 났다. 아들의 모습 위에 초등학생 때의 내가, 내 모습 위에 젊었던 부친의 얼굴이 오버랩 되었다. 그리고 임종 직전, 내가 하고 싶었으나 하지 못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버지! 사랑해요. 부디 좋은 곳에 가셔서 편히 쉬셔요...”

 

 지중해의 바다 속에서 내가 겪었던 죽음의 공포는 곧 사라졌다. 부친의 죽음에 따르는 애통함도 처음 6개월 동안은 견딜 수 없었으나 서서히 사라졌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삶의 끈질김을 이기면 우리는 살지 못한다. 헤밍웨이는 열아홉 살에 이탈리아 전선의 1차 대전에 참여했다 폭격으로 부상을 당했다. 그는 군 병원에서 한 영국군 장교를 만났다. 절망하고 있던 헤밍웨이에게 장교는 쪽지를 건넸는데 헤밍웨이는 그 글을 읽고 갑자기 눈이 떠진 듯 행복감을 느꼈다. 거기엔 이렇게 써져 있었다.

 

한 번 죽은 사람은 다음에는 결코 죽지 않는다.”

 

[그동안 명자의 고전읽기를 애독해 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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