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열기
닫기
이전으로 돌아가기

독서인

메뉴타이틀

게시물 상세화면
제목 [노승영의 책 속으로, 세상 속으로] 빛에도 페로몬이 있다면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20-12-02


빛에도 페로몬이 있다면


글_노승영(번역가)




 

개미의 수학, 최지범 저, 에이도스, 2020
 

처음 책을 보았을 땐 개미 연구에 평생을 바친 노학자의 저술인 줄 알았다. 공교롭게도 올 초에 번역한 찰스 코켈의 생명의 방정식(열린책들, 출간 예정)에 개미의 행동을 수학적으로 분석하는 대목이 있었기에 참고할 만한 정보가 있을까 싶어 책을 펼쳤다.

개미의 수학이라는 책을 쓸 정도면 저자가 에드워드 윌슨, 최재천, 베르나르 베르베르처럼 개미에 대해 모르는 게 없는 개미 박사이겠거니 생각했는데, 머리말에서 뜻밖의 문장을 만났다.

 

우리나라에는 참 많은 종류의 개미들이 사는데요, 길을 걷다 개미를 보고 그게 무슨 종인지 제게 물어보지는 마세요. 저는 일본왕개미, 곰개미, 주름개미, 불개미 말고는 아는 개미가 없습니다. 저는 개미들의 움직임을 연구했지 개미 자체를 연구하지는 않았습니다. 정 궁금하다면 개미를 아주 잘 아는 친구를 소개해줄 수는 있습니다.(6)

 

아는 개미가 네 종류뿐인 개미 박사라니! 그 순간, 오래전에 읽었던 리처드 파인먼의 일화가 떠올랐다.

 

아버지들이 모두 일터로 떠난 뒤, 아이들끼리 들에서 놀고 있는데 한 아이가 내게 묻는 거예요.

저 새 좀 봐, 저게 무슨 새인지 알아?”

나는 모르겠다고 했지요. 그러자 그 애가 말하는 거예요.

저건 갈색목개똥지빠귀라는 거야. 니네 아버지는 아무것도 안 가르쳐 주시는구나!”

그 반대였습니다. 아버지는 제대로 가르쳐 주셨어요.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저 새가 뭔지 아니? 저건 스펜서 짹짹이라는 거야. (나는 아버지가 진짜 이름을 모른다는 걸 알았지요.) 하지만 포르투갈어로는 봄다파이다, 이탈리아어로는 추토 라피티다, 중국어로는 츠옹롱타, 일본어로는 카타노 테케다라고 한단다. , 너는 이제 알고 싶은 모든 언어로 저 새의 이름을 알았어. 그런데 이름을 다 알았다 해도 너는 저 새에 대해 전혀 아는 게 없단다. 다른 곳에 사는 사람들이 저 새를 뭐라고 부르는지만 알게 된 거지.”

그러고는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 이제 저 새를 살펴보자.”(리처드 파인만, 발견하는 즐거움, 승산, 2004, 23)

 

우리가 어떤 대상을 아는 것에는 여러 측면이 있으며 이름은 그중 하나에 불과하다. 개미를 수학적으로 기술하려는 이 사람에게 개미는 2차원 좌표상에서 상호작용하면서 움직이는 점이다. 상호작용을 하려면 신호를 입출력하고 정보를 처리하는 기능도 있어야겠군. 그렇다면 이 연구 결과는 개미 수준으로 간주될 수 있는 사람들번화가의 인파?의 행동에도 적용할 수 있으려나. , 이제 저 개미를 살펴보자.

그런데 저자가 궁금해하는 것은 뜻밖에도 페르마의 원리다. ‘빛은 이동 시간이 최소가 되는 경로로 이동한다라는 법칙. 우리가 이용하는 내비게이션은 최단 거리 경로와 최단 시간 경로 중에서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지만 빛의 관심사는 오로지 시간이다. 빛은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옛말을 모르는 걸까? 급해서 돌아가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저자는 매질을 통과하는 빛의 입사각과 굴절각을 표현한 스넬의 법칙이 개미에게도 적용되는지 알고 싶어 했다. 어쨌거나 최단 시간에 이동하는 개미 떼는 더 효율적으로 먹이를 개미집으로 운반할 테고 다른 개미 떼에 비해 우위를 차지할 테니까. 물론 개미가 페르마 원리를 깨우친 것은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 때문일 수도 있고 물리 법칙 때문일 수도 있다. 이 문제는 번역을 끝냈지만 출간되지 못한 비운의 책 에이드리언 베잔의 생명의 물리학(동아시아, 출간 미정)에서 자세히 다룬다. 저자의 글을 읽으니 나도 궁금해졌다. 개미는 과연 페르마의 원리에 따라 스넬의 법칙대로 행동할까? 그런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정말로 궁금한 것은 이유였는데, 하지만 (스포일러가 될지도 모르겠지만) 이 책에서는 가 아니라 어떻게만 알려준다. 어떻게조차 메커니즘이 아니라 방법론과 시행착오에 대한 것이다. 사실 저자는 개미 연구에 평생을 바친 노학자가 아니라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대학원생이다. 90년생이니까 이제 갓 서른이 된 초보 연구자다. 게다가 이 책의 주제인 개미 연구를 한 것은 학부 시절이다(나는 학부 때 뭘 했더라?). 그러니까 이 책은 학부생의 좌충우돌 연구 노트인 셈이다(연구의 결과는 개미들이 렌즈 모양 장애물에서 광학 원리와 유사하게 나타내는 수렴 또는 분기의 궤적Trails of ants converge or diverge through lens-shaped impediments, resembling principles of optics이라는 제목으로 사이언티픽 리포츠Scientific Reports라는 SCI급 학술지에 실렸다).

학부생이 공부가 아니라 연구를 한다는 게 신기했는데, 알고 보니 저자는 자유전공학부라는 곳을 졸업했다. 한 가지 전공 분야에 얽매이지 않고 여러 분야를 자유롭게 섭렵하며 원하는 주제를 연구하는 곳이었기에 저런 학제간 연구를 할 수 있었으리라. 내가 석사과정을 수료한 인지과학 협동과정에서도 이런 학제간 연구를 한다. 하지만 나는 언어학, 철학, 심리학, 전산학, 신경과학을 골고루 공부했어도 연구 성과를 전혀 내놓지 못했는데그때 여러 분야를 기웃거린 덕에 번역에 적잖은 도움을 받고 있으니 그걸로 만족해야겠지20년이 지난 지금은 학제간 연구가 정착되어 결실을 거두고 있나보다.

빛과 개미가 같은 법칙을 따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개미는 페로몬이라는 화학물질을 분비하여 의사소통을 한다. 개미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길에는 페로몬이 더 진하게 남아 있어서 더 많은 개미들을 끌어들인다. 이렇게 상호작용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최단 시간 경로를 찾아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빛은 어떤 메커니즘으로 최단 시간 경로를 찾아내는 걸까? 빛에도 일종의 페로몬이 있어서 광자들끼리 상호작용하는 걸까? 아니면 개미의 페로몬 소통법은 일종의 수렴진화일까?

여러분 중 누군가가 혹시 나처럼 이 물음의 답을 찾고 싶어서 책을 읽게 되는 불상사(?)를 예방하기 위해 저자가 밝히는 빛과 개미의 차이점을 인용해둔다.

 

물론 개미의 행동과 빛의 행동이 비슷하게 보이지만 실제로 빛과 개미가 시간을 최소화하는 방법은 상당히 다릅니다. 저는 여기서 개미들이 만든 최종적인 경로만을 가지고 유사성이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빛은 작용 최소의 법칙을 통해, 개미들은 페로몬과 기억 및 여러 길찾기 방법을 통해 경로를 찾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시스템 사이에 결과적 유사성이 있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점입니다.(44)

 

하지만 과학적 엄밀함보다 SF적 상상력의 편에 서고 싶은 나는 언젠가 빛의 페로몬이 발견되리라는 쪽에 내기를 걸고 싶다. (멀리 떨어진 두 양자가 서로 반응하는) 양자얽힘이라는 이상한 현상도 일어나는 마당에 광자들이 개미처럼 소통하지 말라는 법이 있겠는가?


 

 

 
 
이전글
[정한아의 천천히 읽는 기쁨] I am not a man, I am not a man
다음글
[원미선의 인생을 쓰다] @septuor1 2018년 5월 5일 오전 2:05
0 / 100
  •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