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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재현의 트랜스크리틱] 반가운 인사말인 줄 알았는데 눈물겨운 다짐의 말이었네관리자2021-07-26

    반가운 인사말인 줄 알았는데
    눈물겨운 다짐의 말이었네
    글_권재현(저술가·前 언론인)



    「당신이 잘 있으면, 나도 잘 있습니다」, 정은령, 마음산책, 2021

     

    벌써 10권도 넘을 책을 냈어야 할 사람이 이제야 첫 책을 냈다니.”

    신문사 선배였던 정은령 작가가 첫 책을 내게 됐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제 반응이었습니다. 문학과 출판을 담당했던 선배의 칼럼은 단아하고 섬세한 글쓰기로 정평이 나 있었습니다.

     

    선 굵은 글쓰기가 신문 칼럼의 전범처럼 여겨지던 시절이었습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상대를 베느냐 내가 베이느냐는 건곤일척의 칼싸움 한 판에서 상대를 거침없이 베는 비정한 칼솜씨를 발휘하는 검객이 명칼럼니스트로 불리던 때였습니다.

     

    선배의 칼럼은 달랐습니다. 칼날이 상대가 아니라 자신을 향한 때가 더 많았습니다. 상대가 아니라 자신의 무지와 편견, 혐오를 베어내기 위해 필사의 발버둥을 치는 역날의 검법이었습니다. 사건과 사고가 발생하면 그 책임자를 향해 돌진하는 글이 아니라 그 거친 소용돌이 속에 잊히고 묻힌 사람들에 대한 죄의식과 고해성사가 담긴 글이었습니다.

     

    그렇다고 그 칼럼이 메마른 영혼을 적셔주는 감성으로 무장한 여류(女流)의 글은 아니었습니다. 선배가 들으면 기겁하겠지만 지독히 남성 중심적이었던 신문사마다 여성 칼럼니스트에게 암묵적으로 요구하는 글이 있었습니다. 일상과 문화를 소재로 사람 사는 냄새 담뿍 담긴, 그래서 읽고 나면 감동이 있고 치유의 느낌도 주는.

     

    선배의 칼럼은 거기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항상 칼날이 숨겨져 있었기에 글을 읽는 내내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습니다. 다만 그 칼이 끝내 필자 자신을 베어낼지도 모르겠다는 아슬아슬함으로 가슴을 조이게 했습니다.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라는 독립영화 제목을 빌려 표변하자면 선배의 칼럼은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슬픔으로 내 몹쓸 욕망을 베어내고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마조마한 마음이 들 때도 많았지만 그런 긴장감이 좋았습니다. 기자라는 이유로 누리는 혜택과 그로 인해 짓는 업보를 잊지 않고 살게 해 줬기 때문입니다. 제 마음속 최고의 칼럼리스트였습니다. 하지만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고 했던가요. 그는 결국 공부를 핑계로 사표를 내고 19년 몸담았던 신문사를 떠났습니다. 공부는 핑계였을 뿐 밥벌이의 부끄러움을 견딜 수 없어서였습니다. 그 곡진한 사연은 생략하겠습니다.

     

    그렇게 불혹을 훌쩍 넘긴 나이에 미국에 가서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왔습니다. “배운 게 도둑질 뿐이어서인지 하필이면 지긋지긋할 법한 저널리즘을 전공한 탓에 늦은 나이에 시간강사를 하면서 틈틈이 칼럼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연락하자 내가 그럴 자격이 되는지 부끄러울 뿐이란 답이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몇 년에 걸쳐 쓴 칼럼과 미국 유학시절부터 틈틈이 써뒀던 글들을 모아 지천명을 훌쩍 넘긴 나이에 에세이집을 펴냈습니다.

     

    전염병으로 힘들 세월을 보낸 많은 사람들에게 안부와 위로의 글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반갑고 고마운 마음에 서문이나 읽자고 책을 펼쳤다가 앉은 자리에서 1장에 등장하는 아홉 편 글을 주르륵 다 읽었습니다. 거기엔 좀처럼 내색하지 않던 인간 정은령의 내밀한 이야기가 쏟아졌습니다. 그가 어린 시절 시장통에서 자기 또래의 소녀가 두 손으로 들고 가던 누런 종이봉투가 터져서 쏟아지던 새하얀 쌀처럼.

     

    자신과 달리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듯했지만 허망하게 앞서 간 세 살 아래 남동생에 대한 관찰. ‘사람이 좋아서 사업을 하는 사람은 사람에 베이기 마련인데 동생은 베이고도 베인 줄을 몰랐다.’ 젊은 날 망명 아닌 망명을 떠나 외과의사로 성공했음에도 한 번도 고향을 찾지 않아 야멸친 외골수라 여겼던 미국 큰외삼촌의 인간적 진면목의 발견을 응축한 한마디. ‘‘전도유망같은 단어는 하찮게 여기는 분이었으니.’ 학생들로부터 상종 못할 인간이라 낙인찍힐 정도로 괴팍한 박사학위 지도교수가 10년간의 남미특파원 때 얻은 트라우마와 난독증과 싸워가며 한번 정을 준 사람에겐 최선을 다하는 츤데레임을 알았을 때의 반전. ‘그의 눈물은, 약한 것들에 대한 공감에서 나오는 인간의 한 지극한 표현이라는 것을 나는 마음으로 읽었다. 아무리 그의 말이 서투르다 할지라도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이 섬세한 영혼의 소유자가 수호지에 나오는 양산박의 108 두령처럼 잔뜩 부풀어 오른 자신들의 에고(ego)를 주체 못해 밤마다 술 마시며 치고받고 싸우는 기자놈들 사이에서 얼마나 힘들었을지. 그 징글징글한 사내놈들의 뻔 한 머릿속과 속내를 다 꿰뚫어보면서도 짐짓 모르는 척 속아주는 척 사람 좋은 미소를 머금고 후배들 도닥이며 좋은 신문 만들자고 그렇게 열심히 살았구나.

     

    그는 자신이 흠모한 소설가 박완서를 자신이 겪은 비극의 시대를 증언해야 한다는 소명의식에 투철한 작가로 기억합니다. 정은령 글쓰기의 본령도 크게 다르지 않을 듯합니다. 다만 입 밖으로 나오는 말들은 삶이 곡진할수록 그 깊은 사연을 옮기기에 어눌하며 글은 곧잘 더 말하거나 덜 말함으로써 있는 그대로를 전하는데 실패한다는 생각에 주저하고 머뭇거릴 때가 많을 뿐입니다. 심지어 글쓰기의 굴곡에서 도망치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다시 책상 앞으로 돌아와 힘겹게 글을 쓰는 이유가 뭘까요?

     

    봉지쌀을 먹어야 할 만큼 가난했기에 그것이 터져버렸을 때 어쩔 줄 몰라 울음을 터뜨리는 소녀를 기억하기 위함입니다. 화력발전소 비정규 노동자로 일하다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숨진 청년의 절규를 잊지 않기 위함입니다. 장시간 노동과 스트레스로 과로사한 집배원들의 땀과 아픔을 기록하기 위함입니다. 공중화장실에서 무참히 살해당한 여성과 다른 여성의 처지가 결코 다르지 않음을 증언하기 위함입니다. 본국에서의 삶이 송두리째 지워진 채 한국말이 서툰 노동자로만 살아가야 하는 난민 또는 이민자를 외면하지 않기 위함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그에겐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할 운명의 십자가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외받고 힘겨운 이웃을 외면해선 안 된다는 사랑의 의무와 자신이 믿는 바대로 살아가고픈 자유의 열망이 이율배반적으로 얽힌 십자가입니다. 그는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단칼에 잘라낸 알렉산더 대왕은 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차라리 끊임없이 굴러 떨어지는 바위를 밀어 올려야 하는 시시포스의 삶을 선택할지언정. 그래서 평생 짊어져야 할 십자가라 표현한 것입니다.

     

    그렇게 책을 덮고 나서야 라틴어 인사말 시 발레스 베네, 발레오(Si vales bene, valeo)’를 번역한 책 제목의 의미가 뚜렷하게 다가섰습니다. 그가 안부 인사를 보내는 당신은 결코 저 같은 지인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어디선가 서럽고 힘들어 남몰래 눈물 흘리고 있는 힘없고 약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 제목은 어디선가 힘겨워하는 당신이 있는 한 저도 잘 지낼 수 없습니다로 새겨야 합니다. 참으로 눈물겨운 인사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그런 당신이 조금 더 자유로워져도 괜찮다는 답장으로 이 글을 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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