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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명우의 책읽기] EP #06 FAME! I am gonna live forever! 죽음의 세계에 가본 적 있는가? 하데스에서 들은 말관리자2021-07-26


     

    EP #06 FAME! I am gonna live forever!
    죽음의 세계에 가본 적 있는가? 하데스에서 들은 말

    글_노명우(사회학자)

     
     
     

    「오뒷세이아」, 호메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 숲, 2015 / 
    「죽음을 주머니에 넣고」, 찰스 부카우스키 지음, 설준규 옮김, 로버트 크럼 그림, 모멘토, 2015

     

     

    기원전 776년 올림피아에서 근대 올림픽의 기원이 된 운동경기가 처음 열렸다. 올림피아에서 열린 운동경기는 포세이돈으로부터 날개달린 마차를 선물 받은 전설적인 인물이자 전차경주의 영웅이기도 했던 펠롭스가 전차경주에서 승리하고 오이노마오스 왕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조직한 장례 경기가 그 유래라 한다.

     

    사위로부터 살해당할 것이라는 예언을 들은 오이노마오스는 딸의 결혼을 바라지 않는다. 딸의 결혼은 곧 자신을 살해할 사위가 정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이노마오스는 구혼자를 죽음으로 물리치기 위해 구혼자에게 전차 경기를 제안하고, 전차 경기에서 승리하면 구혼자의 목을 쳐 궁전기둥에 매달았다. 펠롭스는 오이노마스의 전차 바퀴에 일부러 고장을 내게 하는 술책으로 전차 경기에서 승리했다. 오이노마오스 왕은 패배했고 죽었다. 올림피아에는 삶과 죽음이 교차한다.

     

    장례식에서 살아 있는 자는 죽음 앞에서 삶을 주장한다. 탁월한 신체적 능력 과시는 삶을 주장하는 방법 중 하나다. 죽음이란 인간이 신체적 능력을 완전히 상실하는 것에 다름 아니니, 죽음 앞에서 튼튼한 육체 탄력 있는 육체 뼈와 뼈를 잇는 근육이 발달한 육체를 드러내는 것은 그 자체로 삶에 대한 주장이다.

     

    올림피아에는 제우스 제단 건너편에 펠롭스의 무덤이 있었다. 제우스 제단과 펠롭스의 무덤을 마주보게 한 배치는 흥미롭다. 제우스는 낮이요 펠롭스의 무덤은 밤이다. 제우스는 삶이요 펠롭스는 죽음이다. 경기가 시작되기 전날 밤 경기에 참가한 선수들은 펠롭스의 무덤에서 제사를 지낸다. 경기장 서쪽 끝에 있는 펠롭스의 무덤은 땅속 깊이 아래로 내려가는 캄캄한 구덩이였다. 펠롭스의 무덤은 선수들이 경기 전날 숫양을 희생으로 바치고 남은 재로 가득 차 있다. 밤이 지나고 아침이 오면 선수들은 건너편 제우스 제단으로 달려가 태양 속으로 뛰어든다. 그리고 운동경기에서 우승하면 우승자는 고향으로 돌아가 전설적인 명성을 얻었다.


    - 아리스테이아 찬양, 삶과 기꺼이 바꾸는 명예(클레오스/kleos)의 세계

     

    호메로스는 <일리아스><오뒷세이아>를 통해 전쟁의 흥분을 찬양한다. 불사의 존재인 신과 달리 필멸의 존재 인간은 언젠가는 죽음을 피할 수 없으나, 인간은 자신을 죽음 이후에도 기억하게 함으로써 불사의 존재가 되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호메로스가 기록한 트로이 전쟁 이야기에는 경쟁에서 승리한 사람에게 돌아가는 명예(클레오스kleos)가 자신을 영원히 살게 하리라고 믿는 전사들의 비장함이 배어있다. <일리아스><오뒷세이아>는 영웅이 되고 싶어 하는 남자들이 사로 잡혀 있는 전쟁으로 인한 흥분, 동지애의 기쁨이라는 뜻을 지닌 아리스테이아(aristeia)에 대한 기록이나 마찬가지다.

     

    죽음을 불사했기에 혹은 죽음으로써 불사의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역설이 트로이 전쟁터를 휘감는다. 영웅은 죽음을 불사하는 용맹함을 증명함으로써 인간이되 인간이 아닌, 반신반인으로 숭배를 받았다. 만약 자신의 명예로운 행위가 서사시로 기록되면 소멸할 수밖에 없는 인간은 명예를 통해 불멸의 존재가 될 수 있다. 그래서 그들에게 명성은 생명보다 소중하다. 희랍 연합군 총사령관 아가멤논도, 장군 아킬레우스도, 아킬레우스의 절친 파트로클로스도, 파트로클로스를 죽이는 헥토르도, 이 전쟁을 끝내고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는 오딧세우스는 이런 점에서 모두 동일하다.

     

    영웅이 되기 위해서는 죽어야 한다. 죽어야 불멸의 명예를 얻을 수 있고 불멸의 명예를 얻어야 필사의 인간이 반신반인이 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를 얻는다는 역설 때문인지, <일리아스>의 사실상 주제는 죽음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트로이 전쟁에 참가한 사람은 오뒷세우스를 제외하고 모두 죽는다. 등장인물은 모두 불가피한 소멸을 향해 움직여 간다. 파트로클로스가 죽고, 헥토르가 죽고, 아킬레우스도 죽고, 아름다운 도시 트로이도 죽는다. 호메로스가 묘사하는 죽음은 범인의 죽음과 다르다. 이들의 죽음은 장엄하다. 전쟁에서 죽은 영웅은 치사하게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 무릎 꿇는 비겁한 존재가 아니다. 고양된 아리스테이아의 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영웅은 그 순간 죽음을 원망하지 않고 삶을 경멸한다. 영웅적 죽음은 평범한 죽음과 비교할 때 달라도 뭔가 다르다.

     

    - <일리아스>에 대한 반정립으로서의 <오뒷세이아>의 하데스 이야기

     

    살아 있는 사람들은 죽음을 경험하지 못했다. 그러니 우리는 죽음에 대해 알지 못한다. 희랍의 영웅들을 우리 살아 있는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다면 죽음의 저편으로 건너간 영웅들은 반인반신이 되어 불멸의 경지에 올라 있을까? <일리아스>에서 그렇게 길고 길게 이야기된 죽음을 불사한 영웅은 죽음을 맞이하고 나서 그들이 아리스테이아(aristeia)의 경지에서 기대했던 명성에 의한 구원을 여전히 믿고 있을까?

     

    키르케의 안내에 따라 이타가로 돌아가기 전에 반드시 죽은 자들의 땅 하데스를 지나야 하는 오뒷세우스는 아직 죽지 않았지만 죽음을 직접 겪은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예외적인 경험을 한다. 하데스에서 만난 오뒷세우스의 어머니는 죽음은 인간의 운명이라고 아들에게 일러준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 죽게 되면 당하는 운명이란다. 일단 목숨이 흰 뼈를 떠나면 근육은 더는 살과 뼈를 결합하지 못하고 활활 타오르는 불의 강력한 힘이 그것을 모두 없애버리지만 혼백은 꿈처럼 날아가 배회하게 된단다”(<오뒷세이아>, 11: 218-222).

     

    영웅의 죽음은 예외일까? 트로이 전쟁에 참가했던 아가멤논은 귀향하면 자식들과 하인들이 반겨줄 줄”(<오뒷세이아, 11: 431) 알았으나 아이기스토스가 아내와 공모하여 그를 죽였다고 하소연한다. 오뒷세우스는 전쟁 영웅 아킬레우스의 죽음 이후에서 희망을 찾고자 죽은 아킬레우스를 만났을 때 당신은 산 자들 사이에서 영웅이 되었으니 슬퍼하지 말라고 한다. “아킬레우스여, 예전에도 그대만큼 행복한 사람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오. 그대가 살아 있는 동안 우리 아르고스인들은 그대를 신처럼 추앙했고, 지금은 그대가 여기 사자들 사이에서 강력한 통치자이기 때문이오. 그러니 아킬레우스여, 그대는 죽었다고 해서 슬퍼하지 마시오”(<오뒷세이아>, 11: 483-486). 그러나 아킬레우스의 대답은 살아 있는 오뒷세우스가 믿고 있는 영웅의 죽음과 너무 다르다. 아킬레우스는 오뒷세우스의 헛된 희망을 배반한다. “죽음에 대해 내게 그럴싸하게 말하지 마시오. 영광스러운 오뒷세우스여! 세상을 떠난 모든 사자들을 다스리느니 나는 차라리 지상에서 머슴이 되어 농토도 없고 재산도 많지 않은 가난뱅이 밑에서 품이라고 팔고 싶소이다”(<오뒷세이아>, 11: 488-491)

     

    자신의 묘비에 애쓰지 마라(Don’t Try)”라는 글귀를 새겨 넣은 시인 부코스키, 삶을 연민도 감상도 없이 사실 그대로 직시하는 시인 부코스키는 죽어 보지도 않았는데 죽어본 아킬레우스의 직언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말년의 일기에서 그는 이렇게 썼다. “언젠가 사람들이 말하겠지, 부코스키가 죽었어. 그러고는 내 진면목이 드러나고, 난 지겹게 환히 빛나는 가로등 기둥에 내걸리겠지. 그래서 뭐? 영원불멸이란 산 자들의 멍청한 발명품이다”(부코스키, <죽음을 주머니에 넣고>, 12) 그는 불멸의 명예가 필사의 존재 인간을 불멸로 데려갈 수 있다는 <일리아스> 영웅들의 무용담을 믿지 않는다.

     

    트로이 전쟁에서 경쟁하듯 아리스테이아의 비장미를 선보이는 자칭 타칭 영웅들에게 부코스키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우리 모두는 전부 죽게 돼 있는데 이 무슨 요란법석인가! 모두 죽게 돼 있단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린 서로 사랑해야 하건만 그러지 않는다. 우린 하찮은 것들에 겁먹어 기가 꺽이고, 아무것도 아닌 것에 잡아 먹힌다”(부코스키, <죽음을 주머니에 넣고>, 13). 천하의 아킬레우스도 죽으면 끝이다. 아무래도 하데스의 아킬레우스는 다시 삶의 세계로 왔던 것 같다. 하지만 이번엔 술주정뱅이 시인, 경마 중독증 시인 부코스키의 모습으로. 전쟁영웅 아킬레우스는 부코스키의 목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죽음으로 명성을 얻고, 그 명성으로 영생을 얻겠다는 과시 행동을 일삼는 수컷들의 동성사회성 세상에서 나와 현재 살아 있는 자신의 지금’ ‘여기를 돌아보라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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