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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지원의 글줄 사이로 路] 광대한 국토에서 세밀한 펜끝까지, 다층적인 스케일 변환관리자2021-07-26

     

    광대한 국토에서 세밀한 펜끝까지, 다층적인 스케일 변환

    글_유지원(그래픽 디자이너)


     


    「비행산수」, 안충기 지음, 동아시아, 2021

     

    책의 생각 사이로[路]
    [몸과 스케일]

    안충기의 『비행산수』(동아시아)는 여러모로 ‘몸’의 책이다. 몸은 여러 단계의 스케일을 복합적으로 오간다. 도시라는 거대 스케일, 일반 단행본의 네 배 면적에 이르는 250 × 350mm 종이의 스케일, 그리고 세밀한 펜끝. 몸이 이 세 단계를 이으며 확장되었다가 움츠러들었다가 한다.

     

    [1. 국토 스케일에서 거리를 두고 구조를 조망하는 몸]

    한반도의 32개 도시가 책 전체에 국토로 모여있다. 도시를 바라볼 때 이 책의 저자이자 화가는 스스로의 눈높이를 낮게 나는 비행기 정도 위치에 둔다. 신체의 한계를 이탈하지만 너무 높은 고도까지 가지는 않는다. 도시 전체가 조망되는 동시에 구조의 디테일도 보이는 축척이다. 이런 축척 감각으로 파악한 구조적인 공간 인식이 그림 뿐 아니라 글의 성격도 형성한다.

    그래서 같은 국토 답사라도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사답사기』가 서사적이라면 안충기의 『비행산수』는 구조적이다. 이렇게 먼 거리에서 조금 작아진 축척으로 파악하면 그 안에 들어서는 시간적(역사)이고 공간적(지리)인 구조의 범위가 넓어진다.

     

    뭍사람과 뱃사람들의 차이에 대해 설명한 예를 보자. 거리를 둔 시야에서만 조망되는 국토 네트워크 및 땅과 물의 차이가 선명하게 떠오른다. 뭍사람과 뱃사람들은 거리 감각이 달라서, 뱃사람들은 먼 거리도 거침없이 가깝게 여긴다. 목포 사람들은 6·25전까지 연평도와 백령도도 무시로 앞마당처럼 드나들었다고 한다.

    이런 활동권과 문화적인 생활권 차이를 이해해야, 왜 거문도, 초도, 손죽도가 물리적인 거리는 고흥에 훨씬 가까우면서도 여수에 속하는지 납득할 수 있게 된다. 고흥 사람들은 농사를 중시하는 데 반해, 여수 사람들은 바다에 기대어 살아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바다라서, 섬들은 여수와 이어지는 것이다. 바다 위에서의 움직임은 거리 관념을 재편한다. 멀리 떨어진 시점에서 넓게 조망하고, 거기에 현지에서 체득한 몸의 감각이 보태어져야 습득할 수 있는 구조적인 통찰의 한 예다.

     

    도시는 무등산 자락을 돌아 남북으로 파문을 그리며 팽창해나간다.” 광주를 표현한 문장이다. 이런 문장들 역시 낮은 비행기 고도의 시선에서 포획되고 분출된다.

     

    산은 강을 낳고, 강은 들을 낳고, 들은 마을을 낳았다. 마을과 마을이 이어져 도시가 되고, 도시는 세월이 쌓이며 역사를 만들었다. 2,000살이 넘은 도시도 있으니 이 땅의 내력은 길고 깊다.”

     

    1장의 ‘바다’를 지나, 2장의 ‘산·강·들’로 들어서며 도시가 발생하는 공간은 2천년의 역사를 넘어 지질학적인 시간을 중첩해간다. 3장의 ‘서울’에서는 덮여서 잊혀지고 있는 물길의 흐름을 찾는다. 공간과 시간을 살피는 이런 거시적인 관점은 우리 국토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마지막 4장에서는 ‘대륙’을 향해 북한으로 간다.

    북쪽으로는 대륙을 향한다면 남쪽으로는 바다를 향해 세계로 나아간다. “세계지도를 위아래로 뒤집어 보면 대한민국은 해양 국가다. 대륙의 끄트머리가 아니라 대양으로 뻗어나가는 출발점이다. […] 부산은 일본으로 가는 건널목이고 목포는 중국과 태평양으로 나가는 대문이다.” 갖고있던 세계지도를 꺼내서 돌려 보니 정말 그렇다. 목포의 위상이 지금까지 알던 바와 전혀 다르게 보인다. 웅장한 공간 인식이었다.

     

    [2. 현장에 뛰어드는 생생한 몸]

    이제 몸은 개별 도시로 뛰어든다. 도시마다 지도 그림과 나란히, 기자인 본인의 몸으로 현장을 취재한 글들이 있다. 이때 이 지역에 익숙한 현지인의 몸이 함께 한다. 후각과 미각의 현장성이 생생하고 자욱해진다. 시각 및 청각과 달리 후각 및 미각은 맛과 향을 일으키는 분자가 우리 몸에 직접 섞여 들어오는 더 육감적인 감각이다. 첫 도시는 부산. ‘부산’이라는 이름에 훅 끼쳐드는 내음이 글에서 맡아진다.

     

    다시,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사답사기』가 인문적이라면 안충기의 『비행산수』는 풍속지적이다. 현지에서 만난 주민들이 입담이 펄떡인다. 동해 북평장의 상인은 이렇게 말한다. “요놈 피부가 희고 불그스레하니 예쁘지요. 아줌마 곰치예요. 아저씨 곰치는 놀러 가고 여기 없어요.”

     

    땅은 이렇게 바다와 강과 산과 들에 어우러져 사는 사람들의 내음과 사연으로 완성된다. 창백한 문장 속의 사유가 아니라, 그 지역에 몸을 부대껴야 진하게 우러나는 삶의 내음을 풍긴다.

     

    [3. 세필로 큰 종이에 국토를 이으며 고된 노동을 하는 몸]

    국토는 종이 위에 세필로 그려진다. 이 여러 단계의 스케일을 이어내는 일을 몸이 한다. 고된 노동이다. 세밀함과 광활함을 잇는 스케일의 다이내믹은 3장을 여는 서울 〈강북전도〉에서 절정에 이른다.

     

    책의 몸 사이로[路]
     

    사진 1. 『비행산수』 3장 ‘서울 서울 서울’의 첫 그림인 〈강북전도〉를 펼친 모습.
     

    이 책은 크다. A3보다는 작은 250 × 350mm로, 앞서 언급했듯이 일반 단행본 면적의 네 배에 이른다. 서울의 〈강북전도〉는 사진에서처럼 네 폭으로 접힌 종이를 넣어서 양 펼침면에 걸쳐 다섯 폭에 담기게 했다. 책의 크기가 커진다는 것은 단순히 몸집만 부풀려지는 일이 아니다. 큰 판형은 힘과 섬세함을 모두 필요로 하기에 공이 많이 든다. 일반적인 크기와 달라지면 종이의 넘김성을 고려한 두께도 다시 책정해야 하고, 적정한 폰트 사이즈도 위계별로 크게 달라지며, 제작도 까다로워진다. 서점과 독자의 책장에서도 평소의 기준에 맞추어 다른 책들과 어울리게 두기 어려워진다. 판권을 보니 초판 1쇄를 찍은날은 4월 9일, 펴낸날은 4월 26일이다. 제작에 무려 17일이나 걸렸으니 보통 책의 2-3배에 달하는 기간이다.

     

    신문 지면의 스케일을 단행본의 스케일로 변환하는 측면에 있어서도 몇가지 눈 여겨 볼 요인들이 있다. 신문 연재를 모아서 책으로 내는 단행본들은 많은데, 이때 일반적으로 판형이 훌쩍 작아지면서 사진이 중요한 글의 경우 장쾌한 맛은 덜해진다. 반면, 글의 집중력이 높아진다.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 작은 글자로 큰 지면을 채우는 신문에 비해, 한 면에 소화하기 쉬운 분량의 정보가 더 큰 활자에 담겨 가독성이 높아진다. 둘째, 같은 저자의 글이 계속 이어지기에 주제의 집중도도 높아진다.

    안충기 기자의 그림과 글들은 정보 밀도가 대단히 높다. 신문에서 봤을 때는 다른 여러 정보들 사이에서 무척 빽빽해서 전후 여백을 더 확보해야 잘 감상할 수 있겠다는 인상을 받곤 했다. 『비행산수』는 여느 신문들보다는 작은 중앙일보 판형으로부터 대형 단행본으로, 사이즈 자체가 크게 변환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한 내용만 일관된 응집력을 갖춰서 다루는 책의 공간적 가능성 속에서, 그 넉넉한 크기는 이 콘텐츠에 본래 필요했으나 신문 지면에서는 확보하기 어려웠던 여백으로 적절하게 할당되었다. 신문과 단행본은 지면의 물리적인 성격과 매체의 맥락적인 성격이 달라진다. 이런 공간 변용의 방식에 편집인과 디자이너가 보통의 경우보다 더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했을 독특한 한 예라고 꼽을 수 있겠다.

     

    사진 2. 책의 주름진 표지
     

    표지의 주름진 종이는 국토의 주름진 성격을 질감으로 잘 받아낸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면 산은 땅이 융기한 주름으로 보인다. 그 산줄기에서 물줄기가 뻗어 바다로 간다. 산길과 물길은 같은 결로 흐른다. 서울을 그릴 때 이제는 사라진 물길을 이으려던 저자의 노력도 여기에 협응한다. 책에서 ‘구조’는 이렇게 ‘흐름’과 함께 간다. 저자는 “도시도 생물이다”라고 했다. 구조와 흐름을 가진 유기체이니, 과연 생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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