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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창남의 행간 속 사회] 불가항력의 도시관리자2021-07-26

    불가항력의 도시

    글_이창남(경북대 교수)

     

    「시골과 도시」, 레이먼드 윌리엄스 지음, 이현석 옮김, 나남, 2013
     

    영국의 시골과 도시를 다루는 이 책의 주제는 얼핏 진부해보이기도 한다. 국내에는 2013년에 번역되었지만, 영국에서는 70년대에 출간되었으니, 문제의식의 측면에서 일정한 시차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키워드>를 비롯하여 <기나긴 혁명>, <현대 비극론>, <마르크스주의와 문학> 등 여러 탁월한 문화사회학적 저술로 국내외 문화연구자들에게 잘 알려진 레이먼드 윌리엄스의 저작이 아니라면, 제목만으로는 사실 많은 사람들이 별다른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이 책의 주제는 지난 30여년 간, 아니 그 이상의 오랜 시간동안 현재성을 잃지 않는 상당히 긴급하고도 지속적인 사회문화적 문제들을 포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환경문제, 저개발국가와 선진국 사이의 분업, 노동이주 그리고 근대성과 식민주의의 문제 등과 같이 우리가 당면한 무거운 주제들이 16세기 이래 영국의 시골과 도시의 발전적인 전개 양상들을 통해서 서서히 면면을 드러난다. 영국의 시골과 도시의 형성은 근대성의 확장을 거쳐 국민국가를 넘어 전지구적 저개발국가(시골)과 선진국(도시)으로 재편되었으니, 그 과정은 세계사의 주요 국면을 형성하고 있다. 이를 살피고 있는 저자의 주제의식뿐만 아니고, 예상을 뒤집곤 하는 그의 비평적 관점은 600페이지가 넘는 이 책을 지루하지 않게 넘기게 만드는 동력이 되고 있다.

    그는 흔히 그렇듯이, 현재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사회적 고정관념들을 제거하면 비평적 문제를 새로운 방식으로 명확하게 볼 수 있게 된다고 말한다. 시골에서 도시로 옮겨온 저자 자신의 인생역정도 시골과 도시에 대한 통념과 실제를 가릴 수 있는 통찰력의 토대가 되고 있다. 상투적인 시각을 거부하는 이러한 태도는 그가 참고하는 자료들에 대한 비판적 독해를 가능하게 한다.

    레이먼드 윌리엄스가 16세기 이래 영국의 시골과 도시의 발전 경로를 살피면서 주로 검토하는 것은 조지 엘리엇에서 하디, 디킨즈, 오웰, 헉슬리, 로렌스, 조이스에 이르는 영국문학이다. 여기서 문학은 1차적인 사회학적 데이터가 아니라, 사회를 보는 방식(way of seeing)을 다채롭게 드러내는 사례들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문학만큼 사회적인 영역도 많지 않을 것이다. 그는 16세기 이래로 문학에서 전개되어온 목가적인 시골 찬양에 대해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농촌이 근대성의 전개와 더불어 나타난 도시의 대안적 모델이 아니라는 사실을 여실히 폭로한다. 그에 따르면 자본주의적인 지배의 구조는 도시에 국한 된 것이 아니며, 농촌과 도시는 서로 다른 이질적인 경로 속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동일한 자본주의 발전의 과정 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통념을 거부하는 이러한 비판적인 시각은 도시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고 있다. 19세기부터 대도시는 시골과 지역의 비균질적인 사람들이 모이면서 엄청난 규모의 비합리적 힘이 폭발적으로 결집시켰다. 디킨스를 비롯한 많은 작가들의 도시 소설들은 바로 이러한 대도시의 모호하고도 예외적인 집단들의 느낌과 경험을 육화하고 있다. 산업화의 과정에 낯선 사람들이 집중적으로 모여든 도시라는 공간이 생소하고도 특징적으로 작가들에게 감지되었던 것은 우연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 가운데 도시에 대한 인식을 점점 더 심화해가는 사례들을 단계적으로 구분하고 정리하는 작업은 상당히 지난한 일일 것이다.

    레이몬드 윌리엄스는 바로 이러한 작업을 수행하면서 도시 소설들 속에 육화된 미래 도시의 가능성을 부각시키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미래도시의 전망가운데 그가 두 개의 서로 다른 버전, 즉 헉슬리의 <훌륭한 신세계>와 오웰의 <1984>를 제시하고 있듯이, 도시의 미래가 유토피아일지 디스토피아일지 단정할 수 없는 딜레마를 드러낸다. 이러한 딜레마는 시골과 도시가 전지구적으로 재편된 제 3세계 도시들에서도 나타난다. 레이먼드 윌리엄스는 전지구적 분업으로 계절노동자가 된 주인공을 다루는 터키의 야샤르 케말의 소설 <들판에서 부는 바람>을 상기시키기도 하고, 아체베의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와 같은 소설을 통해서 식민지 확장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들을 환기시키기도 한다. 시골과 도시의 문제는 ()식민지와 제국의 문제로, 저개발국가와 선진국의 문제로 확장되어 왔던 것이다.

    따라서 그는 런던이나 뉴욕이나 로스앤젤리스를 염두에 두고 도시의 위기를 말하는 사람은 캘커타나 마닐라, 혹은 아시아와 아프리카와 남미 대륙에 산재한 수많은 다른 도시들의 더욱 심각한 위기 또한 고려해야 마땅하다고 일갈한다. 이처럼 저개발 국가들에서 새롭게 형성되고 팽창하는 도시들의 문제들을 성찰해야한다. 왜냐하면 과거 도시의 문제들이 바로 여기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도시의 과도한 팽창은 다른 한편 시골의 공동화와 노령화로 이어진다. 우리도 필경 마주하고 있는 이러한 문제들을 추동해온 힘은 이른바 근대성의 개발과 발전의 이념들이었다. 향후 미래를 논하면서 그는 도시 이미지에서 가장 어두운 일부 이미지들을 문자그대로 우리의 미래의 모습으로 직시해야한다고 적고 있다. 그리고 환경을 파괴하고 착취와 지배를 강화하는 이런 형식의 생존을 계속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 일목요연하게 드러나고 있다고 적시한다.

    목가적 시골이 대안일 수 없는 상황에서 도시에 대한 이러한 비관적 전망은 어떤 해법을 필요로 하는 것 같다. 책의 말미에 레이몬드 윌리엄스가 제시하는 해법들이 충분한지는 생각해볼 여지가 있을 것 같다. 빛나는 분석만큼 뛰어난 해법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골과 도시라는 오래된 문제는 흡사 19세기 주변부 시골을 공동화시킨 대도시 런던의 불가항력적인 아이러니를 담고 있다는 사실은 여전히 부인하기 어렵다.

     

    사람들은 심지어 런던에 반대하고 런던을 거부하기 위해서도 런던에 왔는데, 그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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