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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마의 변경에서 책 읽기] 기생충으로 사는 법 배우기관리자2021-07-26

     

    기생충으로 사는 법 배우기

    글_조형근(사회학자)
     

     

    「기생충 제국」, 칼 짐머 지음, 이석인 옮김, 궁리, 2004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은 칸영화제와 아카데미영화제를 동시에 휩쓴 명작이다. 관객들 사이에선 누가 기생충인지를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박사장 집에 얹혀 살면서 주인집을 파멸시키는 기택의 가족이 기생충인지, 요리, 청소, 운전, 교육 등 모든 것을 기택 식구에게 의존하며 살아가는 박사장 가족이 기생충인지, 시각에 따라 전혀 다른 결론이 나오니 흥미롭다. 결론은 달라도 전제는 같다. 기생충은 나쁜 존재라는 것이다.

    뉴욕타임스의 과학전문기자이자 세계적인 과학저술가인 칼 짐머의 책 기생충제국을 읽다보면 이 확고한 믿음에 큰 균열이 생긴다. 기생충을 이해하게 되면서 우리 삶의 진실을 이해하게 됐다는 놀라운 깨달음이 온다. 문장은 흡인력이 넘치고 구성은 교묘하다. 책장을 덮을 때 쯤이면 세계 자기 존재에 대한 통찰에 감동을 느끼게 된다. 출중한 책이다.

    기생충이란 무엇인가? 다른 생명체의 겉에 달라붙거나 그 속에 들어가서 양분을 빼앗아 먹고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를 가리킨다. 바이러스나 박테리아도 본성은 기생충이다. 둘을 제외해도 그 수는 어마어마해서 지구상 생물체의 대다수를 차지한다. 독립생활을 하는 생명체의 네 배 쯤 되리라는 추정도 있다. 생명 연구란 곧 기생충 연구라는 말도 된다.

    기생충연구는 오랫동안 생물학의 변방이었다. 기생이라는 현상은 비본질적인 현상, 아니 차라리 퇴화로 여겨졌다. 영국의 동물학자 레이 랭카스터는 기생충을 독립적인 삶을 포기한 퇴화의 결정체로 간주했다. 거기서 영감을 얻은 작가 헨리 드러몬드는 영감의 세계에서 자연 법칙이라는 책에서 기생 현상은 자연의 가장 중대한 범죄 중 하나다. 그것은 진화의 규칙을 파괴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생충은 나태하고 이기적이며 퇴보하는 삶을 살아간다. 기생충 같은 인간 또한 마찬가지다. 다윈의 진화론이 약육강식의 사회진화론으로 오도되고, 인간 사이의 생물학적 우열을 정당화하는 우생학이 번성하던 무렵이었다.

    그 정점에 나치와 히틀러가 있었다. 그들은 유태인이나 다른 퇴화된 인종들을 기생충으로 간주했다. 그들이 숙주인 아리안 인종의 건강을 위협한다고 주장했다. 파시즘은 멸망했지만, 사고방식은 이어졌다. 미국 기생충학자 호레이스 스턴카드도 비슷했다. 1955사이언스에 발표한 자유, 구속 그리고 복지 상태에서 기생충연구로 얻은 통찰을 뉴딜의 복지정책 비판에 활용했다. “자유를 완전히 포기함으로써 기생충은 완전한 복지를 얻는 것이다 ... 그런 복지는 오직 몇몇 운 좋은 사람들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으로,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감언이설로 속이거나 힘으로 내쫓고 자신들의 복리를 차지했다.” 기생충에 대한 증오심은 이렇게 깊이 정치화되어 있다.

    이제 기생충 자체에 대해 이해할 시간이다. 기생충에 대한 생각을 바꾸게 되는 첫 사례는 모기만한 벌이다. 기생벌의 하나인 고치벌은 담배잎을 갉아먹는 연두색의 박각시애벌레를 숙주로 삼는다. 담배잎에 박각시애벌레는 지독한 해충이다. 고치벌은 박각시애벌레의 몸에 알을 찔러 넣는다. 알은 부화하여 유충이 되고, 애벌레의 강력한 면역체계가 공격한다. 어미 고치벌이 알을 찔러 넣으면서 함께 주입한 액체가 알과 유충을 보호한다. 액체 속에 떠다니는 수백만 마리 바이러스가 항체노릇을 한다. 고치벌에 기생하는 이 바이러스는 더욱 기이하다. 고치벌은 염색체들 여기저기에 바이러스의 유전자 파편들이 흩어져 있는 상태로 태어난다. 암컷이 성충으로 성장하는 번데기 시기에 이 바이러스들이 깨어난다. 파편들이 합본되어 진정한 바이러스로 꿰매진다. 수백만의 바이러스가 고치벌의 난소 여기저기에 떠다닌다. 고치벌에게는 해를 끼치지 않고 박각시애벌레를 공격하고 유충을 보호한다. 바이러스가 지켜낸 고치벌의 알에는 다시 새 바이러스를 만들게 될 유전자가 모두 들어 있다. 진화적 관점에서 볼 때 바이러스와 고치벌은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는 한몸이다.

    기생충의 신비는 생명의 탄생까지 올라간다. 지구 탄생의 초기, 진정한 의미의 생명체가 등장했을 때 그 중 일부가 기생충으로 진화한 것으로 여겨진다. 기생충의 침입을 막는 비용이 너무 커지자 몇몇 숙주들은 기생충을 아예 입주 숙박인으로 만들어버린 것 같다. 이렇게 대를 이어가다가 기생충의 일부 유전자는 우연히 숙주의 유전자로 흘러들어가면서 두 개의 생명체가 하나로 합일되기도 했다. 다윈의 생명의 나무에서 생명체는 늘 갈라진다. 이제 생물학자들은 때로 가지가 꼬여서 하나로 합쳐지는 경우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하나가 된 숙주와 기생충이 그런 사례다.

    미토콘드리아라는 이름이 익숙할 것이다. 거의 모든 진핵세포 속에 존재하는 소기관으로서, 그 덕에 식물은 산소를 만들고, 우리는 산소 호흡을 한다. 그 유전자가 리케차 프로아제키라는 미생물과 꼭 닮았다. 학자들은 리케차와 미토콘드리아가 수십 억 년 전 공통 조상인 박테리아에서 갈라졌으리라고 본다. 일부는 리케차가 되었고, 일부는 미토콘드리아가 되어 숙주의 세포 속에 평화롭게 정착하고 합일했다. 미토콘드리아는 우리의 일부가 된 기생충이다. 그 덕에 우리가 있다.

    유전적 관점에서 보면 태아는 절반 쯤 기생충이다. 유전자의 절반이 아버지 것이라 모체의 면역세포가 공격하게 되어 있다. 태아는 기생충과 비슷하게 면역억제 신호물질을 분비해서 모체의 면역계를 피해간다. 이 물질은 영양아세포의 염색체 속에 영원히 끼워져 있는 일종의 바이러스에 의해 만들어진다. 마치 고치벌의 유전자에 있던 바이러스가 숙주의 면역반응을 조절하는 것처럼.

    오늘날 학자들은 숙주와 기생충이 서로를 압박하여 상대방의 진화를 촉진하게 했음을 알게 됐다. 기생충이 숙주를 다양하게 만들었다. 완전한 퇴치는 불가능하다. 어느 정도 쯤에서 숙주는 기생충이 삶의 현실이라는 점을 너그럽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사고의 지평이 넓어진다. 지구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 인간이 바로 기생충이다. 인간이 지구에 하는 작용은 기생충을 꼭 닮았다. 그렇다면 질병과 기아는 지구의 면역체계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제 저자의 마지막 말을 옮기며, 통찰을 얻자. “우리가 기생충 같은 존재라는 것은 부끄러운 게 아니다. 다만 아직 기생충 식으로 사는 데 어울리지 않는 점들이 있다. 기생충들은 숙주에게 필수불가결한 손상만을 입히는 데 능하다. 숙주가 너무 심하게 손상되면 결국 기생충 스스로에게 해가 될 것이라고 진화를 통해 배웠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이 기생충으로서 성공하고 싶다면, 우리는 훌륭한 선배인 그 대가들에게 배울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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