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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헌의 웃음의 원천, 희극의 뿌리를 읽다] 하늘과 땅 사이에 짓는 새로운 나라관리자2021-07-28

    하늘과 땅 사이에 짓는 새로운 나라

    글_김헌(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


    「새」, 아리스토파네스 저, 채유순 옮김, 동인, 2003
     

    아테네와 스파르타 사이에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한창이던 기원전 414, 아테네의 두 노인이 집을 떠났다. 에우엘피데스와 피스테타이로스다. ‘좋은(Eu-) 희망을 품은 자(Elpides)’라는 이름에 걸맞게 에우엘피데스는 시끄럽고 피곤한 도시를 벗어나 한적한 곳을 찾아 평화롭게 깃들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그의 손에는 어치가 있다. 어치의 인도를 받아 새로운 땅을 찾아가는 중이다. 한편 피스테타이로스의 손에는 까마귀가 있다. 두 사람은 시장에서 새 두 마리를 샀는데, 그 새들이 그들을 후투티에게로 인도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런데 그들은 왜 평화로운 곳을 찾기 위해 후투티에게 가려고 하는가? 옛날 아테네에는 판디온 왕에게는 프로크네와 필로멜레라는 예쁜 딸이 있었다. 트라케의 왕 테레우스는 프로크네와 결혼했지만, 필로멜레를 탐하여 겁탈했다. 프로크네는 분노했다. 그는 테레우스와 사이에서 낳은 아들 이튀스를 죽여 요리를 만들어 테레우스에게 먹였다. 이번엔 테레우스가 분노했다. 아내와 처제를 죽이겠다고 달려들자, 제우스는 이들을 모두 새로 만들었다. 그때 테레우스는 후투티로 변신한 것이다. 두 노인은 후투티를 만나면 말이 통할 것 같았다. 인간의 욕망도 알고 있을 테고, 새가 되어 하늘 높이 날아 두루두루 다녀보았을 테니 그 욕망을 채울 곳이 어디인지도 잘 알 테고. 마침내 두 노인은 후투티의 집을 찾았고, 반갑게 마음을 털어놓았다.

     

    그대의 생각은 인간으로서나 새로서나 모든 것에 현명하오.

    그래서 우리 둘은 탄원자로서 그대를 찾아 여기로 왔소.

    혹시 그대가 우리에게 알려줄까 해서 말이요, 부드럽고

    포근하기가 마치 염소 모피 침대보 같은 어떤 도시를.(119-122)

     

    후투티와 대화를 나누던 에우엘피데스는 무슨 생각이 번뜩였는지, 갑자기 말을 꺼낸다. “그냥 여기에서 새들과 살면 어떨까?” 그러자 피스테타이로스의 머리에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허공은 하늘의 신들도, 땅 위의 인간들도 손댈 수 없는 새들만의 공간이다. 여기에 집을 짓고 울타리를 쳐서 도시를 건설하자는 것이었다. “새들이여, 그러면 당신들은 인간을 지배하게 될 것이고, 신들도 굶길 수가 있소. 마침내 세상을 지배할 권력을 쥘 것이오!" 그는 새들을 위한 원대한 구상을 펼쳐보였다. 허공에다 새들의 도시를 세우면, 새들은 인간이 신들을 위해 태우는 제물의 향기를 중간에서 가로챌 수가 있다. 인간들의 제물을 더 이상 흠향할 수 없게 된 신들은 쫄쫄 굶게 될 것이고, 허기진 신들은 새들에게 항복하고 권력을 넘겨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말을 들은 후투티는 환호성을 지른다. “나는 당신들과 함께 그 도시를 세우겠소.” 후투티는 구원의 복음과도 같은 소식을 전하기 위해 새들을 불러 모은다. 후투티의 부름에 몰려든 새들은 두 노인을 보자 분노에 휩싸인다. 인간들이란, 새들의 적이므로. 공중을 나는 새를 향해 화살을 쏘아대고, 올가미를 쳐서 새들을 잡아먹는 종족이므로. 후투티는 새들의 노기와 두려움을 달랜다. “그는 엄청난 어떤 행복을 말하고 있소, 말할 수도 없고, 믿을 수도 없는 행복을.” 후투티의 말은 대단히 역설적이다. 왜냐하면 믿을만한(Pist-) 친구(etairos)’라는 뜻의 피스테타이로스가 믿을(piston) 수 없는(oute)’ 행복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그런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 가능할까? 그런 나라를 세우면 새들은 신들과 인간들을 굴복시키고 천하의 지배자가 될 수 있을까? 새들은 믿을만한 친구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피스테타이로스는 새들의 불신을 없애야 했다. 새들은 인간들의 화살과 올가미에 당한 억울함과 두려움에 움츠러든 상태다. ‘우리 새 따위가 어찌 독립적인 나라를 만들며, 신과 인간을 압박해 세계의 지배자가 된단 말인가?’ 그들의 패배주의와 열등감을 극복할 수 있는 묘책이 필요했다. ‘믿을만한 친구피스테타이로스는 또 다시 믿을 수 없는신화를 꺼낸다. 내용인즉 이렇다.

    그대들은 사실 제우스를 능가하는 왕이었소. 제우스의 아버지 크로노스와 그의 형제 티탄신족들보다, 그들의 어머니인 대지의 여신 가이아보다 당신들이 더 먼저 세상에 태어났소. 당신들은 다른 대부분의 신들보다 이 세상에 대한 권리가 있는 것이오. 실제로 옛날에 인간들을 지배한 것은 신들이 아니라 새들이었소.’ 새들은 깜짝 놀랐다. 조상들의 권세를 예전엔 미처 몰랐다가, 이제야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 새들은 두 노인들과 함께 새들이 신들과 인간들을 지배하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허공의 도시를 건설할 것에 뜻을 모은다. 피스테타이로스가 그려준 새로운 신화는 새들이 습관처럼 가지고 있던 두려움, 패배감, 열등감을 물리쳤다.

    피스테타이로스의 믿을 수 없는 신화를 믿게 된 새들은 자신감과 용기로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마침내 새들의 지도자는 인간들이 믿고 있던 신화에 감추어진 비밀을 캐낸 것처럼 피스테타이로스의 거짓말을 새로운 신화로 둔갑시켜 선포한다. ‘태초에 카오스가 있었다. 카오스는 새처럼 날개가 돋아 있었다. 그와 함께 밤과 검은 에레보스(어둠)와 광활한 타르타로스(지하세계) 있었다. 밤도 검은 날개를 달고 있었다. 밤이 새처럼 알을 낳자 에로스(사랑, 욕망)가 태어나 찬란한 황금날개를 펼치고 회오리바람처럼 빠르게 날아올랐다. 그리고 에로스는 카오스와 동침하더니 광활한 타르타로스에 알을 낳고 부화하여 새의 종족들을 낳았다. 새들이 탄생했을 때, 아직 세상에는 가이아(대지)도 우라노스(하늘)도 오케아노스(대양)도 없었고, 사람들이 섬기는 신들의 종족은 없었다. 새들이 그들 모두보다 연장자이며, 세상에 대한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인간들이여, 이제 새들을 섬기라. 우리 새들이 세상을 지배할 것인즉.’

    새들은 이제 피스테타이로스의 제안과 새들의 지도자의 재구성된 신화에 고무되어 새로운 희망에 부풀어 거듭난다. 피스테타이로스는 새들의 나라에 멋진 이름도 붙여준다. 허공에 지은 새들의 나라는 '구름뻐꾹나라'가 어떤가! 후투티를 비롯해서 모두가 환호한다.

    기원전 414년 대 디오뉘소스 제전의 무대에 올려진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 작품 ''의 내용이다. 그는 전쟁에 진절머리가 난 아테네인들에게 무대를 통해서나마 희망과 위안을 주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전쟁을 고집하며 민중들을 고통에 신음하게 만드는 권력자들을 향해 유쾌한 비판과 환상적인 반란을 꿈꾼 것일까. 무대 위에 나타난 온갖 새들은 인간들이 쏘아대는 화살에 대한 두려움과 하늘에서 벼락을 내리치는 신들에 대한 공포를 이겨내고 자랑스럽게 날개를 퍼덕이더니 마침내 세상을 지배할 권력을 획득한다. 오랜 세월 새가슴에 마음을 졸이며 살던 새들은 웅비하며 포효하고 기쁨에 겨워 환호한다.

    그러나 희극은 그렇게 희망으로 끝나지 않는다. 새들과 함께 허공에 성벽을 쌓고 도시를 건설하던 중, ‘좋은 희망을 품은 자에우엘피데스가 슬그머니 사라진다. 그리고 도시가 완성되고 새들의 활약에 힘입어 신들과 인간들을 복종시킨 피스테타이로스는 제우스의 사위가 되고 천하의 패권자로 등극하더니, 새들을 노예처럼 부리면서 잡아먹기도 한다. 그를 믿고 온 힘을 다해 새로운 나라를 건설했던 새들은 이제 독재의 치하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것이다.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더니, ‘믿을만한 친구피스테타이로스는 그렇게 도무지 믿을 수 없는 배신의 길을 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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