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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동석의 천변만화(千變萬化)] “어른들의” 처음부터 끝까지 “거짓된 삶”관리자2021-07-29

    "어른들의" 처음부터 끝까지 "거짓된 삶"

    글_장동석(출판도시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 출판평론가)


    「어른들의 거짓된 삶」, 엘레나 페란테 저, 김지우 옮김, 한길사, 2020
     
    종종 제목부터 폐부를 찌르고 들어오는 책이 있다. 그 옛날(?) 어린 시절에는, 그렇게 큰 죄를 지은 적도 없으면서,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이 그랬다. 결혼하고 아들을 낳고서는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가 그랬다. 부자 아빠가 아닌 것이, 정확하게는 가난한 아빠인 것이 아들에게 미안해서였을까, 아무튼 좀 많이 뜨끔했다. 제법 뜸했던 찔림이 얼마 전 또 한 번 있었으니, 제목부터 공개한다. <어른들의 거짓된 삶>.

    이탈리아 출신 작가 엘레나 페란테의 장편 <어른들의 거짓된 삶>은 나이가 들수록 삶의 깊이와 넓이가 더 확장되기는커녕, 무언가 감춰야 할 게 더 많은, 하여 속 좁은 인간이 되어가는 내게, 제목만으로도 묵직한 충격을 준 책이다. 엘레나 페란테는 베일에 싸인 작가다. 엘레나 페란테라는 이름도 본명인지 가명인지 모르는, 필명이다. 국내 독자들에게 <나의 눈부신 친구>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 <떠나는 자와 머무른 자>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 등으로 제법 이름이 알려진 작가임에도, 그 어떤 미디어와도 서면으로만 인터뷰할 뿐, 얼굴을 내민 적이 없다. 이탈리아에서는 걸출한 작품을 계속해서 발표하면서도 정체를 알 수 없어, 갖가지 소문이 무성하다고 한다.

    12살 조반나는 사춘기 소녀였다. “나폴리의 모든 공간도, 얼어붙을 듯 차가운 2의 어느 날, 조반나는 집을 나왔다. 성적이 조금 떨어진 것은 이유 축에도 들지 못했다. 사춘기면 나타는 몸의 변화, 거기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는 마음의 변화도 이유는 아니었다. 사건은 성적이 떨어진 탓에 학교를 방문하고 돌아온 어머니가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는 중에 갑자기 튀어나온 한마디 말에서 비롯되었다.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조반나는 못 생겼어라고 말했고, 그 말에 조반나는 배신감을 느꼈다. 그때까지 아버지는 끊임없이 내가 자신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사랑 많은 사람이었다. 사실 사연이 하나 더 있다. 아버지는 집안에서 금기시되는 이름 하나를 언급하며 조반나를 들먹였다.

    조반나가 빅토리아를 닮아가.”

    빅토리아는 조반나의 고모, 그러니까 아버지의 누이였다. 빅토리아라는 이름은 조반나의 집에서 몸에 닿는 모든 것을 더럽히고 부패시키는 괴물 같은 존재였다. 조반나는 그렇게만 알 뿐, 왜 그런지는 도무지 알지 못했다. 조반나는 집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나는 누구이고, 고모 빅토리아는 어떤 사람인가. “절망 속에서 밤을 지새우고 아침이 왔을 때 나는 이 절망감에서 빠져나오려면 빅토리아 고모가 실제로 어떻게 생겼는지 직접 확인하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조반나가 마주한 현실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야기한 것과는 다소 달랐다. 고모 빅토리아가 애가 셋이나 되는 유부남 엔초와 불륜을 저질렀다는 어머니의 이야기는 사실이었다. 어머니는 엔초를 불한당이라고 했지만, 고모는 엔초와의 사랑만큼 아름다운 일은 없었다는 듯 말했다. “첫 만남보다 더 강렬했던 두 번째 만남의 장소는 엔초가 잠든 공동묘지였다. 고모는 조카에게 두 사람의 사랑을 열한 번의 섹스에 빗대 이렇게 말했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나처럼 정열적인 사랑을 열한 번까지는 아니더라도 단 한 번이라도 해보지 못한다면 살아야 할 이유가 없는 거야.” 몇 번의 만남이 이어지자 고모는 조반나에게 이 말을 수시로 했다. “네 부모님을 잘 봐. 제대로 봐. 네 아빠 엄마에게 속지 마.”

    아버지와 어머니가 인간 취급조차 하지 않던 고모에게서 나온 네 아빠 엄마에게 속지 마라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고모의 말 때문이었겠지만, 조반나가 아버지와 어머니를 유심하게 살피기 시작하자 부모님의 행복이 가식적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눈치채기 시작했다. “돈에 대한 집착이 남다른 아버지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절박한 목소리로 쓸데없는 데 돈을 낭비한다고 어머니를 추궁하던 장면이 떠올랐다. 이유가 있었다. 아버지는 가난한 나폴리의 아랫동네에서 벗어나기 위해 숱한 고난을 견뎌야만 했다. 윗동네를 떠나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면서도 고고한 척 자기를 감췄다.

    어머니의 알 수 없는 행동은 우연히 발견했다. 아버지와 형제처럼 지내는 마리아노 아저씨 집으로 저녁을 먹으로 갔을 때였다. 마리아노 아저씨는 식탁 밑으로 다리를 쭉 뻗고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면서 자기 다리 사이에 어머니의 발목을 넣고 있는 것을 보았다. , 아버지도 다르지 않았다. 마리아노 아저씨의 부인 코스탄차와 아버지도 그렇고 그런 사이였다. 어린 조반나에게 아버지는 예전의 상냥한 그 아버지가 아니었고, 어머니도 무엇이든 깔끔하게 정리하는 그 어머니가 아니었다. 부유하지 않지만 부족함이 없었던, 나름 완전하다고 생각했던 조반나의 세계는 산산이 부서졌고, 조반나는 더 이상 어린아이일 수 없었다. 위선이 철철 넘쳐흐르는 어른의 세계에 조반나는 그렇게 발을 들이게 되었다.

    겉으로 보기에 단란했던 조반나의 가정은 그렇게 깨어졌다. 위선이 판치는 어른의 세계에 들어섰지만, 거기에 쉽게 적응한 건 아니다. 조반나는 불안에 떨어야 했고, 공포와 환멸 속에서, 아버지가 어머니와 자신을 버리고 간 나폴리 윗동네에서의 나날을 보내야 했다. 가난한 아랫동네가 아닌데도, 남은 이들의 마음은 가난할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는 매몰차게 자신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에 그렇게 매달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집착했다. 와중에 조반나는 아랫동네의 정체성을 한사코 버리고자 했던 아버지의 또 다른 위선과도 마주하게 된다. “어른들의모습은 처음부터 끝까지 거짓된 삶이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애정을 품은 데도, 어른들만의 사연이 있었다. 구구절절 마음이 가는 대목이 없지 않고,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었다. 하지만 사춘기 조반나의 시선에서는, 아플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이제 조반나에게 위선자였다. “아빠를 이해해요. 그건 저랑 상관없는 일이에요. 아빠 엄마 일이고 아빠랑 코스탄차 아줌마가 알아서 할 일이니 알고 싶지 않아요. 아빠가 힘들다니 마음이 안 좋아요. 저도 힘들어요. 엄마도 마찬가지고요. 이 모든 아픔이 아빠가 우리를 좋아한다는 증거라니 좀 웃기지 않나요?” 어머니도 거기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이쯤 되면 사춘기 조반나의 삶도 온전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 좌충우돌, 아니 좌절과 방황은 독자 여러분이 직접 책을 통해 확인하십사 권한다. 조반나의 쓰라린 사춘기를 과연 어떻게 끝날지 관심을 갖는 만큼,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청소년들에게도 그만한 관심과 사랑을 주자고, 감히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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