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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재현의 트랜스크리틱] 영혼의 자유를 성취한 중국 최고의 시인은 누굴까?관리자2021-09-27


    영혼의 자유를 성취한
    중국 최고의 시인은 누굴까?


    글_권재현(저술가·前 언론인)

     

     
    「시간의 압력」, 샤리쥔 저/홍상훈 옮김, 글항아리, 2021

     

    한국은 오랜 세월 과거(科擧)의 나라였습니다. 고려 광종 때(958)부터 조선 고종 때(1884)까지 926년간 한문 실력으로 관리를 선발했습니다. 여기서 한문은 단순히 문장력만을 말한 것 아닙니다. 사서삼경으로 대표되는 한문으로 쓰인 고전 텍스트에 대한 깊은 이해와 그를 수원으로 삼는 사유 역시 중요했습니다.
     
    허나 역시 그를 글로 풀어낼 때 가장 중요한 장르가 시였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고려와 조선을 통틀어 그 한시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시인 셋을 꼽으라 하면 시선(詩仙) 이백과 시성(詩聖) 두보 그리고 동파(東坡) 소식입니다. 소동파는 시가 아닌 산문을 기준으로 당송팔대가라 하여 최고의 문장가 8명을 뽑을 때도 포함되는 인물입니다.
     
    중국 고전문학연구자이자 수필가인 샤리쥔(夏立軍)이 쓴 시간의 압력은 전국시대 때부터 명청 교체기까지 주로 중국 최고의 문학가 9명의 인생과 문학을 논한 문학평론서입니다. 그럼 당연히 이백, 두보, 소동파가 들어갈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밖에 시불(詩佛)로 불리는 왕유와 당송팔대가의 첫머리에 오른 한유(韓愈)도 들어가리라.
     
    놀랍게도 딱 한 명, 이백만 들어가 있습니다. 나머지 8명 중에 조선시대 과거응시생들이라면 기절초풍할 인사가 들어있었으니 삼국지의 간웅 조조와 분서갱유의 설계자인 이사 그리고 맹자와 주자가 극렬히 비판한 법가의 창시자 상앙입니다. 그들 유생들이 찬미할만한 인사로는 초나라의 충신이자 한시의 장시자라 할 굴원과 귀거래사로 유명한 도잠, 반청복명 운동을 주도하다가 열일곱에 숨진 천재시인 하완순을 뽑을 수 있을 겁니다. 이중 충절로는 단연 하완순이라 하겠지만 사실 오늘날은 물론 조선시대에도 그의 존재는 거의 무명에 가깝습니다.
     
    1962년생인 샤리쥔은 이 책을 쓰기 위해 수십 년의 세월을 투자했다고 합니다. 기원전 3세기 전후 인물인 굴원부터 명말청초까지 1800여년의 중문학사를 헤저으며 작가를 선정하고 그렇게 선정한 작가가 남긴 글과 후대의 비평까지 다 읽고 혼신의 노력으로 글을 쓰느라 지천명을 넘긴 후 집필에만 5년을 투자했다는데 충분히 수긍이 갔습니다.
     
    그렇다면 그 선정 기준이 무엇일까요? 책 제목이 암시하듯 시간의 압력을 견뎌낸 문학가라고만 설명한다면 100명도 더 넘어야할 것입니다. 저자가 직접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제가 찾은 기준은 자유입니다. 황제라는 절대 권력이 천하를 쥐고 흔들던 중국 왕조시대를 관통하면서 그 속에서 자신만의 자유를 찾기 위해 분투를 벌인 과정과 결과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사람들입니다.
     
    대표적 작가가 도연명으로 더 유명한 도잠입니다. 보통 도잠을 자연을 사랑해 벼슬자리를 박차고 낙향해 안빈낙도를 실천한 선비라 생각합니다. 샤리쥔은 다양한 군벌이 할거하던 시대 이 생애의 참맛을 맛보기 위해 고독과 적막, 가난 속에서 광대하고 심우한 영혼을 기르는 비범한 선택을 실천에 옮겼고 그 결과 중국문학사에서 홍루몽과 더불어 존재의 깊이를 가장 잘 드러낸 한시를 남겼다고 평가했습니다.
     
    그것은 죽음에 맞서 생명을, 속세에 맞서 자연(정확히는 2의 자연으로서 전원’), 그리고 무엇보다 도구적 자아(입신출세해야 성취감을 맛보는 자아)에 맞서 자유적 자아(내적 영혼의 충만)를 지향한 내적 고백이었습니다. 송나라 때 주희나 소동파는 이런 도잠의 영웅적 면모를 꿰뚫어봤지만 결코 도잠의 이룬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고 샤리쥔은 평가했습니다. 특히 소동파는 도잠의 작품에 화답하는 시를 109수나 남길 만큼 도잠에 심취했으나 속세와 절연을 통한 자유의 획득에는 실패했기에 도잠 같은 생존의 깊이를 성취하지 못했다는 대목을 읽으면 무릎을 치게 됩니다. 샤리쥔은 소동파를 도잠의 아류로 본 것이니 실로 대단한 심미적 절창이 아닐 수 없습니다.
     
    샤리쥔은 도잠의 자전적 평전인 오류선생전이 그런 그의 시적 인품을 드러냈다고 치밀하게 분석하면서 도잠은 세계와 대화하는 것보다 자기와 대화하는 것이 중요했음을 설파합니다. 그러면서 오두미(한 달 녹봉인 다섯 되의 쌀) 때문에 시골 어린애에게 고개를 숙일 수 없다며 벼슬을 박차고 나왔던 도잠이 술을 얻기 위해 이웃의 비위를 맞추려 했을까라고 묻고는 그랬을 것이다라고 답합니다.
     
    사람들은 도잠의 시가 안빈낙도를 노래했다고만 기억하지만 실제 그가 남긴 전원시 중 절반 가까이는 그로 인한 육체적 피로와 노쇠, 가난, 추위, 고독으로 점철돼있습니다. 그걸 견디게 해준 것이 바로 한 잔의 술이었습니다. 그래서 떠들썩하게 술을 마신 소동파와 달리 늘 과묵하게 술잔을 기울이면서도 거창하게 잔을 떨쳐 마신다는 뜻의 ()’란 표현을 애용했다는 샤리쥔의 분석이 예리하게 빛을 뿜습니다. 도잠에겐 술을 마시는 것이 전장에서 목숨걸고 칼을 휘두르는 것과 진배없었던 것입니다.
     
    도잠의 귀거래사는 벼슬길 마치고 낙향해 평소 하고 싶던 것을 하고 살아가는 그런 낭만적 삶에 대한 찬가가 결코 아니었던 겁니다. 고난으로 점철된 가시밭길을 어떻게든 버텨내 봉건체제로부터 영혼의 자유를 지켜내겠다는 강렬한 의지의 천명이었습니다. 그것은 1000년 뒤 미국의 헨리 소로가 월든을 통해 이루려다가 포기한 것이자 독일의 하이데거가 실존주의로서 이루려한 것의 눈부신 선취였다는 샤리쥔의 분석은 찬탄을 불러일으킵니다. ‘인생이란 한 잔의 독한 술을 그는 기꺼이 혼자 맛보려 했다.‘
     
    이는 4가지 점에서 놀라울만한 통찰입니다. 첫째는 통곡하는 시혼(詩魂)을 등장시켜 중문학사에서 진정한 서정시의 세계를 열어젖힌 굴원 이래로 중국의 무수한 사인(士人)이 목표했던 자유로운 영혼의 쟁취를 실제 삶과 문학을 통해 성취해낸 것이기 때문입니다. 충성의 대상으로서 주군에게 버려졌을 때 굴원이 표출한 억울함을 샤리쥔은 비첩(婢妾)의식이라 표현했습니다. 거기엔 진정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영혼이 되지 못했다는 비판의식이 작동하고 있습니다. 이는 조선시대 정철의 사미인곡은 물론 한용운의 님의 침묵으로까지 이어지는 정치적으로 왜곡된 도착증의 하나입니다.
     
    둘째는 인생에 대한 이런 미학적 태도가 오늘날 파이어(FIRE·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으로 확대 변주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도잠이 벼슬길에서 물러나 전원에 칩거한 나이가 마흔한 살이었으니 은퇴연령을 60대에서 40대로 앞당기는 파이어족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도잠이 꿈꾼 자유와 충만이 전근대적 정치권력에 맞서는 것이었다면 파이어족의 자유와 충만은 노동착취적 자본주의체제에 대한 개별적 저항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셋째는 샤리쥔이 직접 언명하진 않았지만 도잠의 꿈이 곧 공산주의 독재 권력 아래 있는 중국 지식인들의 자유에 대한 열망과 공영한다는 점입니다. 샤리쥔은 진시황의 도구적 지식인으로 완벽하게 성공했기에 처절하게 파멸해야했던 이사의 사례에서 독재정권은 항상 시신에 미련을 갖는다. 시신은 쓸모가 있기 때문이다라고 적었습니다. 물론 이는 진시황이 병사했을 때 이를 감춘 것을 비판한 글이다. 하지만 ‘20세기의 진시황인 마오쩌둥(毛澤東)의 시신을 방부처리해 전시하고 있는 중국 공산당에 대한 비판으로도 읽히는 것은 필자마의 착각일까.
     
    넷째는 도잠이 출현할 수 있었던 위진(威秦)시대의 특수성에 대한 통찰입니다. 이는 조조에 대한 통찰과 맞물려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삼국지를 애독했던 저는 마흔이 넘은 뒤에야 삼국지의 진짜 주인공은 유비나 제갈량이 아니라 조조임을 깨달았습니다. 덕의 화신으로 그려진 유비 보다 그를 따르는 인재가 인산인해를 이뤘다는 것만으로 조조의 덕은 유비를 능가합니다. 게다가 유비는 봉건적 혈통에 호소해 황제가 되려했지만 내시집안 출신의 조조는 오로지 자신의 능력으로만 일인지하만인지상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게다가 조조는 중국 역사상 희귀한 문무겸전의 영웅인데다 황제가 될 수 있었으나 이를 사양하고 죽음을 맞았다는 점에서 동양의 카이사르였습니다. 그는 카이사르만큼 바람둥이이기도 했으니 자신의 정적들 아내뿐 아니라 그 자식들까지 양자로 취할 때가 많았습니다.
     
    샤리쥔 역시 그런 조조의 영웅적 면모를 꿰뚫어볼 줄 압니다. ‘조조는 빼어난 기질과 우주의 비애를 함께 지닌 정통의 사나이로서 가장 많은 복잡성을 용납한 위대한 영웅이었다.’ 그 복잡성은 이렇게 묘파됩니다. ‘고독한 조조는 넓고 아득한 시인이자, 눈 하나 깜짝하지 살인하거나 눈물을 흘리며 살인하는 망나니였다.’ ‘정 많은 시인이자 무정한 도살자. 조조는 영원히 고독했다.’
     
    샤리쥔의 통찰이 진일보한 점은 황제가 되려한다는 주위의 비방에 맞서서 쓴 술지령과 임종 전 정치적 유서로 쓴 유령에 대한 예리한 분석을 통해 이러한 조조의 분열적 영혼을 해부해낸 점입니다. 술지령의 분석에서 조조는 놀랍게도 공자가 그토록 찬미했던 주문왕이나 주공을 자신의 역할모델로 삼았음을 천명합니다. 자식 대에는 몰라도 스스로는 결코 천자의 지위를 오르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천명이었으며 실제 이를 관철합니다. 난세에 태어났기에 생존을 위해 수없이 비정한 짓을 많이 저질렀지만 그 자아는 자신과 약속을 중시하는 순수한 이장주의자에 가까웠던 겁니다.
     
    또 죽음을 앞둔 조조는 권력 승계 구도는 방치한 채 비첩들의 복지와 자신의 외로운 영혼을 달래줄 소소한 의례에 집중돼 있습니다. 소동파는 이를 조조의 비루힘을 드러내는 것이라 비웃었습니다. 샤리쥐은 오히려 다정한 삶무정한 죽음사이에 쉼표 하나 찍고자 한 조조의 인간다움의 징표로 봤습니다. 조조는 권력의 최정상에 선 뒤 천하가 규정하는 영웅의 이미지에 얽매이지 않고 죽음보다 삶에 충실한 자기다움에 충실했다는 것입니다.
     
    조조가 남기는 시는 겨우 10편 남짓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조조는 중국 역사상 10대 시인 안에 들어간다는 샤리쥔의 평가는 확실히 통념의 허를 찌릅니다. 소동파와 나관중은 그런 조조를 어릿광대로 그려냈지만 조조가 남긴 글들은 그가 인생과 권력의 심연을 응시했기에 그런 세상의 잣대를 훌쩍 뛰어넘는 경지에 이르렀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면서 중국 역사 속 인물 중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 중 하나가 조조임을 환기시키면서 가장 오랫동안 기억되는 걸 역사의 승자라고 봤을 때 누가 진짜 승자냐고 반문합니다.
     
    샤리쥔은 후한말엽부터 위진교체기를 관통하는 풍운의 시대 진정한 자유를 쟁취한 지식인이 택할 수 있는 양 갈래 전략의 정점에 위치한 사람으로서 조조와 도잠을 꼽습니다. 조조가 그 입구를 열어젖혔다면 도잠은 그 출구를 비추는 어렴풋한 빛과 같은 존재입니다. 조조가 지식인을 불쏘시개로 마구잡이로 불태워버리는 그 권력의 정점에 올라타는 길을 택했다면 도잠은 스스로 무명의 그늘에 들어가는 능동적 고독을 택함으로써 내면의 왕국을 세웠습니다. 조조의 길은 천운을 타고난 극소수만이 성공할 수 있는 길이라면 도잠의 길은 외롭고 고단한 인고의 길입니다. 문학적 성취만 놓고보면 전자는 결코 후자를 이길 수 없습니다.
     
    중국 문학사에서 이백이 가장 기이한 이유도 거기에서 연원합니다. 이백은 결코 조조가 뚫은 입구로도 들어가지 않았고 도잠이 개척한 출구로도 나오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는 그 사이 어딘가에서 홀연히 나타났다 홀연히 사라지는 도깨비불 같은 마력을 발휘합니다.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분열적이란 점에선 조조를 닮았지만 그 영혼의 광대함과 심오함에 있어선 도잠에 필적할만한 빛을 발합니다. 그 미스테리를 풀기 위해 이 책의 3분의 1가까이가 이백에 바쳐졌으니 시간의 압력을 뚫는 힘만큼은 이백이 최고라고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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