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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헌의 웃음의 원천, 희극의 뿌리를 읽다]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 『뤼시스트라테』 - 전쟁을 멈추려는 여인들의 반란 -관리자2021-09-27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 『뤼시스트라테』
    - 전쟁을 멈추려는 여인들의 반란 -


    글_김헌(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
     


    「아리스토파네스 희극전집 2」, 아리스토파네스 저/천병희 옮김, 숲, 2010


    마음을 녹이는 에로스와 퀴프로스 태생의 아프로디테가

    우리의 젖가슴과 허벅지에다 잔뜩 갈망을 불어넣고,

    남자들에겐 야릇한 긴장감과 불끈 발기를 일으키신다면

    헬라스인들이 우릴 곧 전쟁해결사라 부를 거라 생각해요.(551-554)

     

    기원전 411, 아테네와 스파르타 사이에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일어난 지도 벌써 20년이 된 해였다. 아테네는 전세를 역전시키고자 대규모 함선을 시칠리아 섬 시라쿠사로 보내는 초강수를 뒀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아테네는 전쟁 초반부터 고전이었다. 바깥으로 스파르타와 싸워야했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테네 도성에 무서운 전염병이 돌며 수많은 사람들이 쓰러져갔다. 전쟁이 시작되고 2년 만에 생긴 일이었다. 아테네에는 불안과 공포, 피로감이 고조되었다. 여인들은 남자들을 전쟁터에 보내놓고 안절부절 불안하고 고통스러웠다. 전쟁에서 진다면 닥쳐올 운명은 끔찍하기 그지없다. 같은 말을 쓰고 같은 신들을 섬기는 동족끼리 전쟁을 한다는 건 아무래도 미친 짓 같다. 누가 좀 막아야 할 텐데, 남자들은 안 된다. 한 번 시작한 전쟁에 혈안이 되어 몰입하더니, 너 죽고 나 죽자, 미련한 자존심 때문에 멈추질 못한다.

    이때 나선 이가 뤼시스트라테라는 아테네의 여인이었다. 아리스토파네스가 무대 위에 올린 희극 작품의 주인공이다. ‘대 디오뉘소스 제전개최 전에 열리는 레네이아 제전의 무대였다. 작품의 제목이자 주인공의 이름이 흥미롭다. ‘뤼시-’풀다, 해체, 해결하다는 뜻이고, ‘스트라테는 군대라는 뜻이니, ‘군대를 해산하는 여인라는 뜻이다.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군대를 해산하고 평화를 이루면 좋겠다는 작가의 염원이 담긴 작명이다. 그녀가 이름값을 제대로 한다면, 이 지긋지긋한 전쟁을 멈출 수 있을 것이다.

    무대 배경은 아크로폴리스로 올라가는 프로퓔리아(정문) 앞 도로다. 뤼시스트라테가 칼로니케라는 여인과 전쟁을 멈출 방안을 이야기한다. 이 여인의 이름 또한 희망을 주기에 충분하다. ‘칼로-’아름답다, 멋지다, 훌륭하다는 뜻이고, ‘니케는 승리다. 군대를 해산하려는 여인과 멋진 승리를 이룰 여인이 함께 손을 잡는다면, 전쟁은 끝나리라. “헬라스인들이 우릴 곧 전쟁해결사라 부를 거라 생각해요.” ‘전쟁해결사라고 번역된 그리스말은 뤼시마케인데, ‘마케전투, 전쟁이라는 뜻이다. 뤼시스트라테와 칼로니케가 계획을 이룬다면, ‘뤼시마케’, 즉 전쟁은 해결될 것이라는 메시지가 희극의 첫 부분을 가득 채운다.

    그런데 힘없는 여인들이 어떻게 남자들의 전쟁을 멈출 수 있을까? 당시 아테네를 비롯해서 그리스 전역에서 여인들은 시민으로 인정을 받지 못했고 사회적, 정치적 위상이 매우 낮았다. 게다가 뤼시스트라테가 특별히 가문이 좋거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특권이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그저 전쟁에 대한 지긋지긋함이 남달리 강했고 전쟁을 끝내고자 하는 열망이 하늘을 찌를 듯했을 뿐이다. 그녀는 아테네 여인들에게 말한다. “그리스 전체의 구원은 남자가 아닌 우리 여인들의 손에 달렸어요.” 곧이어 적국인 스파르타의 여인 람피토도 가세하고, 보이오티아에서도 코린토스에서도 여인들이 속속 뤼시스트라테의 곁으로 도착한다.

    전쟁을 멈출 뤼시스트라테의 비책은 바로 잠자리 거부 운동’! 그녀는 각국에서 모인 여인들에게 말한다. “우리가 아름답게 차려 입고 남자들의 몸을 달아오르게 한 뒤, 잠자리를 거부하면서 전쟁을 멈추기 전까지는 안 된다고 말하면, 전쟁을 멈출 수 있어요.” 욕망에 불끈거리는 남자들에게 잠자리를 허용하는 조건으로 전쟁의 중단을 요구한다? 과연 될까? 물론 그것만은 아니었다. 뤼시스트라테는 아크로폴리스를 점거하고 농성을 벌인다. 아크로폴리스에는 아테나 여신을 모시는 거대한 파르테논 신전이 있다. 그것은 거룩한 신전이면서 동시에 델로스 동맹의 막대한 기금을 보관하는 안전한 금고였다. 그곳을 점거한다면 전쟁자금의 돈줄이 끊길 테고, 아테네는 더 이상 전쟁을 치를 수 없을 것이다.

    이 소식을 들은 남자들이 떼로 등장하여 아크로폴리스에서 여인들을 끌어내려고 불을 지르지만, 아래에 남아 있던 여인들은 물동이를 들고 가세하여 불을 끈다. “아테나 여신이여, 우리의 동맹군이 되어주소서. 우리와 함께 물을 길어 와 주소서.” 아테나 여신의 가호가 있었던 것일까? 남자들의 불은 곧 꺼지고 여성들은 환호성을 지른다. 뤼시스트라테스는 남자들에게 외친다. “우린 인생과 젊음을 즐겨야 할 때, 전쟁 때문에 독수공방하고 있소. 특히 방안에서 늙어가는 처녀들을 보면 정말 가슴 아프오.” 곧이어 스파르타에서 희소식이 전해진다. 뤼시스트라테와 작전을 짜던 스파르타의 람피토와 여인들이 잠자리 거부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욕망을 채우지 못해 온몸이 뒤틀린 스파르타 남자들이 발기된 남근을 곧추세우고 아테네 남자들에게로 와서 평화협상을 제안한다. “이러다간 우리가 미치고 말겠어요. 빨리 휴전을 합시다!” 몸이 달아오른 남자들이 발정 난 강아지처럼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정말 가관이다.

    뤼시스트라테스는 스파르타와 아테네 양쪽 남자들에게 외친다. “페르시아인들이 항상 우리를 노리고 있고, 그리스의 사람들과 도시들을 파괴한다는 걸 몰라요?” “서로 간에 많은 은혜를 베풀었던 걸 잊었소? 왜 서로 싸우고 분쟁을 멈추지 않는 거요? 왜 휴전하지 않는 거요?” 그녀의 다그침에 아테네와 스파르타인들은 마침내 평화협정을 맺기로 한다. 남자들은 신나게 노래하고 춤추고, 뤼시스트라테의 평화의 메시지가 울려 퍼지며 막이 내린다. “이제 그대들은 목욕재계하세요. 우리 여인들이 그대들을 아크로폴리스로 초대하여 광주리에 있는 음식을 모두 내놓겠어요. 그곳에서 그대들은 맹세와 서약을 교환하세요. 그런 다음 각자 자기 아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세요.” “앞으로는 두 번 다시 이런 과오를 범하지 않도록 조심합시다.”

    이렇게 전쟁은 멈추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무대 위에서의 유쾌한 상상의 사건일 뿐, 현실 세계는 달랐다. 전쟁은 그로부터 7년이나 더 지속되었고 아테네가 참패했다. 그렇다고 승자인 스파르타가 확고한 주도권을 쥐고 그리스 세계를 평정하지도 못했다. 그러는 사이 그리스 내부의 갈등은 다른 방향으로 깊어가고 있었고, 에게해 건너에서 페르시아는 희번덕거리는 눈빛으로 그리스를 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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