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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명우의 책읽기] EP #08 Animal-오뒷세우스와 그의 개 아르고스관리자2021-09-27


     

    EP #08 Animal-오뒷세우스와 그의 개 아르고스

    글_노명우(사회학자)
     

     
     

    「세상을 바꾼 길들임의 역사」, 엘리스 로버트 저/김명주 옮김, 푸른숲, 2019
     

    마침내 오뒷세우스는 고향 이타카에 도착했다. 트로이 전쟁에 참가했다가 멀고 먼 귀향길을 거쳐 고향 이타카에 도착할 때까지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귀향한 오뒷세우스는 자신이 부재하는 동안 자신의 아내 페넬로페에게 혼인을 강요하며 이타카를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구혼자 무리를 처단할 생각이다. 아들 텔레마코스는 그 사이에 성장했으나 아직 구혼자를 제압할 정도로 장성하지는 못했다. 텔레마코스는 혼자 구혼자를 물리칠 수 없다. 텔레마코스는 구혼자들을 못마땅하게 여길 정도로는 성숙했으나, 그 성숙은 구혼자를 제압할 정도에 이르지는 못했다.

     

    그도 자신의 어정쩡한 성숙을 잘 알고 있다. 그는 이타카 사람들 앞에서 구혼자들의 만행에 대해 이렇게 항변한다. “그들은 날마다 우리 집에 와서 소와 양과 살진 염소들을 잡아 제물로 바치고 잔치를 벌이며 반작이는 포도주를 마구 퍼마시고 있소이다. 그래서 그 많던 살림이 결딴나고 말았소. 이 집의 파멸을 막아줄 오뒷세우스 같은 남자가 없기 때문이지요. 나로 말하면 결코 파멸을 막아낼 만큼 강하지 못하고 앞으로도 무용에서 서투른 약골로 남게 될 테니 말이오. 정말이지 내게 그럴 힘만 있다면 나는 이런 일을 기꺼이 막아내고 싶소이다.”(오딧세이아, 255-63). 항변할 용기는 있으나 부당한 짓을 저지르고 있는 대상을 제압할 능력이 없으니 그는 결국 울음으로 마무리한다. “성이 나서 이렇게 말하고 그는 홀을 땅에 내던지며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오뒷세이아, 280-81)

     

    텔레마코스는 아버지 오뒷세우스가 필요하다. 이타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모든 어불성설한 일은 아버지가 부재하기 때문이라 그는 여긴다.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힘이 아직은 부족한 텔레마코스에게 유일한 해결방법은 아버지가 돌아오는 것뿐이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 오뒷세우스의 귀향을 아내 페넬로페 그 이상으로 바라고 있다.

     

    그 아버지 오뒷세우스가 돌아왔다. 그는 신중하다. 오뒷세우스는 자신은 홀로 이고 구혼자는 무리임을 알고 있다. 귀향길의 경험에서 그는 꾀를 동반하지 못한 무력의 어설픔을 충분히 깨달았다. 그는 구혼자들의 만행을 잘 알고 있지만, 격정에 휩싸여 무작정 돈키호테처럼 그들을 응징하려 나서지 않는다. 그는 응징을 계획한다. 한 명 두 명 차분하게 충성심을 확인한 사람에게만 자신의 정체와 응징이라는 계획을 알려주고 함께 할 사람을 차분히 확보해간다. 아테네의 도움으로 거지꼴을 한 늙은이의 모습으로 돌아왔기에 오뒷세우스를 알아채는 사람은 없다. 아들 텔레마코스도 아버지를 알아보지 못한다. 당연하다. 오뒷세우스는 20년전에 이타카를 떠났다.

     

    아들 텔레마코스가 아버지를 못 알아보는 것은 당연하고 치자. 주인에 대한 충실한 마음이 변하지 않은 돼지치기 에우마이오스도 오뒷세우스를 알아보지 못하며, 오뒷세우스를 기른 사실상의 어머니나 다를 바 없는 유모 에우리클레이아도 처음에는 오뒷세우스의 정체를 알아보지 못한다. 심지어 아내 페넬로페조차 오뒷세우스의 변장이라는 가림막을 뚫고 남편을 알아채지 못한다.

     

    오뒷세우스가 등장하자마자 그를 알아채는 유일한 존재는 그의 개 아르고스이다. 똥더미에 내팽개쳐진 아르고스는 거지 노인의 모습으로 오뒷세우스가 변장을 하고 있건만, 20년 만에 고향 이타카에 다시 나타났건만 단박에 그를 알아챈다. 아르고스는 오뒷세우스가 돼지치기 에우마이오스와 대화를 듣고 즉각 반응한다. “그때 개 한 마리가 누워 있다가 머리를 들고 귀를 쫑긋 세우니 참을성 많은 오뒷세우스의 개 아르고스였다. 그 개는 전에 오뒷세우스가 길렀으나 재미는 보지 못했다. 그러기 전에 그는 신성한 트로이아로 갔던 것이다.”(오뒷세이아, 17, 291-294)

     

    오뒷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에 참가하러 떠나자 사람들은 오뒷세우스의 개 아르고스를 돌보지 않았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늙은 개 아르고스는 노새와 소들의 똥 더미에 누워있었지만, 오뒷세우스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반응한다. <오뒷세이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래서 슬픈 장면 중 하나가 오뒷세우스와 아르고스가 조우하는 이 순간이다. 아르고스는 오뒷세우스를 알아보고 그에게 다가가려 하지만 힘이 없다. “지금 그 개는 오뒷세우스가 와 있음을 알아차리고 꼬리치며 두 귀를 내렸으나 주인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힘이 없었다”(오뒷세이아, 17301-303) 오뒷세우스와 아르고스가 20년 만에 다시 만나는 바로 그 순간 그는 세상을 떠난다. “이십 년 만에 주인 오뒷세우스를 다시 보는 바로 그 순간 검은 죽음의 운명이 그 개를 덮쳤다”(오뒷세이아, 17326-327)

     

    개의 조상은 늑대다. 개의 유전자는 유럽의 회색 늑대와 유전자의 99.5%를 공유한다. 과학자들에 따르면 개는 인간과 접촉해 동맹을 맺음으로써 변화를 겪은 동식물 가운데 가장 오래된 인간의 친구이다. 개와 인간은 15천년 전에 처음 동맹의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고 알려졌으나, 늑대와 개의 갈림길은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 27천년에서 4만년 전에 시작되었다는 연구도 있다. 늑대는 야생동물이고 개는 인간에 의해 길들여진 가축이다. ‘가축화는 사실 인간중심적인 표현이다. 우리는 가축화를 통해 늑대를 길들여 개로 만들었다고 생각하지만, 인간 역시 늑대를 길들이는 과정에서 분명 변화했으니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인간과 개는 일방에 의한 길들임 관계가 아니라 상호 길들임 관계라 할 수 있다.

     

    적어도 늑대와 개가 갈라지던 그 시점 인간과 늑대 혹은 개의 관계는 일방적 관계가 아니라 상호 이익에 기분을 둔 느슨한 동반자 관계였을 것이다. 동반자 관계는 인간이 사냥한 먹이 부스러기를 따라 다니는 늑대를 인간이 용인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인간은 자신을 따라다니는 늑대의 존재를 알았고, 늑대는 인간이 자신이 그들의 주변에 머물러도 개의치 않음을 알게 되었다. 상호 용인에서 시작된 느슨한 관계는 공생관계로 발전했다. 늑대는 용인되는 것을 넘어서 인간에게 환영받기 시작했다. 인간 주변의 늑대가 인간에게 구체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음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인간과 함께 움직이는 늑대는 인간 사냥꾼과 함께 달리면 사냥감을 추적하고 사냥하고 사냥한 먹이를 회수하는 일을 도왔다. 오뒷세우스의 돼지치기 에우마이오스는 인간 오뒷세우스와 개 아르고스가 함께 사냥하던 그 시절을 이렇게 회상한다. “이 개가 일단 추격하면 우거진 숲의 깊숙한 곳에서 이 개를 벗어날 수 있는 들짐승은 하나도 없었소. 수색에도 이 개는 가장 뛰어났으니까요.”(오뒷세이아, 17316-318)

     

    늑대는 인간보다 빨리 뛸 수 있고 냄새 포착에도 뛰어났다. 그렇게 상호 협력으로 사냥이 끝나면 인간은 사냥의 결과를 독점하지 않고 늑대와 나누었다. 때로 그 늑대는 인간을 위협하는 곰이나 하이에나와 같은 다른 포식자로부터 인간을 보호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게다가 사냥을 함께 하는 사이 인간과 늑대/개는 정서적 교감을 나눴다. 인간은 인간 사이에서만 느끼던 우정이라는 정서를 늑대/개와 함께 나누기 시작했다. 인간과 개의 지금까지도 지켜지고 있는 아름다운 우정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오뒷세우스의 개 아르고스는 인간과 개 사이의 우정에 대한 가장 강력하고 확실한 증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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