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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창남의 행간 속 사회] 네이버 사전과 괴테 사전관리자2021-09-27

    네이버 사전과 괴테 사전

    글_이창남(경북대 교수)

     




    「괴테사전II」, 한국괴테학회 저, HUINE, 2021

     

    외국어를 습득하기 위해서는 사전을 잘 활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단어를 제대로 모르고 외국어를 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단어를 알더라도 풍부하게 알 필요가 있다. 따라서 좋은 사전은 정확하고도 풍부한 사전이다. 외국어 단어와 한국어 단어의 의미상 일치여부를 정확히 따져서 적절한 대응 단어를 제시할 뿐만아니라 단어가 가진 의미의 진폭을 고려해서 관련되는 어휘들을 풍부하게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대개 독일어 초급반 학생들은 네이버 사전을 이용한다. 네이버 측에는 좀 미안한 이야기지만 나는 늘 네이버 사전을 사용하지 말라고 한다. 이유는 그 사전이 단어의 용례를 풍부하게 제시하지 못하고, 근접한 의미의 한 두개 단어만 나열해서 한국어와 독일어의 관계를 일대일 대응 관계로 오인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한 개 단어의 여러 가지 의미를 문맥에 따라 고려해야하는 외국어 텍스트를 번역할 때 오류가 많이 생긴다.

    외국어 텍스트가 어렵다고 하는 학생들이 많지만, 사실은 문맥에 맞는 독일어 단어의 용례를 충분히 찾아보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사전 자체에 한계가 있을 때는 학생들의 게으름만을 탓할 수는 없다. 단어의 의미가 풍부하지 못한 사전에 의지해서 읽는 독일어 텍스트가 쉬우면 이상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이버 사전에서 잘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요즘 학생들의 일반적인 경향이다.

    불과 10여년 만에 포털검색이 일반화되면서 네이버 사전은 대학의 교육현장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네이버는 전문 지식으로 영역을 확장해갈 포부가 없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러나 네이버가 그 영역들에로 얼마나 깊이 들어갈지는 미지수다. 왜냐하면 지식이 깊어질수록 조회수는 떨어질 것이고, 포털 운영자의 관심에서 멀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검색 포털은 태생적으로 대중적이다.

    네이버 독일어 사전은 비전문적인 사전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어휘를 다루는 사전들이 수도 없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비전문적인 사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전문적인 사전들이 있다. 적어도 외국어를 제대로 배우기 위해서는 비전문적인 사전에만 계속 의존해서는 곤란하다. 외국어를 배우는 초기 단계에서부터 용례가 풍부하고 단어의 활용 폭이 넓은 사전을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괴테사전>은 괴테학회에서 만들고 있는 괴테 관련 인물, 지명, 작품 등을 다루는 사전이다. 그것은 일반적인 단어사전과는 종류가 다른 작가 사전이다. 굳이 대중적인 네이버 사전과 비교할 것도 없는 특수한 목적을 가진 사전이지만, 이 사전 제 II 권에서 독일 고전 작가 쉴러실러라고 표기한 사연은 요즘 확대된 포털의 영향력과 무관하지 않다. 학회 관계자에 따르면 <괴테사전 II> 출판인이 포털 검색에 더 많이 걸리는 쪽으로 용어를 선택하기를 원했다고 한다.

    포털 검색에 많이 걸리는 것이 표기의 기준이 되는 것은 일견 민주주의의 상당히 왜곡된 모순을 드러내는 것 같다. 지식도 민주화되어야겠지만 오래 그 분야에서 연구해온 전문가들의 감각이나 판단을 홀대하는 사회분위기는 바람직하지 않다. 독일문학 전문가들 100명에게 묻는다면 거의 모두 쉴러를 실러라고 하는 데에 반대할 것이다. 이런 예는 책을 포함해서 여러 매체들에 의외로 많다. 벤야민을 베냐민으로 적는다든지, 슐레겔을 실레겔이라고 쓴다든지 하는 것이다.

    소리나는 대로 적는 것이 반드시 옳다고만 말할 수 없는 외국어 표기의 난점을 고려하더라도 이러한 사안들은 대체로 전문가들이 모인 학회의 의견을 구할 필요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학회도 대중적 포털과 타협하는 상황이니 앞으로는 사실상 포털 검색에 자주 등장하는 쪽으로 주요 작가들의 명칭이 굳어질 가능성이 커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지 않는 단어는 죽는다. 학문도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고 전유하지 않으면 존속하기 어려울 것이다. 다수가 활용할 수 없는 학문은 범접할 수 없는 신성한 지식의 영역에 스스로를 고립시키면서 사라져갈 것이다. 사전도 많이 사용하지 않으면 사전으로서의 가치가 떨어진다. 아이러니컬하지만 앞으로 살아남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사전은 네이버 사전인 것 같다. <괴테 사전 II>에서 굳이 비전문가 출판인의 권유를 받아들인 이유는 이처럼 대중들에게 많이 인지될 필요가 있다는 편집진의 판단이 때문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해는 되지만 전문가 그룹이 만든 사전이 가질 수 있는 교정의 역할을 포기한 데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

    쉴러실러가 된다고 해서 사람들이 사는 데에 지장을 줄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생각해볼 문제는 없지 않다. 가령 대중들은 별다른 확신이 없이 검색어를 포털에 써넣는다. 해당 단어로 검색이 되지 않으면 자신이 써넣은 것이 틀렸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렇지 않고 잘 검색이 되면 자신이 사용한 검색어가 맞다고 확신하게 된다. 이러한 확신은 교정되지 않으면 종종 맹목적이 되는 경향이 있다. 어설픈 검색 포털의 지식에 근거해서 심지어 맞는 것도 틀렸다고 주장하게 되는 것이다. 언제부턴가 나도 독일의 작가 쉴러, 슐레겔, 벤야민의 이름을 쓰면서도 남의 눈치를 보거나 굳이 이유를 덧붙이는 버릇이 생겼다. 누군가 그에 대해 무섭게저항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나오는 무의식적 반응인 것 같다.

    단순히 단어의 정확성 문제를 넘어서서 사회와 역사를 이해하는 개념틀이 문제가 될 때 교정되지 않은 지식과 개념틀들은 상당히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곤 한다. 무지한 확신은 일개 단어의 문제가 아니라 집단적 자기기만의 현상으로까지 비화하기 때문이다. 언어는 매우 위험한 이데올로기의 매체이다. 검색어들, 정치적 단언들, 떠도는 유언비어들이 정제되지 않으면 잘 모르면서도 확신에 가득 찬 이들의 억지가 상식이 된다.

    우리는 이미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 지식인 전문가들이 그런 오류들을 정화할 힘을 상실했고, 비평이 제 기능을 못한다고 개탄하는 것으로는 이제 더 이상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식의 생산과 유통의 객관적 조건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타협하든 저항하든 변화된 지식의 지형 속에서 무엇을 건질 것인지에 대한 고민과 결정이 점점 더 중요해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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