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TITLE

    [유지원의 글줄 사이로 路] 백신 후유증 속에 나쓰메 소세키관리자2021-10-28



     

    백신 후유증 속에 나쓰메 소세키

     

    글_유지원(그래픽 디자이너)

     

    왼쪽부터 「마음」(2016), 「도련님」(2013), 나쓰메 소세키 저/송태욱 옮김, 현암사

    「풀베게」, 나쓰메 소세키 저/송태욱 옮김, 현암사, 2013

     

    책의 생각 사이로[路]
    나쓰메 소세키는 코로나 백신 접종과 함께 내게 다가왔다. 1차 접종을 한 후 며칠간 졸음이 쏟아지며 무기력했다. 사람들과 외부에 있을 때는 몽롱해도 긴장을 놓지 않아 어떻게든 업무를 완수하는데, 혼자 일할 때는 기운과 의욕이 떨어져서 집중을 하기 힘들었다.

     

    이런 시기에 희한하게도 책장에 8년을 그대로 둔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이 눈에 들어왔다. 2013년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중 첫 네 권이 출간되던 당시에 기념으로 한 권만 그 디자인을 소장하고자, 녹색의 색감과 개구리의 문양이 마음에 든 『도련님』을 골랐다. 이후 내용도 읽으려고 해보다가 덮어두기만 여러 번이었다. 독서에 열을 올리는 진정한 만남이 일어나려면 어느 순간 책과 사람의 정서적 온도가 맞아야 한다. 그 온도가 맞춰지는 데에는 책마다 시간이 다르게 든다.

     

    『도련님』은 재미있는 이야기였다. 왜 그동안 이 내용에 내 몸과 마음이 반응을 못했나 싶었다. 백신 후유증 속에 생산적인 일을 할 기력은 없고 활자도 좀처럼 눈에 들어오지 않던 와중에, 소세키의 이 소설만은 술술 읽혔다. 도련님의 치기와 어이없는 소소한 사건들에 한번씩 웃음이 났다. 평소에는 아무리 가벼운 내용이라도 책은 책상 앞에 앉아 각을 잡고 읽는데, 『도련님』은 소파에 누운 나른한 자세로도 잘 읽혔다.

     

    『도련님』에는 별 특별한 사건이 없다. 100년도 넘는 과거의 한 일본 시골에서 일어나는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다고 이렇게 듣고 있는지 알 수가 없지만 계속 귀를 기울이게 했다. 서사에도 문장에도 불필요한 힘을 쓰고 있지 않아 독자도 힘을 빼고 갈 수 있었다.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은 읽는 사람을 둘러싼 공기에 기류를 일으켰다. 그 기류가 흔쾌하고도 나직해서 기꺼이 내 공간에 계속 청하고 싶어지고, 그 안에 정신을 파묻게 된다.

     

    『도련님』을 읽고난 직후 바로 『마음』을 주문했다. 나쓰메 소세키의 활동 시기는 10년 밖에 되지 않는다. 그 짧은 기간에서도 『도련님』이 초기작이라면 『마음』은 후기작이다. 전자는 해학적이고 후자는 다소 무겁다. 1인칭 화자도 후자 쪽이 조금은 조숙하다. 그래도 이 두 작품에는 공통점이 있다. 세상과 인간사 천태만상을 바라보는 화자들은 일치된 지향을 갈구한다. 둘 다 대학을 갓 졸업한 20세기 초반의 인텔리로, 세상의 때가 덜 묻어 있고 맑은 직관을 지녔다. 그 직관은 세상의 평판과는 다르더라도 진정하게 추구할 가치가 있고 아름다우며 진실된 것이 무엇인지를 좇는다.

     

    그 직감이 나중에 나에게만은 사실로 입증되었기 때문에 나는 너무 어리다는 말을 들어도, 바보 같다는 비웃음을 당해도, 아무튼 그것을 내다본 자신의 직감을 미덥고 기쁘게 생각한다. 인간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 그러면서도 자신의 품으로 들어오려는 사람을 손을 벌려 안아줄 수 없는 사람, 그가 바로 선생님이었다.”

     

    소설 『마음』의 선생님은 현실에는 없을 것 같은 고귀한 인간 정신과 마음의 문학적 형상화였다. 세상의 부박함 속에서 인간의 마음은 그리도 먼 지표를 그리워하기에, 우리는 문학의 허구 공간 속에서나 구체화할 수 있을 이런 인물을 간절히 필요로 하는 것인지 모른다.

     

    작품 속 화자가 엄준한 자기 반성으로 깨끗해지고자 하는 존재인 선생님을 찾는 마음은, 어쩌면 내가 문학을 꾸준히 읽으며 그 속에서 그런 대상을 구하려는 마음과 같았다. 세속의 입지에 득 될 것은 없지만, 고결한 정신을 찾아 그에 감화하고자 하는 마음이다. 세속의 잣대를 초월해서 고도로 반성적이며 고상한 인격을 극단까지 추구하는 인물들은 용기와 위안을 준다. 마주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을 정화하고 고양시킨다.

     

    작가와 작품이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소세키의 소설 속에 그려지는 인물들과 시선들을 보면 이 작가 역시 매혹적이고 품위 있는 정신을 가진 사람이었으리라는 믿음이 든다. 그래서 일단 그를 만나게 된 연후에는, 그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찾아 듣게 된다.

     

    나는 지금 스스로 자신의 심장을 가르고 그 피를 자네의 얼굴에 끼얹으려고 하네. 내 심장의 고동이 멈췄을 때 자네의 가슴에 새로운 생명이 깃들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네.”

     

    『마음』의 선생님이 화자에게 한 말이다. 이야기와 문학이 하는 일은 고귀한 정신이 잊혀지지 않도록 그 정수를 생명처럼 이어가는 일일 것이다. 코로나 1차 백신 접종의 후유증은 우리가 문학을 읽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나름의 답 하나를 내리는 가운데 서서히 나아져갔고, 『마음』 속 인물들과의 깨끗한 조우 속에서 내 기력도 다시 회복되어갔다.

     

    이후 추석 연휴 기간 동안 『풀베개』를 마저 읽은 후, 『그 후』와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구입하려다가 그만 두었다. 더 힘들다는 백신 2차 접종을 대비해야 하니까. 그리고 살면서 어느 몽롱하고 무기력한 날이 오면 다시 소세키의 소설을 벗 삼을 수 있도록 아직 읽지 못한 작품도 남겨두어야 할테니까.

     

     

    책의 몸 사이로[路]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은 2013년 출간 직후부터 고아한 디자인으로 화제를 모았다. 8년 지난 지금 다시 봐도 여전히 기품 있으며, 활력을 잃지 않고 신선하다. 가벼운 디자인 이슈에 그치지 않은 채, 고전의 성격을 갖추어 가고 있다고 보인다.

     

    사진.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중 『도련님』과 『풀베개』, 그리고 살짝 보이는 『마음』.
     

    『도련님』은 연잎과 개구리와 바쇼의 하이쿠가 안료박인 무광 먹박으로 찍혔다. 이 광채 없는 검은색을 배경으로 한 제목 상자 속 마분지의 크림색과 전체 바탕의 녹청색 및 직물의 재질감이 아름다운 대비를 이룬다. 제목 부분에만 마분지 본연의 질감과 색감이 그대로 드러나는데, 이 뒤를 연잎의 검정이 받쳐내는 대담한 콘트라스트 처리가 상쾌하다. 흰색과 검정색만으로 삽화를 그린 오브리 비어즐리(Aubrey Beardsley)나 신문 삽화 작업도 했던 요코 타다노리(尾忠則)의 담대한 흑백 화면 분할에서 얻어지는 종류의 쾌감이다.

     

    『풀베개』의 경우, 30쪽에 이런 내용이 있다. “짙은 갈색으로 그을린 찻잔 밑바닥에는 단번에 그려낸 매화 세 송이가 아무렇게나 새겨져 있다.” 무심한 내용이었지만 표지의 묘사와 일치해 독자로서는 은근한 발견의 기쁨을 느꼈다. 하지만 어쩌면 표지의 문장 중 ‘향기로운 풀은 바퀴 자리에 자라고’와 어울리도록 만든 문양일지도 모르겠다.

     

    나쓰메 소세키는 평소 그림을 그리며 하이쿠 짓기를 즐겼다. 이런 풍모는 소설 『풀베개』에 잘 드러난다. 나윤영 디자이너는 여기 착안해 전집이 한 편의 시(詩)가 깃든 화첩으로 보이도록 구상했다. “독자가 책을 덮은 후 표지를 바라보고 내용을 떠올리며 고요해지는 순간이 오기를 바랐다”고 했다.

     

    책 전체를 살펴보면 양장 커버의 마분지, 면지 및 화보의 아이보리 색지, 그리고 본문의 클라우드로 이어지는 종이들의 미세하게 다른 미색과 질감, 잡티들이 고요한 향연을 벌인다. 시각보다는 촉각이나 후각같은 오감에 그윽하게 호소한다. 커버는 합지에 마분지를 씌운 양장으로, 두꺼운 합지를 뒤로 받쳐 탄탄해진 마분지의 까실한 표면에 손을 톡톡 대면 손끝의 촉각이 서걱거리는 청량한 소리를 불러낸다.

     

    한편, 디자인으로만 8년을 완상하다가 내용을 읽어보니 책의 디자인이 암시하는 나쓰메 소세키와 소설이 드러내는 나쓰메 소세키가 서로 다른 인격으로 느껴지는 바 있었다. 글과 사유로 만나는 소세키는 도회적이고 세련된 사람이었다. 기모노 입은 일본인 소세키와 양복을 입고 서구를 체화한 근대인 소세키는 늘 다양한 양상의 관계로 한 인격 안에 공존했다. 이 둘의 관계를 미학적으로 정립하는 일을 소세키는 항상 고민하며 의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 사람이 동시에 기모노와 양복을 걸칠 수는 없는 일이다. 일본인 나쓰메 소세키를 한국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시점에서, 이 책을 만든 담당자들은 기모노를 잘 갖춰 입은 용모 쪽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던 듯 하다. 책 디자인은 책의 모든 것을 담아낼 의무를 갖고 있지 않다. 여러 갈래 해석 중 편집자와 디자이너의 판단이 개입하며 어느 한 쪽에 용감하게 무게를 실을 때 힘이 갖춰진다. 그래서 우리는 고전이라 할만한 아름다운 디자인을 가졌더라도, 같은 책에서 또다른 새로운 해석을 여전히 기대할 수도 있다.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은 소세키가 일으키는 심상의 기류를 우리의 일상에 극진하게 공들인 선물처럼 실어 나르며 독자를 ‘책의 생각과 몸’ 양쪽 모두에서 기쁘게 한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