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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창남의 행간 속 사회] 왼손잡이 여인과 일사의 스냅샷관리자2021-10-28


     


    왼손잡이 여인과 일상의 스냅샷


    글_이창남(경북대 교수)

    「왼손잡이 여인」, 페터 한트케 저, 범우사, 2013
     

    밝은 대낮에 그 여인은 테라스의 흔들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뒤쪽 유리창에 소나무 가지가 투영되어 흔들거렸다. 여인은 몸을 흔들다가 팔을 쳐들었다. 무릎에다 덮개조차 덮지 않은 가벼운 차림으로. 그렇게 모든 사람들은 함께 모여 제나름의 방식대로 일상의 삶을 계속한다. 생각을 하기도 안 하기도 하면서 비록 모든 것이 노름에 걸린 엄청난 경우에도 사람들은 제각기 일상의 길을 걷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화젯거리가 될 것은 아무것도 없는 양 그렇게 계속 살아간다.”친화력에서

     

    괴테의 친화력에 나오는 이 대목은 독일의 전후 신예작가였던 페터 한트케가 왼손잡이 여인이라는 자신의 소설의 말미에 인용하고 있다. 실제 왼손잡이 여인이라는 작품은 출간 후 날개돋힌 듯 팔렸지만, 소설 안에 특별한 사건이나 이야기가 있는 것은 아니고, 한 여인을 둘러싼 일상의 면면들이 어떤 분명치 않은 주인공과 등장인물들의 내면의 이야기들을 암시하면서 전개되는 독특한 소설이다.

    201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트케는 전후 폐허가 된 독일에서 1947년 결성되었던 이른바 47 그룹의 사실주의적 서술 방식을 비판하고 작가의 언어와 상상력을 강조하면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작가이다. 이런 면면은 관객모독을 비롯한 그의 다른 작품들과 함께 왼손잡이 여인에서도 잘 나타난다. 가령

     

    그는 나를 파괴한다. 그는 자기 아내를 몽상가라고 말한다. 현재의 상태로 존재하고 싶어하는 것. 그것을 몽상이라고 부른다면 나는 꿈꾸는 여자가 되고 싶다.”

     

    이 왼손잡이 여인에게 사업가인 남편은 완전히 서로 다른 세계 속에 머무르고 있는 사람이며, 때때로 그녀의 욕망과 꿈을 이해하지 못하는 그로 인해 깊이 상처받는다. “현재의 상태로 존재한다는 것이 현실 세계에서는 불가능한 몽상이 되는 역설이 바로 이 여인의 상처를 통해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돈을 위해서, 성공을 위해서, 미래를 위해서 현재의 삶과 행복을 끊임없이 유예시켜야 한다는 현실세계의 강박이 바로 단순히 현재의 상태로 존재하고자 하는 이 여인의 소박한 희망을 파괴하는 것이다.

    그래서 작품은 별다른 의미를 부여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이는 현재의 일상들과 쇼핑백, 텔레비전, 안경 등과 같은 사물들이 주로 묘사되고 있고, 등장인물들 사이의 이야기들은 그 이면에 숨겨진채로 간혹 알 듯 모를듯한 방식으로 제시되고 있다.

     

    도대체 당신은 우리들이 남자와 여자라는 사실을 떠나서 우리들 사이에 무언가 따뜻함이 있었다는 사실이 생각나지도 않아 ?”

     

    남편 부르노는 그런 의미에서 여전히 그녀를 만나고 있지만 이미 그녀를 떠난 사람이다. 왼손잡이 여인의 항변은 바로 현재의 현존을 망각하는 시대의 흐름에 대한 경고이다. “우리들은 흘러가고 있는 이 세상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그 누군가를 필요로 하거든. 간단히 말해서 좀 이상한 사람 말이야

    우리의 삶은 멈추면 이상한 사람이 되는 흐름 속에 내맡겨져 있다. 바로 이러한 문제를 한트케의 현재적 일상의 편린들에 대한 때로 좀 터무니 없어 보일 정도로 자세하고, 불필요해 보이는 묘사는 바로 그러한 흐름에 대한 저항의 목소리이며, 세속적 욕망의 족쇄가 된 시간을 잠깐씩 멈추게 하는 사진 스냅샷과 같은 그의 서술이 갖는 역설적 아이러니이다. 이 작품이 사람들을 정신적 강박과 현실의 두려움에서 자유롭게 만드는 힘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다.

    일상을 가볍게 생각하고, 정치적 사회적 거대서사를 우선시하는 국내 문학계의 경향을 고려할 때 이 작품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 사회의 저변에 흐르는 깊은 문제를 평범한 일상을 가벼운 터치로 묘사하면서 해소시키기 때문이다. 그 주인공 왼손잡이 여인은 이상한 여인이다. 그러나 그녀는 우리 독자들에게도 깊은 정신적 휴식을 선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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