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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재현의 트랜스크리틱] 법조인 전성시대, 진짜 귀한 법조인은 누구?관리자2021-11-25


    법조인 전성시대,
    진짜 귀한 법조인은 누구?


    글_권재현(저술가·前 언론인)

     

     
    「법정의 얼굴들」, 박주영저, 모로, 2021
     

    나는 고리타분하고 고지식한 법률가다. 내가 직접 마주치는 법의 세계는 아주 좁고 기괴하다. 그곳에서 법률가는 빠르게 흘러가는 세상이 파괴한 것들의 파편을 치우며 천천히 세상을 뒤쫓는다. 법과 재판이라는 영역을 벗어나면, 나는 평균 이하의 식견을 가진 사람이다. 법 밖의 세계가 얼마나 불공평한지 나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2019어떤 양형 이유라는 책을 통해 딴 세상에 사는 줄 알았던 핀사의 내면세계를 반성적 성찰로 풀어냈던 박주영 판사가 두 번째로 펴낸 법정의 얼굴들에서 밝힌 진솔한 자화상입니다. 스스로 한계를 명확하게 인식하는 이런 판사가 많아진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왠지 현실은 반대로만 흘러가는 것 같아 야속하기만 합니다.

     

    이번 대통령 선거의 특징은 법조인 출신으로 점철됐다는 점입니다. 여당 후보로 최종 선출된 이재명 전 경기지사는 변호사 출신입니다. 경선과정에서 여당의 유일한 여성후보였던 추미애 전 법무장관은 판사 출신입니다. 야당 후보로 뽑힌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검사 출신이고, 마지막까지 경쟁했던 홍준표 의원과 원희룡 전 제주지사도 검사 출신입니다. 중도 탈락한 최재형 전 감사원장은 판사 출신입니다.

     

    돌이켜보면 지난 대선의 양당 후보 역시 법조인 출신이었습니다. 대선에서 승리한 문재인 대통령은 변호사 출신이고 2위로 고배를 마셨던 인물이 검사출신 홍준표 후보였습니다. 역대 대통령 중 법조인 출신은 노무현 대통령뿐이었음을 감안하면 법조인 출신 정치인의 대약진이라 부를만합니다.

     

    저는 법률을 다루는 전문가가 정치의 전면에 나서는 것을 결코 바람직한 현상이라 보지 않습니다. 법을 다루는 사람은 공평무사함이 생명과 같아야 하는데 정치에 뛰어드는 순간 그 덕목을 팽개칠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법조인 출신 정치인이 많아지면 법조계 역시 정치바람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논란을 불러일으킨 판사사찰 문제 역시 법조계가 정치의 입김에 휘둘렸기에 발생한 것 아니었던가요?

     

    최고 권력자 자리로 법조인이 몰리는 현상과 한국사회의 병폐를 드러낸 대장동 사건이나 고발사주 사건이 본질적으로 법조인 게이트라는 점을 분리해서 바라볼 수 있을까요? 권력과 부패, 동전의 양면에 모두 법조인의 얼굴이 새겨져 있음을 한국사회는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민주사회에 필요한 법조인은 과연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사회에서 법조인은 엘리트의 대명사였다. 법조인하면 똑똑한 사람이라는 고정관념이 강고했습니다. 심지어 군사정권 시기에도 육법당이라 하여 총구로 권력을 잡은 육사 출신 곁에 늘 서울대 법대 출신이 있다는 쓰디쓴 풍자를 벌써 잊은 것일까요? 그러다 민주화가 이뤄지자 사회 곳곳에서 보이지 않게 활동하던 법조인들이 정치의 전면으로 나서고 그와 맞물려 각종 부패와 비리의 숨은 주역으로 떠오르고 있는 셈입니다.

     

    문제는 그렇게 전면에 부상하는 법조인의 자아상과 국민의 법조인상 간의 괴리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이분법적 진영론과 당파주의가 극성을 부리면서 정치적 문제를 사법적 판단에 맡기려는 정치의 사법화가 가속화하면서 정치적으로 각성된 국민이 법조계를 바라보는 시선이 매서워졌습니다.

     

    이와 함께 주권자인 국민의 상식과 괴리된 법조계의 판단과 관행에 대한 불만과 비판의 목소리가 점점 더 커지고 있습니다. 검찰의 억압적 수사권과 자의적 기소권 남발과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세간의 비판에 아랑곳 않는 형평성 떨어지는 법원의 판결이 맹비판을 받고 있지만 법조계의 자정노력은 공염불에 그칠 때가 더 많습니다.

     

    왜 그러는 걸까요? 법조계라는 우물 안에서만 잘난 개구리들이 많아서입니다. 그 우물 안에 세상에서 제일 잘난 개구리들이 살고 있기 때문에 그 안에서 인정받는 게 최고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판사들은 국민의 눈초리보다 동료 판사들의 시선을 의식하기 바쁩니다. 그래서 튀는 판결을 하지 않으려고 몸을 사리기 바쁩니다.

     

    박주영 판사 역시 아주 다르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1심에서 증거불충분으로 고심을 거듭하다가 유죄판결을 내린 강간범이 2심에서 무죄로 풀려난 뒤 비슷한 범죄를 다시 저질러 징역 13년형을 언도받았다는 사연을 전할 때 정도를 제외하면 혹시라도 동료판사가 서운하게 들을까 말조심하는 기색이 역력합니다. 해당 사안에 대해서도 2심 판사를 배려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의 글에는 법조계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따뜻한 성찰 가득한 글을 만나게 됩니다. ‘그들만의 리그에 산다고 생각했던 판사들이 1년에 700건 안팎의 판결을 처리하는 격무에 시달리는 착한 범생이들이라는 점을 일깨워줍니다. 또 힘없고 약한 사람들의 편에 서기 위해 남들은 기피하기 급급한 가정법원 소년부 업무를 계속 자원하거나 과도한 업무량을 이기지 못해 항상 손을 잡고 양치질하던 아들을 두고 순직했던 엄마 판사의 가슴 뭉클한 사연에 절로 자세를 바로 잡게 해줍니다.

     

    무엇보다도 그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우물 밖과 소통하려는 노력을 잠시도 멈찌 않는 판사입니다. 그래서 과거 자신이 저질렀던 실수와 과오도 고백하고 책을 읽고 영화를 보며 새롭게 깨달은 사실도 빼곡히 털어놓습니다. 특히 성범죄자의 99%가 남자이며 여성피해자의 비율이 94%나 되는데도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을 여성혐오범죄가 아니라고 강변하는 주류 한국사회의 허위의식을 통타하는 대목이 압권입니다. 과거 성범죄 피해의 참혹함을 부각시키겠다는 생각에 성폭력은 영혼을 살해한다고 자신이 썼던 표현을 썼던 것을 사과하고 성범죄 피해자와 연대 차원에서 관련재판을 방청하는 방청연대의 활동이 판사들의 태도변화를 가져온다고 솔직히 인정할 때는 마음 속 갈채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법정에 서는 사람들은 혹시라도 재판관계자에게 의도치 않은 상처를 줄까 전전긍긍하는 박주영 판사 보다는 솔로몬처럼 현명한 판결을 내리는 판사를 선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모든 판사가 솔로몬이 될 수 없다면 한 명의 솔로몬보다는 수백 명의 박주영을 키우는 것이 민주사회가 가야할 길이 아닐까요?

     

    책을 덮으면서 피해자와 가해자를 서류상으로만 인식하고 판정하는 인공지능(AI) 판사 대신에 아무리 힙겹더라도 피해자와 가해자의 슬픔과 고통이 어린 얼굴을 응시할 줄 아는 인간적 판사가 여전히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불어 우리의 일상을 타파하기 위해 저 높은 곳을 지향하는 법조인이 아니라 우리의 평범한 일상을 묵묵히 지켜주는 우직한 법조인이 더욱 대접받는 세상이 하루빨리 오기를 꿈꿔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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