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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헌의 웃음의 원천, 희극의 뿌리를 읽다] '소크라테스'의 학교에 불이 났다! -아리스토파네스의 <구름> 읽기-관리자2021-11-25


    '스크라테스'의 학교에 불이 났다!
    - 아리스토파네스의 <구름> 읽기-


    글_김헌(서양고전학자)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전집1」, 아리스토파네스 저/천병희 옮김, 숲, 2010

     

       그들은 가르쳐준데, 누구나 돈만 낸다면 말이야,

    말해서 이기는 법을, 옳은 경우든, 그른 경우든. (98-99)

     

    사람들이 그러는데, 저들에겐 두 논변이 있대,

    무슨 주제든, 더 강한 논변과 더 약한 논변이.

    그 두 가지 논변 중에 하나, 더 약한 논변은

    사람들이 그러는데, 그른 것도 말로 이기게 한대.

    그러니 만약 네가 날 위해 그른 논변을 배운다면

    너 때문에 지금 내가 갚아야 할 그 빚들 가운데

    한 푼도 아무에게도 난 갚지 않아도 된단다.(112-118)

     

    기원전 423, 소크라테스가 세운 학교에 불이 났다. 물론 진짜 불이 난 것은 아니다. 디오뉘소스 극장 무대 위에서이다. 실제 소크라테스는 거리에 나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철학을 설파했을 뿐, 학교를 운영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아리스토파네스는 가상의 공간 속에다 상상의 학교를 세우고 그 자리에 소크라테스를 앉혀 놓았다. 당시 소크라테스는 마흔 여섯, 아리스토파네스는 스물두 살의 약관의 나이었다. 객석에 분명 소크라테스도 있었을 것이고, 공연 전에 이미 입소문이 났을 터였다. ‘이번에 젊은 작가 하나가 소크라테스를 완전히 뭉개버리는 작품을 발표한다면서?!’ 소크라테스도 자신이 무대 위에서 어떤 모습으로 그려질지 몹시 궁금했음에 틀림없다.

    무대는 아테네 외곽에 사는 한 농부의 집이다. 빚에 시달리는 부자가 나오는데, 아들은 태평하게 잠을 자는 반면, 아버지는 뭔가 큰 고민 때문에 밤새 잠을 설쳤다. 갚아야 할 빚 때문이었다. 아들은 온갖 멋을 부리면서 말을 타는 일에 정신이 쏙 팔려 있다. 좋은 말이 들어왔다는 소문만 들리면 빚을 내서라도 그 말을 사들였다. 아들 이름이 페이디피데스’ ‘말을(hipp-) 관리하는(Pheid-) (-idēs)’라니, 이름이 그 녀석의 삶을 그렇게 만든 것일까? 아버지는 쌓여가는 빚더미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렇다고 빚을 청산할 대박을 칠 방법도 없다. 그럭저럭 먹고 사는 농부였으니 말이다. 게다가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한창이었으니, 농사도 망가지기 일쑤였다. 아들이 말을 타고 전쟁터에 나가 활약하고 상을 받아온다? 꿈도 못 꿀 일이다.

    고민하던 그가 장안을 떠도는 소문에 솔깃했고 마음이 팔랑팔랑 움직였다. 소크라테스의 학교에선 말솜씨를 가르치는데, 그걸 배운다면 어떤 소송에서도 이길 수 있다는 것이었다. 만약 자신이나 아들이 소크라테스의 제자가 되어 더 약한 논변’, 논리적으로는 정론에 비해 약하지만 교묘한 논변으로 정론을 이겨내는 논변을 배우게 된다면, 그래서 마땅히 갚아야 옳은 빚을 갚지 않고도 소송에서 이길 수 있게 된다면, 빚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고 잔머리를 굴린 것이다. 이 사람 하는 짓도 그 이름 그대로다. ‘스트렙시아데스이리저리 생각을 굴리는(Strepsi-) ’, ‘귀가 얇아 쉽게 마음을 바꾸는 변덕스런 팔랑 귀라는 뜻이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소크라테스가 그런 궤변, 말의 사기술을 가르친다고? 우리가 아는 소크라테스와 너무 다르다.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의 무지를 깨치고, 함께 진리를 찾아가자고 역설하던 철학자가 아닌가? 그런데 무대 위의 소크라테스는 그런 모습이 아니다. 첫 등장부터 우스꽝스럽다. 광주리 같은 것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오지 않는가! 그리고 하늘을 향해 기도하면서 구름의 여신들을 부른다. 구름의 여신들? 관객들에게는 그야말로 듣도 보도 못한 신이다. 잠시 후, 구름의 신들이 등장하고, 소크라테스는 요란스럽게 소개한다. 제우스나 아폴론과 같이 아테네 사람들이 섬기는 신들은 모두 가짜며, 진정 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구름의 신들이라고 외친다. ‘천둥을 울리고 번개를 내리치며 비를 내리는 것은 제우스가 아니라 바로 구름의 여신들이오. 제우스는 가짜고, 진짜는 구름여신들이지요. 구름은 변화무쌍한 힘을 가지고 원하는 대로 모습을 바꿀 수가 있소. 그러니까 당신도 구름과 같은 현란한 재주를 가지면, 거짓도 진실처럼 보이게 만들 수 있고, 당신이 원하는 대로 사람들이 믿게 만들 수가 있소. 구름여신을 섬기시오. 그들은 위대한 권능으로 인간들에게 판단과 토론과 이성을 주십니다. 허풍과 수다와 기만과 호소력을 주십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을 품고 있는 카오스, 하늘을 자유롭게 떠다니는 구름여신들, 그리고 혀, 우리는 이 셋만을 진정한 신으로 모시고 있소. 그 이외에 다른 어떤 신도 믿지 않소.’ 소크라테스는 당대 희한한 논리를 펴며 아테네를 주름잡던 소피스트들도 다 구름여신의 가호를 받고 있다고 알려준다.

    소크라테스에게 홀랑 넘어간 팔랑 귀 스트렙시아데스는 당장 소크라테스의 제자가 되겠다고 선언한다. 공부를 하다 못 따라가 쫓겨날 판이 되니, 아들을 끌어다가 대신 집어넣는다. 소크라테스는 아버지에게 아들을 능수능란한 소피스트로 만들어주겠다고 호언장담한다. 마침내 소크라테스는 약속을 지켰다. 공부를 끝낸 페이디피데스는 천하무적의 논변가가 되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교육을 마친 아들은 아버지를 만나자 어깨에 힘을 빡 주더니, 아버지의 은혜에 감사하기는커녕, 건방진 말투로 무식한 아버지를 무시한다. 괘씸하게 여기며 아버지가 혼을 내자, 아들은 절대 굽히지 않고 바득바득 대든다. 급기야 아들은 손찌검까지 한다. 아버지를 사정없이 때리더니 넘어진 아버지를 밟기도 하고 올라타서 목까지 조른다. “아버지도 제가 어릴 적에 저를 때리셨지요? 이젠 제가 아버지를 때리는 거예요.” 아버지는 아들에게 사랑의 매였다고 항변하자, 아들은 자신도 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아버지 잘 되라고 때리는 것이라고 맞받아친다. 게다가 어머니도 예전에 자신을 때렸으니, 어머니도 패야겠다며 무대를 빠져나간다.

    아들에게 폭행을 당하고 분하고 화가 난 스트렙시아데스는 자식을 망친 학교를 없애버려야겠다며 학교에다 불을 질렀습니다. 망할 놈의 학교, 다 없어져 버려라! 활활 타오르는 학교에서 연기를 뚫고, “아이고, 이거 큰일 났네, 숨 막혀 죽겠네.” 허둥대며 소크라테스와 그 제자들이 뛰쳐나온다. 그들을 밖에서 기다리던 스테렙시아데스와 그의 하인이 쇠스랑을 들고 뒤를 바짝 쫓아간다. 망할 놈의 소크라테스, 어디 너도 당해봐라! 쫓고 쫓기는 아수라장이 되면서 희극은 끝이 난다. 그러나 작품의 여파는 대단했다. 그로부터 약 30여년이 흐른 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의 전통적인 신을 믿지 않고 이상한 신을 끌어들이며, 아테네의 청년들을 타락시킨다는 죄목으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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