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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수의 책으로 읽는 세상] 시민 삶을 변화시키는, 가장 효율적인 사회적 인프라는?관리자2021-11-25


     

    시민 삶을 변화시키는,
    가장 효율적인 사회적 인프라는?


    글_이정수(사서, 서울도서관장)

    「도시는 어떻게 삶을 바꾸는가」, 에릭 클라이넨버그 저/서종민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2019
     

    어른도 아이도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이, 어른이 아이에게 익숙해질 필요가 있듯이, 아이도 많은 공간과 장소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공간의 변화는 생각의 변화, 소통의 변화, 삶의 변화를 가져온다는 것

    얼마 전 어느 도시에서 공공도서관이 개관했다. 도서관 문 열기를 손꼽아 기다린 시민들은 부푼 기대를 안고 방문하였고, 벽면 한 곳에 저렇게 멋진 소감을 남겼다. 도서관 개관식이 있던 날 밤, 6 여 년 동안 도서관 건립 실무를 총괄했던 사서는 프로젝트를 잘 끝내고 홀가분할 줄 알았는데, 시민들의 이런 저런 민원성 요구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이렇듯 훌륭한 메시지를 남겨놓은 그 도시의 시민들은 도서관이 자신의 삶에 어떤 의미인지 정확히 알고 있을 것이며, 시민들의 다양한 요구가 쇄도하였다는 것은 그만큼 도서관 역할에 대한 기대가 크다는 것의 반증일 것이다. 그 도서관이 앞으로 어떻게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킬까 사뭇 궁금해진다.

    에릭 클라이넨버그 뉴욕대 교수의 저서 <도시는 어떻게 삶을 바꾸는가>에도 도서관 얘기가 꽤 많이 나온다. 폭염을 사회적 재난으로 풀어낸 <폭염사회>의 저자인 그는 어느 날 뉴욕 동쪽의 브루클린의 공공도서관 커뮤니티 룸에 모여 볼링 경기를 하는 9명의 중․노년층의 주민을 보았다. 브루클린은 뉴욕에서도 가장 폭력적이고 범죄 발생률이 높아 사회학자들은 이곳을 고립된 지역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그 역시 흥미로운 시선으로 이들을 지켜보았다. 주민들은 떠들고 웃으며 경기를 즐겼고, ‘서로 거의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 동네를 하나의 공동체로 만들어가는광경을 보고 그는 충격을 받았다. 이것이 저자가 사회도 건물처럼 설계할 수 있다고 믿게 된 계기이며, 사람들이 어떤 환경의 공간에서 살 때 서로 잘 지내고, 관계를 잘 맺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되었다고 한다.

    에릭 클라이넨버그는 이 책에서 도시의 사회적 인프라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사회적 인프라는 사업․하부구조․기반 등 하위요소를 통칭하는 단어로 정의하며 사람들이 교류하는 방식을 결정짓는 물리적 공간 및 조직이다. 일반적으로 대중교통, 전기와 가스, 상하수도, 난방 및 통신 등의 필수요소를 사회적 인프라로 여겨왔다. 그러나 저자가 강조하는 사회적 인프라는 사람이 모이는 공간, 안전한 장소, 함께 배우는 곳, 건강한 유대가 이루어지는 자연의 터전처럼 시민들의 사회적 관계가 연결되는 곳을 일컫는다. 도서관, 학교, 놀이터, 공원, 체육시설 같은 것부터 주민 쉼터, 공동체 텃밭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을 공적 영역으로 초대하는 시설을 모두 아우른다. 나아가 레이 올든버그가 말한 제3의 장소, 독일의 비어가르텐, 프랑스의 카페, 일본의 이자카야 등은 사람들이 집처럼 편안해하는 작고 안락하며 친절한 공공장소가 되어 구경꾼인 사람들을 참가자로 끌어들이는 힘이 있다고 하였다.

    저자는 깨진 유리창이론을 이야기하며 펜실베니아 대학 교수 브라나스와 맥도널드의 실험을 예로 들었다. 펜실베니아는 너무나 칙칙해서 콘크리트 도시라고 불렸으며, 버려진 건물이 2,356채나 달했었다. 그들은 도시의 땅을 고르고 풀밭과 나무를 심어 공원을 만들고, 버려진 건물도 복원하였다. 소규모지만 녹지를 조성하니 사람들의 스트레스 지수가 낮아져 범죄율이 떨어졌다. 버려진 건물 주변에 텃밭을 만들었더니 주변에서 일어나는 총기 사건이 39%나 줄었다고도 한다. 이런 예는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동네 골목에 누군가가 쓰레기를 버리는 것을 방치하면 너도 나도 쓰레기를 버리게 되지만, 쓰레기 더미를 치우고 꽃을 심어두면 아무도 쓰레기를 버리지 않고 오히려 꽃에 물을 주고 돌보게 된다.

    책 전반부에는 도서관과 녹지의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가 끊임없이 나온다. 도서관과 녹지는 도시의 주민들에게 어떠한 대가도 바라지도 않고 요구하지도 않는다.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휴식과 평화를 선물하며, 잘 알지 못하는 마을 사람들과 우연한 마주침을 기대할 수도 있다. 부모의 돌봄이 부족한 아이들, 소일거리가 없는 노인들 그리고 노숙자까지도 도서관과 마을의 공원은 어떤 조건 없이도 문을 열어준다고 하였다.

    자치구 공공도서관에서 일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당시 분관으로 작은 규모의 어린이도서관을 운영하였었다. 그 도서관은 주택가 좁은 골목 가운데 있었고, 동네 아이들은 도서관에 친구나 동생 손을 잡고 와서 책을 읽으며 놀았다. 아이들이 부모님과 멋진 승용차를 타고 와서, 영어책을 잔뜩 빌려가는 모습이 흔했던 본관 도서관과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아이들은 도서관 여기저기를 활개치고 다니거나, 도서 대출대 앞에서 사서선생님들에게 폭풍 질문을 하고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신이 나서 하였다. 도서관은 정숙한 공부방이 아닌 놀이터였고, 즐거운 만남의 장소였다. 맞벌이하는 부모님에게는 자녀를 안심하고 보낼 수 있는 곳이었고, 독서와 학습에 도움을 받는 장소이기도 했다. 그런 도서관이 고마웠던 부모님들은 개관기념일이면 먹을 것을 손수 장만하여 마을축제를 열어 주셨다. 이것이 마을의 작은 공공도서관이 주민들 삶에 깊숙이 파고들어 삶을 변화시키는 증거이다. 한 도시에서 도서관의 존재는 이렇게 중요한 사회적 인프라인 것이다.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들, 사회적 인프라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미 있는 인프라를 어떻게 잘 운영할 것인지는 더 중요하다. 도시민들이 고립에서 벗어나 연결을 통해 삶의 품격을 높일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사회적 인프라, 불평등과 고립, 분열과 양극화를 극복하고 민주적 교류가 가능한 사회적 인프라의 최고봉은 공공도서관이 아닐까싶다.

    2022년에는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가 있는 해이다. 내년에도 각 후보들은 무분별(?)하게 공공도서관 건립을 공약으로 내걸지 궁금하다. 대통령이나 지방단체장, 지방의회 후보자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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