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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마의 변경에서 책 읽기] 이중의 수치심을 넘어 계급으로 돌아가는 길관리자2021-11-25


    이중의 수치심을 넘어 계급으로 돌아가는 길


    글_조형근(사회학자)

    「랭스로 되돌아가다」, 디디에 에리봉 저/이상길 옮김, 문학과지성사, 2021
     

    19685월의 프랑스 파리는 뜨거웠다. 물론 모두 그랬던 건 아니다. 가톨릭 도덕주의와 동성애 성향 사이에서 방황했고, 나치 점령기에는 반유대주의에 가담하기도 했던 소설가 마르셀 주앙도는 그 열기가 달갑지 않았다. 거리를 행진하는 학생들에게 외쳤다. “집으로 돌아가세요! 20년 뒤에 당신들은 모두 공무원이 될 테니까.” 미셸 푸코의 전기작가로 잘 알려진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사회학자 디디에 에리봉이 자전적 저작 <랭스로 되돌아가다>에서 전하는 일화다. 에리봉은 그 시기를 지나며 트로츠키주의 고등학생이 되었고 평생을 좌파로 살았다. 그리고 주앙도의 예언에 대해 이렇게 회고한다. “그 학생들은 공무원은 아닐지 몰라도 의심의 여지없는 유력자들이 되었다. 정치적·지적·개인적으로 높은 지위에 올랐고, 사회질서를 안락하게 여기며,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수호했다.”

    <랭스로 되돌아가다>를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나는 수치심에 대한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 책은 저자가 평생 품고 살았던 성적 수치심과 사회적 수치심, 이 이중의 수치심 사이의 길항과 화해에 대한 책이다. 이 두 수치심은 현대 프랑스 사회, 아니 (한국까지도 포함할) 서구사회 전반을 가로지르고 있는 핵심적 균열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 그의 수치심에 공감할 수 있다면, 우리는 지금 우리를 갈라놓고 있는 깊은 균열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책은 프랑스 북동부 랭스의 노동계급 가정 출신이자 동성애자로서 성인이 된 후 가족과 등지고 살아온 저자 디디에 에리봉의 자기분석적 기록이다. 그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 35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다. 이 귀향은 나 자신과의 화해, 내가 거부하고 내쫓고 부인했던 나 자신의 어떤 부분과의 화해의 시작이었다. 책에는 푸코와 부르디외, 그리고 사르트르와 알튀세르 같은 거장들의 이론적 시각이 녹아들어 있다. 하지만 이런 이론적 시각은 몰라도 아무 문제가 없다. 사실 이 책은 고상한 이론 따위 관심이 없는 사람들, 아니, 차라리 거기에 적대적이라고 해도 좋을 사람들에게로 되돌아가는 이야기인 것이다.

    에리봉은 노동계급의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스스로 말하듯 그는 모욕의 산물이자 수치심의 아들이었다.” 무슨 맥락일까? 14세가 되면 공장에서 일하는 게 당연한, 거칠고 폭력적이며 배타적인 노동계급의 문화 속에서 그는 공부를 좋아하는 이질적인 아이로 자랐다. 그가 중학교를 마칠 무렵 마침 의무교육이 16세로 연장되면서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된다. 아버지는 화를 냈다. “뭣 하러 애들이 좋아하지도 않는 공부를 억지로 계속하는 만드는 거야?” 어머니는 떨떠름해 했다. “네가 고등학교에 다닌다고 우리 위에 있는 게 아냐.” 그의 가족 중 유일하게 그 혼자 대학에 갔고, 다른 세계에 속하게 된다.

    그는 어쩌다가 이렇게 달라졌을까? 첫 번째 수치심 이야기가 나올 차례다. 그는 동성애자였다. 청소년기 어느 순간부터 자신이 뭔가 다르다는 걸 깨닫는다. 정체성을 온전히 깨닫게 되면서 게이 커뮤니티에 참여하게 된다. 그러나 랭스는 좁은 곳이었다. 모욕받고 낙인찍힌다. 거친 폭행도 당한다. 아버지는 게이 아들을 용납하지 못한다. 오직 공부만이 탈출의 길이었다. 게이 정체성을 가지고도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곳으로 가야만 했다. 그가 대학에 진학하고, 파리의 지식인 세계로 합류하게 된 데는 동성애자에게 부과된 가혹한 수치심, 낙인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절박한 요구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몰랐다. 자유를 찾아온 파리에서 또 하나의 수치심이 기다리고 있을 줄. 동성애자도 관대히 포용하는 부르주아 가정 출신 지식인들의 교양 넘치는 세계에서 그는 자신이 어쩔 수 없이 노동계급 출신이라는 수치심을 만난다. 그는 늘 주눅 들어 있었다. “그들을 닮기 위해, 그들처럼 타고난 듯 행동하기 위해, 미학적인 상황에서 그들만큼이나 느긋하게 보이기 위해서 노력을 기울였다. 말하는 법을 다시 배우는 것도 그 못지않게 필수적이었다.” 그들이 자연스레 몸에 익힌 것들을 그는 필사적으로 배워서 얻었다. 출신 이야기가 나오면 거짓말로 둘러댔다. 교양 넘치는 좌파 지식인들이 경멸하는 인종주의적 노동계급 출신이라고는 말할 수 없었다.

    바로 여기가 에리봉의 귀환이 단지 한 개인의 가족드라마를 넘어서는 지점이다. 돌아와 만난 가족들은 모두 극우 국민전선에 투표하고 있다. 사회당도 사이비라며 공산당만 찍던 이들이다. “나의 가족은 내가 지지하는 모든 것 ... 나의 전 존재(현실과 단절된 채 민중이 맞닥뜨리는 문제들에 무지한 파리 지식인)에 반대해 떨쳐 일어난 셈이다.” 어머니가 말한다. “좌파나 우파나 아무 차이가 없어. 모두 똑같은 놈들이야. 늘 당하는 사람들만 당하는 거지.” 이들이 느끼는 건 좌파에 대한 배신감이다. 갱신이라는 미명 하에 좌파를 좌파이게 했던 모든 것을 지우려 애써온, 이제는 높은 자리에 올라가 질서를 수호하는 자들이 된 좌파에 대한 치떨리는 배신감 말이다. 에리봉은 이들을 비난하지 않는다. “나는 국민전선을 지지하는 표가 부분적으로는 자신들의 집합적 정체성을 지키려는 서민층의 마지막 호소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항상 짓밟힌다고 느껴왔고, 이제는 한때 자신들을 대표하고 방어하던 자들에 의해서까지 짓밟히고 있다고 느끼는 이들의 존엄성을 수호하려는 호소 말이다.”

    암울한 심연 가운데서도 저자는 어떤 기억을 떠올린다. 출신과 관계없이 단결했던 685월 대파업의 기억이다. “프랑스 노동자든 이주 노동자든 동일 고용, 동일 투쟁이라는 슬로건이 기세를 떨치던 시절이다. 인종주의 자체는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일단 행동의 방아쇠가 당겨지면 이러한 악감정들은 사라지고 연대가 지배하게 된다. 어느 순간 좌파는 이 경험, 이 기억을 완전히 잊고 포기해버렸다. 그걸 되살리면 될까? 계급으로 돌아가야 하는 건 분명하지만, 답은 그 이상일 것이다.

    한국과 프랑스는 많이 다른 사회다. 한국에는 이 정도의 좌파도, 노동계급도 있어본 적이 없다. 하지만 구도만은 놀랍도록 비슷하다. 젊은 시절 민중과 혁명을 외치던 이들이 잘 나가는 강남좌파, 권력자가 되어 있는데, 양극화는 좀체 나아지지 않고 있다. 민중의 배신감이 차오르고 있는데, 한때의 혁명가들은 여전히 정의의 목소리로 외친다. 그 중 일부는 민중이 무지하고 탐욕에 젖어 보수를 지지한다며 비난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 몫으로 남은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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