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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재현의 트랜스크리틱] 옥시토신의 딜레마 극복하려면 ‘묘서동처’의 지혜가 필요해관리자2021-12-15


    옥시토신의 딜레마 극복하려면
    '묘서동처'의 지혜가 필요해


    글_권재현(저술가·前 언론인)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브라이언 헤어, 버네사 우즈 저/이민아 옮김, 디플롯, 2021

     

    2021년을 상징하는 사자성어로 묘서동처(猫鼠同處)’가 뽑혔다는 뉴스를 접하고 이 책이 생각났습니다. 물론 거기에 함의된 뜻은 서로 감시하고 견제해야할 사람들이 한통속이 돼 이권을 나눠먹는 한국적 현실에 대한 풍자입니다. 하지만 고양이와 쥐를 대척점에 놓인 관계로만 바라보고 그래서 그 둘의 평화공존을 우스꽝스럽게 여기는 발상이 과연 우리시대에 적합할까요? 만년 앙숙일 것 같던 톰과 제리도 천국에 가서는 둘도 없는 친구로 지내고 있다는데 말이죠.

     

    이 책의 저자 중 한명인 브라이언 헤어 미국 듀크대 교수의 성은 영어로 산토끼를 뜻하는 Hare입니다. 산토끼는 사냥개와 여우가 애호하는 사냥감입니다. 헌데 그런 이름의 주인공이 개와 여우의 친화력 연구를 발판 삼아 갈등과 경쟁이 아니라 공존과 협력이 인류의 발전의 원동력이라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상징적 의미에서 토구동처(兎狗同處)’라 부를 만 하지 않나요?

     

    책의 결론은 명확합니다. 현생인류가 번성하게 된 것은 머리가 좋아서도, ‘이기적 유전자에 충실해서도 아니고 친화력 넘치는 진화전략을 택한 것의 결과물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이 책의 영어 원제 'Survival of the Friendliest'에서도 확인됩니다. 우리말로 직역하면 가장 다정한 것 또는 가장 친절한 것의 생존입니다.

     

    이는 19, 20세기 다윈의 진화론을 대표하던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이란 비튼 것입니다. 적자생존은 현생인류가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은 것은 우생학적으로 완벽한 존재이기 때문이라는 함의를 담고 있습니다. 찰스 다윈이 1859종의 기원을 발표할 때는 없었던 표현입니다. 그러다 자연선택이란 말이 어려우니 사회진화론자인 허버트 스펜서가 1855심리학원리에서 사용한 적자생존으로 대신하는 게 좋겠다는 주변의 추천을 받고 5판부터 자연선택과 함께 사용하면서 유명해졌습니다.

     

    적자생존은 자연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개체의 우월성과 투쟁성이 강조됩니다. 반면 자연선택에는 그런 개체의 분투와 상관없이 우연적으로 결정된다는 의미가 담겼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대다수 진화론자들은 우생학적 개념에 물든 적자생존이란 표현을 쓰지 않습니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그런 회피 차원을 뛰어넘어 정반대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경쟁하고 투쟁하는 것보다는 공존하고 협력하도록 진화한 것 때문에 현생인류가 만물의 영장으로 불릴 수 있게 됐다는 겁니다.

     

    이는 인간만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눈짓과 손짓의 의사소통이 침팬지나 보노보에게선 불가능하지만 가축화의 길을 택한 개는 가능하다는 발견에서 시작합니다. 인간에 대한 두려움이 적은 여우만 짝짓기 시켜 몇 대가 지난 길들여진 여우도 역시 인간의 눈짓과 손짓에 반응함을 발견합니다.

     

    그 다음 가축화된 동물의 특징으로서 뇌가 작아지고 귀여움이 폭발하는 방향으로 진화한 것이 인간과 공존을 위한 것임이 밝혀집니다. 대다수 동물은 성체가 되면 다른 종은 물론 같은 집단 내 개체에게도 경계심과 공포심을 드러냅니다. 하지만 가축화가 된 동물은 그 두려움을 극복하고 인간은 물론 자기네 종의 성체에 대해 친근감과 협력심을 발휘합니다.

     

    유인원 중에서 보노보가 인간과 유사하게 상호친화성을 높이는 진화전략을 선택해 가축화된 다른 동물과 유사한 특징을 공유함을 재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 현생인류가 8만 년 전쯤부터 상호협력과 사회적 의사소통이 가능하도록 자기가축화의 진화전략을 선택했다는 가설에 도달합니다.

     

    이 과정에서 세로토닌(행복 호르몬)과 옥시토신(사랑 호르몬)의 역할이 새롭게 강조됩니다. 세로토닌이 많이 분비되면 수컷 성체의 특징이 유아화 내지 여성화합니다. 세로토닌은 두개골의 크기와 얼굴까지 작게 만드는데 그래서 늑대에 비해 개의 머리가 작지만 뇌세포의 밀도가 높아집니다. 이는 네안데르탈인과 현생인류에게도 고스란히 적용됩니다.

     

    그 결과 네안네르탈인은 덩치와 뇌도 컸지만 잘해야 10여명 정도만 군집생활이 가능했던 반면 현생인류는 개별적 능력치는 떨어져도 수천 만 명이 한 도시에 모여살 수 있을 정도로 사회적 지능이 월등히 높아졌다는 겁니다. 그래서 인류는 2세까지 개별 지능이 침팬지에 미치지 못하지만 4세 이후가 되면 협력적 의사소통을 통한 사회적 지능이 그 어떤 동물을 압도하게 됩니다.

     

    특히 사회적 지능을 높이기 위한 인간의 진화전략은 눈알을 감싸는 공막과 홍채가 드러나는 각막의 차이에서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대다수의 동물은 공막과 각막이 어두운 빛깔을 띠어서 자신의 눈빛을 감춥니다. 반면 인간의 공막은 하얗고 특히 홍채가 드러나는 각막은 투명해 자신의 붉은 홍채와 검은색 동공의 움직임을 다 드러냅니다. 서로의 눈빛을 읽게 하기 위함입니다. 다른 동물의 눈은 위장형인 반면 인간의 눈은 광고형이라고 저자들이 말하는 이유입니다.

     

    이렇게 친화력을 증진시키는 세로토닌의 유용성이 증가하면 위협감과 공격성을 증가시키는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유용성은 감소합니다. 대신 아기를 꼭 껴안을 때와 같이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옥시토신의 분비를 촉진하게 됩니다. 옥시토신이 많이 분비돼야 세로토닌이 자극을 받아 분비되기 때문입니다. 옥시토신은 보통 사랑의 호르몬이라 불리지만 저자들은 이를 어미 곰 호르몬이라고 부릅니다. 자신이 보호할 새끼 곰에겐 한없이 사랑스럽지만 이를 방해하는 존재에겐 무시무시하게 난폭한 존재로 돌변시키기 때문입니다.

     

    저자들의 통찰력은 이 지점에서 빛을 발합니다. 인간은 보노보처럼 사랑이 넘칠 떄도 있지만 침팬지처럼 난폭해질 때도 있습니다. 보노보가 천사라면 침팬지는 악마라 할 터인데 그 양자를 서성이는 존재가 된 이유가 바로 이 옥시토신 의존성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편이라 생각되는 존재에겐 천사같이 굴다가도 반대편이라 생각되는 존재에겐 악마처럼 돌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친화력 넘치는 진화전략을 택한 인류가 직면한 딜레마입니다. 그래서 같은 인간임에도 인종, 종교, 문화, 이념이 다른 사람들을 대량 학살하는 제노사이드가 가능해진다는 것입니다. 여기서부터는 사회와 정치의 영역인데 저자들은 과감히 여기에 뛰어듭니다. 그래서 교육을 통해 이를 해결하려하기 보다는 서로 다르다고 믿는 사람을 뒤섞고 만나게 하는 접촉을 늘리는 방식으로 이를 해결할 것을 제안합니다.

     

    저자들은 동물학과 인류학, 사회학, 심리학 연구를 넘나들면서 옥시토신을 사랑의 묘약이 아니라 증오의 독약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타인을 비인간화하는 것임을 일깨웁니다. 2차대전 기간 유대인을 숨겨주고 탈출시켜준 무수한 사람들의 유일한 공통점은 인생을 살면서 유대인을 인간적으로 대면한 경험이 한 번씩은 있었다는 점입니다. 적대시하거나 경멸하던 인간이 우리와 똑같은 존재임을 깨닫는 순간 그토록 증오의 독기를 내뿜던 옥시토신은 이타적 사랑의 묘약으로 전환될 수도 있습니다. 특히 반려견에 대한 사랑이 대단했던 헤어 교수는 사랑의 대상을 인간을 넘어 동물로 확대하는 것이 적대적 인간을 동물로 비하하려는 적대심리를 완화시켜주는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고 제안합니다.

     

    사실 이 책의 내용은 올해 초 출간된 뤼트허르 브레흐만의 휴먼카인드와 여러 지점에서 공명합니다. 실제 휴먼카인드에는 2016년 논문 형태로 발표됐던 이 책의 과학적 내용이 상세히 소개돼 있습니다. 심지어 반려견에 사랑이 대단했던 헤어 교수를 염두에 둔 듯 친화력 높은 인간을 호모 퍼피라고까지 명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휴먼 카인드보다 1년 뒤 출간된 이 책에는 그 내용이 제대로 반영돼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밀그램의 전기충격실험(1961)이나 스탠퍼드 감옥실험(SPE1971)의 문제점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보노보와 침팬지에 대한 프라스 드 발의 다양한 연구 성과가 간과돼있습니다. 드 발의 연구서는 참고문헌으로만 한두 차례 등장할 뿐입니다. 무엇보다 인류진화의 진짜 비밀이 친근감과 사회성을 높이기 위한 유아화 전략에 있음을 다양하게 설파했던 클라이브 브롬홀의 영원한 어린아이, 인간(2003)’에 대한 언급도 빠져있습니다. 저자들이 자신들의 발견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이전의 연구 성과를 제대로 아우르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입니다. 하지만 원래 유아의 특징이 나르시시즘이 크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상대적으로 젊고 어린 저자들이 좀 더 성숙해져서 토구동처의 지혜를 동료 인간으로까지 확장시켜 나가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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