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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동석의 천변만화(千變萬化)] 치매라는, 또 다른 세계에 대하여관리자2021-12-15



     

    치매라는, 또 다른 세계에 대하여


    글_장동석(출판평론가)
     

    「유배중인 나의 왕」, 아르노 가이거 저/김인순 옮김, 문학동네, 2015

     


    얼마 전, 절친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셨다. 92년 생을 사셨지만, 그이의 기억은 82년 생에서 멈췄고, 그 순간부터 모든 걸 잊으셨다. 누군가 질풍노도(疾風怒濤)의 시기라 했던 그때, 따뜻한 밥상을 내어주던 기억도, 세상 근심 모두 지고 사는 것처럼 불안했던 20대의 어느 날에도 스스럼없이 맞아주던 기억도 여전히 생생한데, 그이는 모두 잊었고, 이제 먼 곳으로 가셨다. 상가(喪家)에 앉아 친구와 두런두런 그 시절을 추억하다보니, 결국 기억이 우리 삶의 모든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이른다.

    오스트리아 출신 작가 아르노 가이거의 <유배중인 나의 왕>은 알츠하이머로 기억을 잃은(더불어 잃어가는) 아버지의 삶을 담담하게 전하는 자전적 소설이다. 작가는 아우구스트, 친구 사이에서는 구스틀이라고 불렸던 아버지의 삶이 무너지기 시작한 순간을 이렇게 묘사한다. “우리는 사람 탓을 했는데, 알고 보니 원인은 병이었던 것이다.” 사실 아버지는 다소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192610남매 중 셋째로 태어난 아버지는 열일곱 나이에 징집되었다. 오스트리아를 합병한 나치 독일은, 한 러시아 시인의 표현을 빌리면, “아이도 아니고 어른도 아니었으며 군인도 아니고 민간인도 아니었을 소년들을 무차별 징집했다. 아버지도 그중 하나였고, 전장(戰場)에서 갖가지 어려움을 겪었다. 집으로 돌아온 열아홉 아우구스트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당시에는 아무도 몰랐다. 그 열아홉 살 소년이 세상을 향해 다시 마음을 열지 않으리라는 것을, 그것은 영영 지나간 일이라는 것을.”

    까칠한 아버지였으니, 아버지의 적잖은 변화에도 자식들은 치매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어처구니없는 소리로 들리겠지만, 아버지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감히 생각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병은 아버지에게 그물을 던져다.” 그것도 교묘히 눈에 띄지 않게말이다. 세상 모든 병이 그렇지만, 특히 부모의 치매는 알고 나면 자식들로서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과 같다. 작가는 이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어린 시절에는 누구나 부모님이 강인하고 삶이 무엇을 요구하든 의연하게 버틸 거라고 믿기 때문에 다른 사람도 아닌 부모님이 약해지는 모습을 보는 것은 참으로 견디기 힘든 일이다.”

    <유배중인 나의 왕>은 치매 부모를 보호하는 자녀들이라면 고개를 주억거릴 만한 일들이 제법 여럿 등장한다. 작가의 아버지도 번번이 다른 사람들이 뭔가를 빼앗아가거나 훔쳐갔다고 역정을 냈다. 집착도 남달랐다. 작가의 아버지는 집 가까이 있는 자작나무에 집착했는데, “돌풍 로타르의 강공으로 삐딱하게 기운 그 나무가 다음 폭풍을 견뎌낼까 아니면 집을 덮칠까하루 수십 번도 더 물었다. 아버지는 서서히 더 많은 기억을 잃었다. 급기야 누가 문패를 훔쳐서 여기다 갖다 붙여놨어라고 말할 정도였다. 아버지는 자신이 평생 살아온 집에서 탈출하고 싶어 했다. 아버지의 이해 불가의 삶은, 그래도 가족들에게 적잖은 가르침을 주기도 했다.

    어디서도 편안함을 느낄 수 없는 무능력은 병과 더불어 아버지가 어딜 가든 따라다녔다. 아버지는 병에 결렸고, 그 병이 장소를 인지하는 능력을 좌지우지하고 있음을 간파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동안 가족은 집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어떤 것인지 하루도 빠짐없이 목격했다.”

    작가는 종종 아버지가 일부러 나를 못살게 구나싶었던 적도 있다고 한다. 방송사에서 찾아와 인터뷰를 하는 와중에, 아버지는 작업실에서 망치를 두드렸다. 이럴 때는 애처로운 마음도 사라진다. 한번은 욕심에 겨워 결혼식 피로연 음식을 배가 터지도록 먹고 그것도 모자라 케이크를 열 조각인가 열다섯 조각을 게걸스레 먹어치우고서끝내 탈이 났다. “이러다 죽는 거 아니냐며 아버지는 두려워했지만, 그때만큼은 아버지를 딱하게 여기는 사람은 없었다.

    작가는 아버지와의 담담한 삶을 전하면서, 치매가 갖는 사회적 삶의 방식도 언급한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발현하는 치매는, 주변 사람들의 조언이 도움이 되긴 하지만, 전적으로 의지할 수도 없다. “치매 환자는 천차만별이어서 일반적으로 말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치매 환자의 본성을 헤아리기는 어려우며 치매는 환자마다 제각각 능력과 감정, 병세가 다른 특수한 병이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이들을 일률적인 방식으로 대우하곤 한다. 그들은 기억이 사라졌을 뿐(혹은 사라지고 있을 뿐) 여전히 우리의 부모이며 한 인격인 데도 말이다. 작가는 알츠하이머가 분명 이득은 아니었지만적어도 자식들과 손자들에 어떤 교훈을 주는 것은 맞다고 말한다. 나이가 들고 힘이 빠져 더는 줄 게 없어도, 적어도 늙고 아픈 것이 어떤 것인지는 알려줄 수 있다는 것이다. 약하고 아픈 곳이 우리 몸의 중심이듯, 치매를 포함한 모든 병을 앓는 이들이 우리 눈에 있어야 한다.

    작가 아들이 아버지를 좀더 이해하게 된 것은 지하 창고를 치우며 발견한 기록덕이었다. 전쟁 중에 상한 뼈다귀를 갉아먹고 이질에 걸려 죽을 뻔한 이야기며, 옆에서 함께 생활하던 포로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던 일들이며, 하여 할 수만 있다면 평생 두 번 다시 집을 떠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일도 알게 되었다. 아버지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지만, 시간은 기다려주는 법이 없다. 아버지는 점점 더 기억을 잃어갔다. 작가는 아버지의 마지막에 대해 쓰지 않고 이렇게 작품을 마무리한다.

    나는 이 책을 여유 있게 쓰고 싶었고, 그래서 육 년이라는 시간을 모아두었다. 동시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이 책을 쓸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랐다. 돌아가신 다음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살아 있는 사람에 대해 쓰고 싶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모든 사람이 그렇듯 아버지도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운명을 지녀야 마땅하다고.”

    우리는 흔히 효용성으로 한 인간의 존재를 재단할 때가 많다. 누구는 이렇고, 그 사람은 저렇고, 누구누구는 이렇고 저렇고. 하지만 그들마저 존엄한 인간이며, 더더욱 기억을 잃은 사람들도 우리와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다. <유배중인 나의 왕>은 인간의 품위와 가치를 잃지 않고 인생의 끝을 다시금 인생으로 살아내는 한 노인의 일대기다. 그것을 기록하는 아들은 뼈아프겠지만, 그 기록으로 인해 우리는 지금, 여기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함께 살아가고, 함께 기억하고, 함께 사랑한 기록을 담은 <유배중인 나의 왕>을 눈 밝은 독자들에게 권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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