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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준호의 카멜롯] 성탄전야에 생긴 일관리자2021-12-15


     

    성탄전야에 생긴 일


    글_정준호(음악 컬럼니스트)

     「디칸카 근교 마을의 야회」, 니콜라이 고골 저/이경완 옮김, 을유문화사, 2021


      

    연말 독서칼럼의 마감이 열흘 당겨져 크리스마스 이야기가 시의적절하다. 더욱이 러시아 정교의 크리스마스는 17일이니 더욱 잘 되었다. 니콜라이 고골의 단편집 디칸카 근교 마을의 야회가운데 성탄전야라는 단편을 소개한다.

    디칸카 근교 마을의 야회는 수록 단편 가운데 하나인 오월의 밤을 책 제목으로 국내에 번역된 적이 있다. 그러나 소로친치의 장터잃어버린 편지, 성탄전야가 빠진 불완전한 선집이었다. 나머지는 무서운 복수, 성 요한제 전야, 이반 표도로비치 슈폰카와 그의 이모, 저주받은 땅, 오월의 밤 또는 물에 빠져 죽은 처녀이다. 여덟 편 가운데 적어도 네 편이 러시아 음악과 연관 있을 만큼 내게는 중요한 단편집이다. 음악이 된 것을 일별하면 아래와 같다.

     

    소로친치의 장터」 – 무소륵스키의 오페라

    성 요한제 전야」 – 무소륵스키의 교향시

    성탄전야」 – 차이콥스키와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오페라

    오월의 밤 또는 물에 빠져 죽은 처녀」 –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오페라

     

    고골은 선배 푸시킨과 더불어 러시아 문학은 물론, 러시아 음악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그뿐만 아니라, 러시아에 예나 지금이나 뜨거운 감자인 우크라이나를 창작의 중요한 밑거름으로 삼았다는 점에서도 둘은 서로 통한다. 고골은 흔히 폴타바 태생으로 알려졌는데, 오늘날 우크라이나 한복판의 폴타바는 같은 이름의 도시를 포함하는 큰 현이기도 하다. 정확하게 말해 고골은 폴타바 현의 소로친치에서 태어났고, 소로친치에서 폴타바 시로 가는 도중에 디칸카가 있다. 그러니 디칸카 근교 마을의 야회는 고골이 듣고 자란 고향 전설을 간추린 것이다. 폴타바는 오래전부터 카자크의 여러 부족이 살던 곳으로 성탄 전야에서도 자포로지 카자크인들이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예카테리나 2세를 만나러 가는 이야기가 나온다. 줄거리를 살펴보자.

     

    대장장이 바쿨라는 마을에서 가장 예쁜 옥사나와 연인 사이이지만, 늘 그녀의 변덕 때문에 속을 썩기도 한다. 바쿨라의 어머니는 마녀 솔로하로, 그녀는 빗자루를 타고 밤하늘에서 악마와 어울리기도 한다. 부유한 홀아비이자 옥사나의 아버지 춥은 과부 솔로하에게 눈독을 들이지만 경쟁자가 많다.

    한편 바쿨라는 오늘도 옥사나 때문에 맘을 태운다. 그녀가 여제가 신는 신발쯤은 있어야 시집을 온다고 내몬 것이다. 바쿨라가 못마땅한 악마가 이를 고소해한다. 바쿨라는 대장간 기술 못지않게 그림 솜씨도 뛰어나, 교회 벽에 악마가 혼쭐이 나는 그림을 멋지게 그렸다. 자존심 상한 악마는 눈보라를 몰고 왔다. 술이 거나하게 취한 춥은 눈보라 탓에 길을 잃고 자기 집에 갔다가 딸과 있던 바쿨라에게 도리어 문전박대를 당했다. 바쿨라는 한편이라도 부족할 춥과 꼬여버렸다.

    성탄전야 솔로하가 악마와 노닥거리고 있는 오두막에 그녀에게 마음을 둔 남정네가 차례로 문을 두드린다. 손님이 늘 때마다 솔로하는 앞서 온 남자를 석탄 자루 속으로 밀어 넣는다. 투덜거리며 집에 돌아온 바쿨라는 널린 석탄 자루를 걷어차며 밖으로 가지고 나간다. 우울하던 그는 악마와 통해 병을 잘 고친다고 알려진 뚱보 자포로지 카자크를 찾아간다. 바쿨라는 자신이 등에 진 석탄 자루에 악마가 든 줄도 모르고 카자크에게 악마라도 소개해 달라고 청한다. 알 듯 모를 듯한 그의 대꾸에 바쿨라가 집을 나오자 악마가 목에 올라타 영혼을 지배하려 든다. 바쿨라는 성호를 그어 악마를 제압하고, 그에게 여제가 있는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가자고 명한다.

    제국의 수도에서 여제를 만난 바쿨라는 옥사나에게 줄 신발을 선물로 청한다. 예카테리나 여제는 마침 자포로제 카자크를 복속하고 달랠 당근이 필요하던 차에 소박한 바쿨라를 환대한다. 바라는 사람에겐 언감생심이지만, 여제에게 신발이 대수이랴!

    크리스마스 날이 밝았다. 마을 사람들은 바쿨라가 물에 빠져 죽은 모양이라며 수군대지만 사실 그는 밤에 돌아와 헛간에서 신발을 품고 잠이 들었다. 곤한 그는 아침 점심 예배를 모두 빠질 만큼 깊이 잠든 것이 나쁜 맘을 먹었던 것에 대한 벌이라 여긴다. 춥을 찾아가 멋진 모자와 채찍을 내밀며 꾸짖기를 청하고, 옥사나에게는 여제의 신발을 선물하며 청혼한다. 옥사나는 신발 따위는 필요 없다며 바쿨라를 반긴다. 뒷날 그녀를 모델로 바쿨라가 교회에 그린 멋진 성화를 본 주교는 감탄해 마지않는다.

     

    나는 번역본이 나오기 전 이미 차이콥스키와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오페라를 통해 이 소설을 속속들이 알았다. 이미 올 초에 나온 졸저에 충분히 소개했으므로 여기서 음악 얘기를 더 할 필요는 없다. 연말 외신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지 모른다는 소식을 쏟아낸다. 소비에트 연방 해체 뒤에 나토 가입을 꾀하는 우크라이나의 친서방 정권을 푸틴이 가만두지 않으려는 일촉즉발의 태세이다. 수년 전 크림반도 합병에 이어 이제는 우크라이나 본토가 위협받는 것이다. 미국과 유럽연합이 경고하지만, 유럽 많은 나라가 러시아로부터 천연가스를 공급받기 때문에 힘이 빠진다.

    고골이 소설을 쓰던 무렵에도 우크라이나 정세는 복잡했다. 토박이 카자크 부족은 오랫동안 폴란드 리투아니아 연방의 지배를 받으며 억눌렸다. 그들이 물러가고는 남쪽의 튀르크가 호시탐탐 곡창에 눈독을 들였다. 표트르 대제가 스웨덴과 북방 전쟁을 벌일 때 자포로제 카자크 족장 마제파는 튀르크와 스웨덴 편을 들어 독립을 꾀했다. 이 또한 푸시킨과 차이콥스키 작품의 배경이다. 소설에서 보듯이 예카테리나 여제는 당근과 채찍을 효과적으로 섞어가며 카자크 부족 공동체를 와해시켰다. 여제의 심복 포툠킨 대공이 앞장섰고 그 공으로 뒷날 그의 이름을 딴 군함까지 생겼다. 지배 세력이 바뀔 때마다 종교적인 갈등도 쌓여갔다. 폴란드는 가톨릭, 러시아는 정교, 튀르크는 이슬람을 내세웠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를 겪었고, 멀쩡한 나라가 양분된 채로 산 지 오래인 우리로서는 우크라이나 신세가 남의 일 같지 않다. 바쿨라처럼 이번 성탄전야에 기적을 바랄 수는 없을까? 먼 남의 일을 걱정하기엔 늘 내 앞에 닥친 크고 작은 문제가 더 시급한 오늘날이다. 악마의 힘이라도 빌려야 한다면, 나도 기꺼이 바쿨라처럼 일 년 내내 하루 쉰 번씩 속죄의 절이라도 하겠다. 오지랖을 접고 독자 여러분, 새해 건강하고 복 많이 받으시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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