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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마의 변경에서 책 읽기] 부르주아의 세상으로 들어가며 두고 가야 했던 유산에 대한 이야기관리자2021-12-16


    부르주아의 세상으로 들어가며
    두고 가야 했던 유산에 대한 이야기


    글_조형근(사회학자)

    「남자의 자리」, 아니 에르노 저/신유진 옮김, 1984BOOKS, 2021


     

    영세 자영업자의 집안에서 성장한 이들이라면 대부분 경악할 만큼 긴 부모의 노동시간에 몸서리를 친 적이 있을 것이다. 주거용 집과 영업용 점포가 붙어 있었다면 더욱 그렇다. 우리집이 그랬다. 아버지가 일을 그만 두면서 어머니와 함께 작은 서점 겸 문방구를 운영하게 됐다. 새벽 여섯 시에 문을 열어 야간자습 마친 마지막 학생이 하교하는 자정에 문을 닫았다. 하루 열 여덟 시간 노동이다. 가게 문이 열리면 밥 먹다가도 뛰어나갔다. 휴일 따위는 없었다. 문 닫으면 손님 떨어지니까. 소련의 농업경제학자 차야노프는 소농의 노동행태를 통해 자기착취라는 개념을 제시한 바 있다. 딱 맞아떨어지는 모습이다.

    프랑스의 작가 아니 에르노(1940년생)의 자전적 에세이 남자의 자리를 읽다보면 지구 반대편 선진국에서도 영세 자영업자의 자기착취는 별반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작가의 부모는 노르망디의 소도시 Y시에서 카페 겸 식료품점을 한다. 아버지는 노동자였으나 계급 상승을 열망하며 가게를 열었고, 어머니가 맡아서 운영했다. “카페 겸 식료품점은 문을 닫는 일이 없었다. 그는 휴가를 가게에서 일을 하며 보냈다.” 나중에는 공장을 퇴직하고 온전히 자영업자가 됐다. 그 아버지가 죽음을 맞이하자 작가는 글을 쓰고 싶어졌다. ? 이를테면 이런 경험들을 표현하고 싶어졌을 것이다.

     

    어머니는 장례식 날에만 가게 문을 닫았다. 그렇지 않으면 손님들이 떨어져 나갔을 것이고, 어머니는 그런 일을 용납할 수 없었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위층에 누워 있었고, 어머니는 아래층에서 파스티스와 와인을 팔았다. 눈물, 침묵 그리고 존엄. 어떤 고상한 세계에서는 바로 그런 것이 가까운 사람이 죽었을 때 가져야 할 태도인 것이다. 어머니는 이웃들처럼 존엄성과는 전혀 상관없는 처세법을 따랐다.

     

    지난 번에 이어 이번에도 출신계급을 떠나 상류층에 진입한 이들의 수치심에 관한 이야기다. 계급의 차이는 단지 사회경제적 차이가 아니다. 그것은 한편에는 안절부절한 수치심이, 다른 한편에는 무심한 멸시가 대조되는 불균형의 이야기다. 중산층 이상의 가정에서 자란 이들은 이런 수치심을 정말 이해하기 어렵다. 단지 머리로 상상할 뿐. 여기에 계급으로 나뉘고 분열된 세계의 근원적 난점이 있다.

    공부를 잘 한 작가는 사범학교에 진학해서 중등교원이 되고, 부르주아 출신의 남성을 만나 결혼하면서 부르주아의 세계로 건너간다. 이윽고 유명 작가가 된다. 건조하게 말한다면 이 글은 그녀가 내려놓고 떠난 세계를 향한 인류학적 관찰지라고 할 수 있다. 작가의 입을 빌리자면 그녀가 교양 있는 부르주아의 세상으로 들어갈 때, 그 문턱에 두고 가야 했던 유산을 밝히는 일이었다. 건조하지 않게 말한다면? 문턱에 두고 떠나왔던 그 유산, 하지만 여전히 자신의 일부를 이루고 있는 눅눅한 내면과 질척대는 습속에 대한 연민과 화해의 고백이 될 것이다. 그래서 남자의 자리’, 즉 아버지가 있던 자리는 사실은 자신이 있던 자리, 두고 온 자리, 결코 완전히 이별할 수 없는 자신의 어떤 존재성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그래서일까, 원제는 그냥 자리). 그 자리로 들어가 보자.

    아버지의 자리를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물질적 필요에 굴복하는 삶이다. 할아버지는 여덟 살 이후 평생 동안 농장의 짐수레꾼으로 일했다. 할머니는 루앙의 한 제조소에서 직물을 짰다. 결혼식이나 성체 배령식이 있으면 사흘 전부터 굶고 갔다. 아이들의 몸에는 늘 기생충이 있었다. 그런 세계에서 아버지는 자랐다. 초등학생이던 아버지는 농장 일 탓에 종종 수업에 빠졌다. 초등교육 수료증 준비반이 된 열두 살에 할아버지는 그를 학교에서 빼내 농장에 집어넣었다. 아버지는 농장의 외양간에서 자며 집을 꿈꿨다.

    군대에서 더 넓은 세상을 본 그는 다시는 농장으로 돌아가지 않고, 노동자가 됐다. 건실했고, 노조도 정치도 하지 않았다. 활기차고 당찬 여공이던 어머니를 만나 결혼했다. 어떻게든 상승하고 싶어서 가게를 열었다. 아버지는 반은 노동자, 반은 장사꾼으로 살았다. 그의 삶은 늘 바빴다. “나는 몸살도 걸어 다니면서 앓아야 한다니까!” 벌이에 비해 모든 것이 비쌌다. 결핍이 계속됐고 모든 물건은 신성했다. “그 욕망은 무엇이 아름다운지, 무엇을 좋아해야 하는지 모르는 욕망을 위한 욕망이었을 뿐이다.”

    이런 무취향의 아버지 밑에서 자라는 소녀가 느끼는 감정은 부끄러움이다. 아버지는 애써 표준어를 익혔지만, 어법이 틀렸다. 딸은 아빠의 틀린 말투를 지적했고, 아빠는 화를 냈다. “내 기억 속에 언어에 관한 모든 것은 돈 문제보다 더한 원망과 아픈 언쟁의 원인이었다.” 학교에서 만난 Y시의 중산층 자녀들이 클래식과 재즈 같은 음악 취향을 물어올 때 그녀는 다른 세계에 와 있음을 깨달았다. “모욕적인 기억들이 그 시절을 간직하게 해준다.

    아버지도 딸을 이해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늘 머리를 쥐어짜는 일을 좋아하는 걸 이상하게 여겼고, 딸이 열일곱 살이 되어서도 돈을 벌지 못한다는 사실을 남들이 알까 부끄러워했다. “, 음악, 그런 건 너한테나 좋은 거다. 내가 살아가는 데는 필요 없어.” 어느 여름 방학에 대학 친구 두 명을 초대했을 때 아버지는 딸의 친구들에게 예의범절을 아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졌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어떻게 지냈수?” 이게 아버지의 방식이었다.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아버지는 딸이 자랑스러웠다. 죽은 다음 그의 지갑에서 발견한 것은 사범학교 입학시험 결과가 성적 순으로 인쇄된, 딸이 두번째 순위에 있는 신문 기사 조각이었다. “어쩌면 그의 가장 커다란 자부심 아니 심지어 그의 존재 이유는 자신을 멸시하는 세상에 내가 속해 있다는 사실이었을 것이다.”

    자식과 부모 사이의 단절될 수 없는 단절에 대한 서사는 많고 다양하다. 가족이 서로 다른 계급으로 나뉘는 이야기는 그 한 유형이다. 대개 자식이 부모의 세계를 탈출해서 성공하는 상승의 서사다. 가족을 기준으로 보면 하나의 가족이 쪼개지는 이야기다. 슬픈 이야기이지만 사실은 계급 상승의 여지가 있던 시절, 이런 서사가 공감을 받을 수 있던 시절의 이야기다. 우리는 그 마지막 편린 쯤에 와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좀 더 시간이 지나면, 이런 상승의 서사 자체가 기이하게 여겨질 지도 모른다. 그게 더욱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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